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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Oct 24. 2022

의식으로 불렀다.

그 시절 자장가가 생각났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파도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내 서른여덟의 밤은 간절했다. 시간이 폴짝 뛰어 자정을 넘어 어둠과 함께 길 위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나는 밤새 칭얼거리는 아들을 둘러업었다. 말캉한 마시멜로 같은 아이 엉덩이를 토닥이며 어둠과 함께 걷고 있다. 출산 후 온전한 밤을 보낸 적이 며칠이었나 싶다. 엄마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유독 나에게는 힘들고 버겁게 다가왔다. 앞으로 몇 날 며칠의 이런 밤이 얼마나 계속될지 기약 없어 두려웠다. 그래서 더 힘들고 간절한 시간이었는지 모르겠다.


시골은 도시보다 빠르게 일상이 어둠에 잠겼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밤은 무척이나 어둡고 길었다. 천장에 쭉 늘어진 거미줄 같은 것에 매달린 백열전구로는 짙은 어둠으로 침몰하는 밤을 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긴 밤은 우아하고 날렵한 기차를 닮았다. 밤마다 우리 가족을 데려갈 준비를 했다. 고단한 농사일에 지친 부모님과 우리 남매는 기꺼운 마음으로 올라탔다. 기차는 빠르고 조용하게 잠의 세계로 안내했다. 잠은 그렇게 불안했던 유년 시절 나를 편안하고 아늑하게 해 주는 몇 안 되는 추억이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나에게 업어가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진다고 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었만 나와는 다르게 엄마의 밤은 어둠보다 밝은 날이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엄마와 나의 밤은 차곡차곡 간격을 넓히며 높아졌다. 그런 엄마의 불면의 날이 길고 깊어질수록 점점 쇠약해졌고, 우리 남매의 불안은 깊은 어둠을 닮아갔다. 어린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입보다 눈으로 먼저 먹고 입안 가득 고인 침이 음식을 마중 가듯 잠도 그랬다. 사탕을 먹듯 달콤했고 보드라운 솜털 위 포근한 잠이 어떻게 고통이 될 수 있는지 말이다. 그런 엄마의 불면을 이해하지 못한 나를 꾸짖기라도 하는 걸까. 아들의 출산과 함께 나에게 잠은 더 이상 편안함이 되지 못했다.

     

유독 잠투정이 심한 아들이었다. 출산과 함께 나의 아늑한 잠은 아들에게 저당 잡혔다. 그래서 백일의 기적을 매일, 24시간 손꼽아 기다렸다. 간절함이 너무 깊어서일까. 백일의 기적은 백일의 기절로 찾아들었다. 눕히면 자동으로 센서가 ‘삑삑’ 작동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울음으로 표현됐다. 낮과 밤은 밝음과 어둠의 빛깔로 구분할 수 있다. 점점 나의 낮과 밤은 구별이 어려워졌다. 종일 어둡고 침침했다. 아들의 잠은 대부분 아기 띠로 안아야 찾아왔다. 부지런히 찾아야 할 아들 잠 요정은 자주 길을 잃었다. 내비게이션을 최신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지 않았서였을까. 찾는 길이 어려웠다면 내 잠 요정과 함께 왔다면 쉽게 찾았을 텐데 야속했다.


마시지 않던 커피는 어느 순간부터 생명수가 되었다. 아들을 유모차에 태워 나간 공원의 산책로는 잠으로 초대하는 레드카펫으로 변했다. 점점 나의 모골이 송연했다. 좀처럼 찾지 않는 잠 요정을 억지로 불러들이는 의식이 필요했다. 그 의식의 처음과 끝에는 항상 섬집 아기가 따라붙었다. 인디언 기우제같이 잠 요정이 찾을 때까지 노래 불렀다. 아들을 둘러업은 깊은 밤 의식의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해 불렀던 자장가는 경건하고 처량했다. 아들이 까무룩 잠의 세계로 입성할 때쯤 항상 내 어린 시절 엄마의 불면이 따라붙었다. 얼마나 고통이었을지 그때야 알게 되었다. 그럴수록 그 밤은 더 어둡고 길었다. 이래서 자식 낳아봐야 친정엄마를 이해한다는 말이 맞는단 걸 몸소 증명했다. 아들을 키우며 점점 엄마를 이해했고 내 마음으로 끌어안을 수 있었다.

     

새벽 악몽을 꾸는지 울며 소리 지르는 아들을 토닥인다. 십여 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으나 자동으로 섬집 아기를 부른다. 이제는 더 이상 불면의 밤을 보내지 않는다. 쓰디쓴 커피 같았던 잠이 다시 달콤하고 포근하게 찾아온다.  새벽에 깬 아들을 위해 부른 자장가는 그 시절 나를 생각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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