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를 담다

아름다운 선택

소년이 온다를 읽고

by 핑크뚱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어두워집니다. -소년이 온다 본문 中


지금 내 안에서 부글부글 끓는 울분이 휘발하듯 쉽게 사라질 것을 알기에 두렵다. 아주 잠시 슬퍼하다 금방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알기에 그렇다. 이러니 마음에 화가 나고 슬프다.


선거철이다. 길가는 중간중간 조그마한 사각형 종이 한 장을 내밀며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한다. 일면식도 없는 내게 그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한 표를 나에게 주세요!'다. 그런 걸 알기에 그 행동 하나하나가 더 불편하게 느껴진다.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드러나는 것이 있다. 세계 유일무이한 분단국가가 가진 현실이 색깔 논쟁과 이념 논쟁을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한다. 세태가 많이 변해 철 지난 논쟁이라며 등한시하는 듯하나 여전히 분단국가로서 겪을 수 있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 탓에 대중들에게 먹힌다.


특히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됐으나 군홧발로 짓밟아 빼앗은 그때의 권력과 다르지 않은 현 정부는 노골적으로 더 새빨간 색깔 논쟁을 표면화한다. 거기에 합세하듯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이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최근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북한군 개입설과 전두환이 평화적인 새 시대를 열었다 주장한 어떤 이는 22대 국회의원 후보로 당당히 공천받았다.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고 입술이 수시로 들싹들싹 하다 끝끝내 오열이 터져 나왔다. 이유도 알 수 없이 죽음을 맞은 나와 그런 나의 죽음을 쫓다 만난 또 다른 나를 위해 초 하나 밝히던 너의 죽음. 여기에 죽음보다 더 지옥 같은 삶을 겨우 연명하듯 살아가는 생존자와 유가족. 모두가 그날의 아픔이고 공포다. 그러니 이들의 이야기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어도 절대 뱉을 수 없는 막말은 아픔과 공포에 차가운 총을 다시 겨누는 것과 다르지 않다.


거기다 이 책은 5.18 민주화운동을 슬픈 날, 아픈 날로 뭉뚱그려서 기억하는 나 역시도 그들 앞에 죄인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해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이다. 이미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어 그날의 아픈 성과를 기념하고 있으나 여전히 얼토당토않은 막말을 뱉는 양심을 찾을 수없는 이들에게 화가 난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그러니 제발 이번만큼은 진정 사람에게 투표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아름다운 선택이 되길 희망한다.


책을 읽고 함께 본 영화 <화려한 휴가> 속 선주의 마지막 말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가 더 이상 아픈 외침이 되질 않길......



*이 글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잠자리 독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