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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Jun 20. 2024

당당하고 귀엽네!

다툼에서 화해까지

모든 학생들이 수업 중인 시간, 도서관 열쇠를 찾아 문을 연다. 밤사이 어둠이 찾아와 놀았어둑곳의 블라인드를 걷자 밝은 햇볕에 금세 화사한 얼굴로 바꾼. 밤사이 남은 어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모든 창문을 열고 빗자루와 대걸레로 청소를 한다. 서고의 좁은 틈으로 도망가먼지들도 끝내 빗자루에 잡혀 쓰레기통으로 처박힌다. 바싹 마른 극세사 걸레를 들고 화장실로 가 시원한 물에 조물조물 빨아 뽀얗게 먼지 앉은 책상과 창가를 꼼꼼히 닦으니 시간은 감쪽같이 30분을 집어삼켰다. 


나는 아들이 다니고 있는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사서선생님이 따로 계시지 않은 학교라 코로나 19로 아예 도서관이 닫혔다 학부모의 교육기부로 뒤늦게 오후 2시간만 책 대출과 반납을 위해 문을 열어 운영되고 있다. 그러다 올해 3월부터 오전 2시간 30분을 추가해 확대 운영한다. 오전 2교시 수업이 끝나면 중간놀이 시간 20분을 시작으로 도서관의 하루는 모든 문을 개방해 아이들을 두 팔 벌려 기다린다.


아이들 맞을 모든 준비를 끝내고 컴퓨터 앞에 앉자 금방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도서관 위층 복도에서부터 달리는 말발자국 소리 같은 힘차고 요란한 소란이 우르르 몰려오는가 싶더니 금세 도서관 안으로 들이닥쳤다. 늙은 노인처럼 낮고 무겁게 가라앉았던 곳이 활어시장의 팔딱이는 물고기처럼 금세 북적이는 아이들로 힘차고 밝은 모습이 다.


대부분은 아이들은 중간놀이 시간에 뜨겁게 뛰어놀 곳을 찾아 도서관으로 온다. 비가 와서 미세먼지가 나쁨이라 자외선이 너무 강해서 다양한 이유로 운동장으로 나가 놀 수 없게 된 아이들이 조용한 도서관으로 소란을 끌고 모여든다. 그러니 조용함은 학교 도서관에서는 쉽지 않다.


서가 사이사이로 숨어들어 숨바꼭질을 즐기며 우르르 몰려왔다 몰려가기를 반복하며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들이 다칠까 걱정하는 내 마음이 끝내 참지 못하고 조용히 시켜도 1초 후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뒤로 땀에 흠뻑 젖은 아이들만 남는다.


이날도 한바탕 전쟁 같던 소란이 사라지고 조용함이 찾아들 때쯤 다급하게 도서관으로 뛰어들어온 아이가 도움을 요청했다. 도서관으로 들어오기 위해 몇 곳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그 문을 잠갔다 열었다를 반복하며 마치 놀이기구처럼 사용한다. 그런데 그 문이 중간놀이시간이 끝나가는 아이들의 다급한 마음을 가로막았나 보다.


서둘러 찾아간 복도 중간쯤 한 아이는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울고 있고 또 다른 두 아이는 서서 벼린 눈빛 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대충 이러했다. 서둘러 교실로 가야 하는데 통과문이 닫혀 있어 서로가 문을  잠갔네 안 잠갔네로 다퉜단다. 주저앉은 아이는 1대 2 상황이 불리해 눈물을 무기 삼아 그들과 대치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일단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얼마 남지 않은 쉬는 시간이 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어 서로의 이야기를 대충 듣다 말았다. 그들의 숙성되지 않은 마음을 나는 서로에게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급하게 수습하며 그들을 화해시켰다. 다행히도 울던 아이는 금세 눈물을 눈으로 밀어 넣고 일어나 상대 아이의 어깨를 드리며 말했다.

 미안해!

상대 아이도 여기에 화답하는 듯했다.

 그래, 나도 오해해 미안해

그리고 곧바로 따라붙은 날카로운 한마디.

근데, 사과할 때 내 몸에 손은 안 됐으면 좋겠어.


순간 나는 당황해 아이들을 돌아가며 봤다. 혹시나 뒤이어 따라온 말에 또 다른 다툼의 기회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에. 그러나 울던 아이는 내 걱정을 보기 좋게 걷어차며 말했다.

 응, 그래. 알았어. 다음에는 몸 안 건드릴게.


어쭙잖게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화해를 시킨 나는 서둘러 교실로 뛰어가는 아이들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며 생각했다. 만약 나였다면 불편한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 떠밀리듯 한 사과는 내내 마음이 불편해 입을 삐죽 내밀었을 텐데 아이들은 달랐다. 서로의 잘못은 인정하되 자신의 불편한 감정도 무시하지 않고 당당하게 요구하던 아이의 모습에서 나보다 어른을 보았다. 뒤돌아 도서관으로 향하던 나는 귀엽고 당찬 아이들 생각에 웃음이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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