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핑크뚱 Aug 02. 2022

친정엄마

친절하지 못했던 딸.....

툭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잔뜩 흐려있는 하늘. 공기 중 습기가 마음에까지 스며들어 축축한 느낌을 잔뜩 품은 날. 아들의 생일을 위해 친구들이 집으로 왔다. 맑고 깨끗한 날이길 나는 원했으나 그렇지 못해 아쉬움이 인다.

날씨 탓에 마당 수영장으로 들어갈지 말지 아들과 친구들은 잠시 고민의 시간을 지나 어느샌가 물속에 앉아있다. 내 마음과는 별개로 오히려 쨍한 햇볕이 없고, 습도로 찌는듯한 공기가 물놀이하기에 적당한 날이다.

한바탕 물놀이를 끝내고 집으로 들어와 간식을 먹는 사이 바깥은 요란한 소나기가 내린다. 서로 다행이라며 재잘재잘 입은 쉬지 않고 떠들며 먹는다. 점심까지 먹고 나니 소나기는 그치고 해는 구름 커튼 재치고 얼굴을 내밀었다. 물놀이 2차전이 시작된다. 지치지 않고 열심히 노는 아이들이 신기하면서도 그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다.


긴 시간 아들의 생일 놀이는 이어졌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아이들과 자주 가는 중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마무리하기로 했다. 맛있는 저녁까지 해결 후 근처 공원으로 가 하루의 행복감을 나누며 산책하다 발견한 물 분수. 여벌의 옷도 없이 분수에 뛰어든 아이들은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귀엽고 사랑스럽다. 꽉 찬 하루를 마무리한 아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행복한 하루를 선물해 준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들의 고맙다는 인사에 나는 엄마를 떠올렸다. 햇볕의 뜨거움과 높은 습도로 더운 여름 나는 아들을 출산했다. 보통의 사람들은 결혼과 출산을 경험해야 친정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여자로서 안타까운 엄마의 모습을 안다고들 한다. 나 역시 어릴 땐 마냥 무섭고 엄했던 엄마의 기억이 출산과 육아를 통해 그녀를 알아가는 시간을 경험한다.


나의 엄마는 채 영글지 못한 과실을 성급한 마음에 냉큼 수확해버려 과즙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열여섯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그렇게 농사짓는 시골, 홀시아버지와 남편만 있는 단출한 식구에 자신을 보탰다.

삼 남매의 엄마 노릇, 시어른의 수발을 받드는 며느리, 아버지의 아내 역할뿐 아니라, 들로 밭으로 일 다니는 일꾼, 집안 살림도 책임져야 하는 주부로 삶의 버거움을 일찍 알아버린 어린 엄마다. 그녀를 생각하면 지금 내가 뱉어내는 투정이 죄스럽고 안타까워진다.      


자정을 훌쩍 넘어 새벽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깊은 밤. 그곳에 밤새 칭얼거리는 아들을 들춰 엎고 달래며 어둠과 함께 걷고 있는 내가 있다. 출산 후 온전한 밤을 보낸 적이 며칠이나 있을까! 엄마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겠지만 유독 힘들고 버겁게 다가온 날들이다. 그런 밤이 계속될수록 점점 지쳐가는 나와 사무치게 생각나고 안타까운 나의 어머니가 겹쳐지던 시절. 육아하는 동안 내 기억 속 엄마의 모습은 점점 또렷해지고 안타까워졌다.     


푸른 보리밭에 바람이 일자 은빛 보리 수염이 일렁이며 파도를 만든다. 그 속에 유독 푸르름을 방해하는 어울리지 않는 검은 보리가 보인다. 보리깜부기다. 보리가 채 여물기도 전 청춘의 싱그러움을 세상에 내보이지도 못한 보리깜부기는 돌아가신 친정엄마를 닮았다.

푸르름이 넘실대야 하는 열여섯. 엄마에게는 그런 젊음은 연기같이 사라지는 신기루였다. 청춘의 무리에서 점점 시들어 검은 보리깜부기 같은 삶을 살다 간 엄마.

      

아들과의 행복한 시간이 쌓일수록 점점 엄마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이 쌓이는 아슬아슬 위태로운 내가 있다.

이 감정을 훌쩍 뛰어넘어 온전히 아들과의 행복을 즐기고 싶다. 돌아가신 엄마도 그러길 원하실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더위를 낚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