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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Oct 04. 2022

생일에 감자탕

따뜻함이 몸을 녹인다.

나의 마흔일곱 번째 생일이다. 그가 결혼생활 중 열두 번의  생일 처음으로 먼저 외식을 입 밖으로 뱉은 날이기도 하다. 메뉴를 무엇으로 할까 생각하다 무의미하게 느껴져 포기한다. 스스로 차리지 않는 생일상 의미를 둔다. 그리고 나는 뭐든 잘 먹는다. 문제는 입 짧은 그들이다. 자연스럽게 선택권을 아들에게 넘긴다. 고민은 머리 위 하늘을 나는 비행기처럼 스치듯 짧다. 보쌈을 먹자고 한다. 솔직히 우아한 식당은 기대도 없다. 언제나 그렇듯 메뉴는 이미 정해져 있다.


우리는 외식 때면 가는 식당으로 장소를 정한다. 퇴근한 그가 대문을 여는 순간 나와 아들은 현관에서 신발을 신기 시작한다. 그를 재촉한다. 어느 때보다 발걸음은 깃털보다 가볍게 바람에 실려간다.


내 눈 안으로 가정식 감자탕 전문점이라는 간판이 들어온다. 감자탕을 싫어하는 아들 덕에 항상 두 가지 메뉴를 주문한다. 그와 나는 감자탕, 아들과 나는 보쌈.

주문한 음식과 갖가지 반찬들이 차례차례 상차림이 이루어진다. 보쌈이 먼저 상위에 올라 경쾌한 젓가락질을 기다린다. 아들이 숟가락 가득 뜬 밥 위에 먹기 좋게 자른 보쌈을 올려 준다. 그에게는 감자탕이 끓기 전 맑은 증류수를 작은 잔에 찰랑 채워 준다. 한발 뒤에서  보글보글 다정한 소리로 끓으며 예상치 않은 내 어린 시절 엄마가 끓여준 감자탕과 함께 다.   

  

어린 시절 나에게 상차림은 받는 게 아니라 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내가 초등 저학년까지는 농사일로 바빴고, 고학년부터는 항상 아파 대부분 누워 있었다. 새벽 일하러 가기 전 아버지가 밥을 해 놓았다. 그럼 나는 등교 전 밥상을 차려 오빠와 동생과 함께 먹었다. 그렇게 내 기억 속 나는 항상 밥상 차리는 모습이었다.


가난한 시골 밥상은 어린아이 입맛 따위는 지우개로 지웠다. 여름은 자작하게 끓인 된장에 풋고추, 먹어도 먹어도 계속 열려 하루도 빠지지 않는 오이무침, 마녀나 좋아할 보라색 가지 나물이 그랬다. 겨울은 더 했다. 김장하고 남긴 노란 쌈 배추에 멸치젓갈, 동치미와 김장김치가 늘 마음에 들지 않는 주인공이었다.


그날은 엄마의 아픈 날이 안 아픈 날을 앞서는 하루가 반복되던 때였다. 정지(부엌)에서 큰 벽돌 몇 장을 다리 삼아 올려진 가스레인지 앞에 쭈그려 앉아 요리하는 낯선 모습으로 기억됐다. 그리고 가스 불 위에선 난생처음 보는 음식이 요란하게 끓고 있었다.


큰 솥에 크고 괴상한 뼈가 들어있다. 동치미를 담그고 남은 무청을 말린 시래기가 가득 담겨 앙상한 뼈의 부끄러움을 가렸다. 듬성듬성 썰어 넣은 감자는 둥둥 떠있고, 끓는 붉은 용암의 보글 거품을 닮았다.

오랜 시간 뼈가 흐물흐물할 때까지 끓인 음식은 작은 솥으로 옮겨져 들깻가루 가득 올려져 붉은색을 제법 흐릿하게 만들며 밥상의 정중앙을 전세 냈다.

 

우리 남매에게는 낯선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과하게 넘쳤다. 서로의 눈치를 살피느라 솥에 숟가락이 담기질 않았다. 그런 우리를 보며 엄마는 이야기했다. 근래 아버지와 함께 다녀온 강원도에서 처음 먹어봤다고. 보기와 다르게 맛있어 먹는 내내 우리 남매가 많이 생각났다고 했다. 꼭 해 주고 싶었다며. 그 음식이 감자탕이었다. 엄마의 감자탕은 그때가 처음이면서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나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 특별한 음식으로 터를 잡았다.     

조금 매콤했다. 텁텁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로 맛있었다. 뼈 사이에 붙어 있는 고깃덩이는 보물찾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매콤 짭조름 간이 밴 감자는 더 이상 입안을 답답하게만 하지 않았다. 긴 시간 우려낸 뼈는 진했고 구수해 맛이 좋았다. 엄마가 처음 먹은 음식을 우리 남매를 생각하며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들어 차려준 다정함. 아픈 몸으로 힘겹게 끓여낸 애절함까지 양념으로 버무려졌다.  10대 시절 감자탕은 맛있고 따뜻하면서 애처로움으로 남았다.


자신의 몸과 마음 모두를 아픔에 져 어린 자식들을 챙기지 못했던 엄마가 우리 남매를 위해 자신도 처음 먹어 본 음식을 끓여냈을 때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 끝으로 눈물이 따라붙어 코끝이 찡해온다.     

내 아이도 나만큼 컸을 때 엄마인 나를 생각하면 따뜻해지고 다정해지는 음식이 생길까?


이번 내 생일은 반짝반짝한 고급스러움도 멋스러운 우아함도 없다. 그러나 나를 위해 누군가 정성과 사랑으로 차려준 한 끼를 든든히 먹은 기분인 감자탕은 따뜻하고 다정하다.  최근 날카롭게 살얼음 낀  내 마음을 사르르 녹이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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