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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Jul 25. 2022

손맛과 글맛

언젠가 꼭! 찾고 말테다.

 글쓰기는 요리에 필요한 손맛 찾기다. 몇 주째 진행되고 있는 글쓰기 수업을 듣다 머위나물이 생각났다.

 올봄 시골에 계신 시어머님이 머위 잎을 가득 가져다주시며, 면역력에 좋고 봄철 집 나간 입맛도 돌아오게 하는 보약이니 자신 아들 입맛을 챙기라는 당부 말을 보태셨다.

 긴 시간 버스 타고 찢어진 봉지에 아무렇게 담겨 온 머위 잎을 신문지 위로 쏟아부었다. 머위는 신문지 위로 수북하게 쌓여 다양한 잎의 크기를 뽐냈다. 크기에 따라 큰 것은 쌈용으로 어린것은 나물용으로 갈랐다. 시들고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추려내 버렸다.


 큰 잎은 쪄서 쌈으로 먹으면 쌉싸름한 맛이 봄을 먹는 것 같다. 봄철 떨어지기 쉬운 입맛을 확 당기는 매력적인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매콤 달콤한 양념장이 함께 어우러지면 입안은 축제의 폭죽이 피날레를 맞는다.

 어린잎은 살짝 데쳐 나물로 무쳐 먹는다. 데칠 때 신중해야 한다. 너무 데치면 식감이 물컹물컹해져 줄기의 아삭함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알맞게 데친 머위 잎은 시원한 물에 여러 번 샤워시켜 열기를 뺀 후 줄기의 아삭함이 유지되게 한다.

 그렇게 데친 머위 잎은 물기를 꽉 짜 된장, 고추장, 다진 마늘, 들기름 등 향과 맛이 강한 양념으로 조물조물 함께 무친다. 그러면 머위 고유의 쌉싸름한 맛을 감칠맛으로 바꿔준다. 그렇다고 주인공의 비중을 줄이고 조연을 더 돋보이게 해서는 안 된다. 서로가 조화롭게 무쳐져야 각각의 맛이 서로를 끌어당기고 품어 입안을 즐겁게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숨어있는 손맛의 존재가 드러나는가에 따라 맛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인터넷 블로그의 요리법을 참고해 정성껏 무쳐 낸 나물을 그날 저녁상에 소담스럽게 담아냈다. 호기롭게 시어머님과 남편 앞으로 당겨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먼저 젓가락질하신 어머님이 “된장을 넣었어야지!” 하신다. 한술 더 떠 남편은 “고추장 맛밖에 안 나는데….”

 두 사람이 입 밖으로 내놓은 가혹한 맛 평가는 순식간에 밥상 위 머위나물의 존재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한동안 머릿속을 유영하던 글의 주제를 정한다. 거기에 맞는 단어를 골라 분류한다. 이 과정은 맛깔스럽고 풍성한 글쓰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문장은 간결하고 짧게, 분량은 정해진 만큼, 비유와 은유를 활용하고, 적절한 묘사 사용하기 등 좀 더 찰진 글이 되길 위한 부재료를 찾아 나열한다. 이제 낱말, 문장, 문단 등에 잘 버무려 담아내면 글이 완성된다.

 신중하게 선택한 낱말과 문장이 담긴 글 그릇 앞에 잠시 머무른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이나 느낌이 적절하게 잘 배합되었는지 되새김해 본다.

 글쓰기 선생님이 하신 말이 생각난다. “고치고 고쳐라.”, “초고는 걸레다.”,“버리는 것은 두려워 말자.”

 이 말 앞에 질서 정연하게 나열된 글이 머릿속에서 헝클어진 실타래가 된다. 신문지 위 쏟아진 머위 잎처럼 무수한 낱말들이 화면으로 가득 부어진다. 그 앞에 주저앉아 버려야 할 것과 남겨야 할 것을 골라 본다. 매장에 전시된 다양한 옷을 거울 앞에서 갈아입듯 이 낱말, 저 낱말을 골라 빈약하고 어설픈 문장을 커버한다.


 나는 나름 신중하게 고민하고 덜어내기를 한 완성된 글을 합평의 밥상에 올려놓는다.

”감정이 풍부하시네요. “, ”묘사가 좋아요. “,“주어와 목적어, 서술어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지나친 감정에 글 읽기가 불편하네요.”,“묘사가 과한 듯해요.” 등등 다양한 의견을 듣는다.

 합평이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부끄러워졌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말처럼 아무것도 모를 때 내 글이 좋았다. ‘이만하면’이라는 어깨 뽕이 자연스럽게 사그라든다.

 글쓰기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을 했다.

‘노력만으로 부족한 건 아닐까?’,‘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우왕좌왕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얼마나 노력했다고 그래!’, ‘맞아, 재능이야!’의 갈림길 앞 나는 전자를 선택한다.


 나는 글쓰기가 재미있다. 입으로 뱉어지는 나와 글로 표현되는 내가 같은 듯 묘하게 다른 매력이 거울 앞에 완전한 나로 비치는 느낌이다.

 아직 덜 여물어 어딘가에 숨어있을 손맛처럼 글쓰기도 내 안 어딘가에 고이 모셔져 있는 재능을 발견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새순처럼 여린 나를 더 단단하게 보듬는 시간을 글쓰기를 통해 배울 것이다. 조급해하지 말자. 들판의 비바람 몇 해 더 품어야 꽃이 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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