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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Oct 11. 2022

가을을 담은 자연

때론 부드럽게 때론 강하게.....

가을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아들과 가볍게 그림자밟기를 하며 걷고 있다. 고개 들자 어두운 그림자 밖은 알록달록 천연색의 가을을 담은 자연이 눈으로 들어온다. 나는 눈부신 아름다움에 시린 눈을 가리며 따갑고 찬란한 가을의 집행자 같은 햇볕과 바람을 마주한다. 인간의 욕망을 가둬 품은 저수지는 보석이라도 흩뿌려 놓은 듯 반짝반짝한 햇볕과 거센 바람에 일렁인다.


내 머리 위 그늘이 드리운다. 재두루미다. 순간 올려다본 하늘은 조금씩 변화를 준 파란색으로 표현된다. 그 위로 깨끗한 하얀 솜털 같은 구름이 듬성듬성 올려져 있다. 재두루미가 깨끗함을 훼방 놓듯 구름을 가로질러 내 눈 밖으로 사라지자 서둘러 사진을 찍듯 사방을 둘러보며 쫓는다. 그러자 맑고 산뜻한 가을이 눈으로 가득 담겨온다.


세찬 바람이 온몸을 휘감아온다. 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때리며 눈을 가린다. 가린 틈으로 살짝 보이는 것만으로도 가을의 온전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하루의 변화가 급작스럽게 빨라진다. 전날 만해도 잔뜩 흐려 구름이 가득했던 하늘이다. 변덕스럽게 찔금 흘리는 눈물 같은 빗방울을 떨어뜨리더니, 하룻밤 사이 말간 얼굴을 하고 가을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난 언제라도 다시 찾을 수 있는 늦더위에 미련이 남아 선풍기도 정리하지 못하고 비좁은 거실을 내어 주고 있다. 그런 나에게 “여름은 갔어. 가을이 왔다니까.” 바람이 속삭인다. 함께 딸려 온 찬 기운은 옷깃을 한 번 더 여미게 다.

 

나뭇가지 사이로 부는 바람은 더 심술궂다. 조금은 날카로운 ‘휘리릭’ 소리로 웃고 있다. 길 위엔 마지막 잎새가 되고 싶었던 푸릇한 어린 나뭇잎들이 심술궂고 힘센 바람에 지고서 떨어져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다. 저수지 가장자리는 갈대가 빼곡히 자리 잡고 은빛 수염을 뽐내며 바람의 방향에 맞추어 유순하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세상으로 자랑질을 보낸다.

뜨겁던 여름 볕을 맘껏 품어 크고 푸르렀던 연잎은 시들시들 삐쩍 말라 때 묻은 갈색의 초라함을 감추듯 바람에 자신을 물속에 눕힌다.

고개 숙인 벼는 노랗게 황금 들판을 만든다. 빈틈없이 꽉 찬 낱알은 거센 바람에도 거뜬하다.

듬성듬성 무너져 구멍이 숭숭한 거미줄엔 주인은 떠나고 없고 햇볕에 반짝이는 줄에 걸린 민들레 홀씨, 하루살이만 바람에 거세게 흔들리고 있다.


가을을 담은 자연은 참으로 신기하다. 한결같던 바람과 햇볕이 같은 듯 다르다. 호기롭던 어린잎과 유순한 갈대의 생을 엄연히 다르게 만든다. 연잎의 부끄러움을 감춰주는 배려도 아끼지 않는다. 속이 꽉 찬 벼의 낱알 앞에서는 자신의 힘만 뽐내지도 않는다.


이날은 가을의 다양한 얼굴을 눈에 담았다. 어긋난 듯하다 서로를 끌어안아 품는 모습이 아름답다. 가을을 담은 자연의 너른 품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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