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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Sep 20. 2022

된장에 끌려가는 마음

우환이 집으로 찾아들다.

집안 가득 구수하고 진한 된장 냄새로 채워진다. 가스 불 위 뚝배기는 연신 보글보글 거품을 뱉어 걷어낸다. 노란 된장이 끓는 모습만으로 입안 가득 퐁퐁 샘이 솟는다. 코로 맡아지는 냄새는 머릿속의 추억을 보글보글 거품을 일으킨다.


내 어릴 적 메주 만들 때는 우리 남매에게 축제였다. 삶은 콩을 먹을 수도 있고 디딜방아로 놀거리도 생겼어다. 솥에서 푹 삶아지는 기다리는 시간도 싫지 않았다. 잘 익은 메주콩은 고소하고 달큼하다. 한두 개씩 먹던 것을 한 줌씩 입 안으로 넣는다. 엄마 몰래 자주 입으로 쑤셔 넣은 콩은 끝내 탈이나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신세가 됐다.


잘 삶은 노란 메주콩은 동네 디딜방아로 가져가 빻는다. 잘 빻은 콩은 구멍이 뻥 뚫린 틀에 넣어 네모난 모양을 만든다. 새끼줄로 흘러내리지 않게 사방을 묶어 군불로 뜨끈하게 데워져 기운이 몽글몽글한 방구석에 걸어둔다. 얼마간이 지나면 푸릇푸릇한 곰팡이 펴 쿰쿰한 메주 뜨는 냄새가 온 방 가득 코를 찡그리게 했다.


잘 띄운 메주에 구석구석 자리 잡은 곰팡이를 깨끗이 씻었다. 간수 잘 빠진 천일염과 맛 좋은 물에 메주를 넣어 장을 담았다.

 

항아리는 볏짚을 태워 소독하고, 부정 타지 않게 참숯과 말린 고추, 건 대추 등을 얹어 무명천으로 항아리 입구를 막아 숙성시켰다. 숙성이 끝나면 간장을 걸러내고 메주는 곱게 으깨 삶은 콩과 섞어 햇볕 좋고 바람이 잘 통해 서늘한 곳에서 육 개월 정도 뒀다. 긴 시간 숙성을 끝내면 끓일수록 구수한 냄새가 좋아 집 나간 입맛도 돌아오게 하는 된장이 됐다.


보통 삶은 콩을 섞어 된장을 만들었다. 그러나 색다르게 시어머님의 비법은 청국을 띄운 콩을 섞어 만들었다. 그래서 살짝 쿰쿰한 청국 냄새와 걸쭉하고 구수한 맛이 더 좋았다.


옛사람들은 된장 맛으로 한해의 운수를 점칠 정도로 부정 타지 않게 온갖 정성으로 장을 담았다. 몇 해 전 이웃에서도 탐내던 맛 좋은 시어머님의 된장이 이상했다. 그해 거짓말처럼 맛이 변한 된장이 집으로 우환을 끌어왔다. 시어머님은 자신이 띄운 된장 때문이라며 “와 그럴꼬, 와 그럴꼬”를 무심결에 툭툭 뱉어내며 몇 해 속앓이 했다.


아침 된장찌개를 끓이며 병원에 계신 시어머님이 생각났다.

끝끝내 맛이 변한 된장은 시어머님의 항아리를 다시 찾지 못했다. 집 안으로 찾아든 우환 역시 밖으로 쫓아내지 못했다. 된장이 원인일 수 없지만 자꾸 마음이  그곳으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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