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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Nov 08. 2022

걱정의 세불리기

아무튼 기다리는 일은 쉽지 않다.

“아파요?” 의사가 관절 마디마디를 르며 물어온다.

“선생님, 이렇게 만지면 누구나 다 아픈 거 아닌가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한다.

“아니요. 다들 아픈 거 아닙니다.”     


언제부터냐고 물어온다면 몇 주 전 아니 몇 달 전이라고 해야 할까. 아픈 시점을 정확히 짚을 수는 없다. 그냥 쭉 렇게 아팠다.

처음엔 오른 손가락 검지가 살짝만 건드려도 아팠다. 그러다 굽히는 게 힘들어졌다. 붓기는 아침이면 항상 있었던 일이라 그러려니 했다.

어느 순간부터 온몸의 관절이라는 관절이 찐득한 시럽이 들러붙은 듯 움직임이 뻑뻑하게 느껴졌다. 왼손가락 전체가 아팠다. 더 이상은 모른척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나의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도록 하는 관절이 또래보다 퇴행이 빠른가? 살짝 의문을 품었다. 의문 뒤로 빠르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관절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이제는 더 이상 몸의 소리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예약을 위해 온라인으로 병원 진료과를 검색했다. 어떤 진료과를 선택해야 할지부터 고민이었다. 그러다 퍼뜩 류마티스내과가 눈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 엄마는 아팠다. 발가락은 변형이 심해 신발 신는 것도 힘들어했다. 밤마다 아파 눈물 흘리는 모습도 자주 봤다. 그런 엄마의 병명이 류마티스 관절염이었다.

내 기억 속 아픈 엄마의 증상을 떠올려봤다. 하루 중 가장 편안해야 할 밤을 아픔 때문에 하얗게 보냈던 엄마와 지금의 내가 살포시 겹쳐 보였다. 예약 버튼을 눌렀다.


 진료과 선택을 잘못하셨네요.’라는 의사의 말을 기대하며 병원을 찾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스스로 다독이며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친절한 미소로 인사하며 앉기를 권하는 의사가 마음에 들었다. 그도 잠시 의자에 앉자 의사의 질문이 나를 공격했다. 어떻게 왔는지. 언제부터 아팠는지. 증상의 강도는 얼마나 되는지 등을 물어왔다. 그런데 점점 내가 예상한 질문과 다르게 흘러갔다. 손가락이 아프다고 했는데, 자꾸 다른 증상을 물었다. 최근 눈에 염증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손가락의 붓기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야 풀리는지. 알레르기로 고생하고 있지는 않은지. 집안에 누가 아픈 사람은 없는지. 엄마의 병명은 확실한지. 그러면서 손가락 마디마디를 만졌다. 그도 모자라 손목. 팔꿈치. 어깨. 발가락. 발목. 무릎. 골반 등의 관절을 만지고 비틀어가며 어떤지 물었다.

움찔, 아팠다. 많이 아팠다.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아픔들까지 잠에서 확 깨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이 덧붙인 말은 다른 곳도 아팠을 텐데 왜 이제야 왔냐고 했다. 진료실에서 예상 밖의 문진에 정신이 없었다. 내가 많이 아팠나 생각해봤다. 열흘 치의 약을 주며 일단 먼저 약을 복용하고 경과를 관찰하자고 했다. 검사를 완료한 것도 아니고 병명을 진단 내리지도 않았는데, 약부터 복용하라니. 의문이 들었지만 그렇게 하기로 하고 진료실을 벗어났다.

대기실에 앉았다. 숨이 이제야 쉬어지는 듯 크게 숨을 내뱉었다. 


간호사님이 불러 검사 순서를 알려 고 동의서에 사인을 부탁했다. 동의서란 말에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쉽게 검사에 필요한 조치겠지 싶어 사인을 위해 서류를 받았다. 서류에 낯설지 않은 병명이 눈으로 들어왔다. 간호사님에게 혹시 기재된 병명과 내가 관련이 있느냐 물었다. 의사 선생님이 필요한 검사라고 판단해 검사한다고 했다. 전혀 내 시나리오에 없던 병명 앞에 덜컥 두려움이 쓰나미가 되어 밀려왔다. ‘그래 병원이란 과하게 범위를 넓혀 검사를 하니 걱정할 것 없어.’ 스스로 다독이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검사를 마쳤다.

 

주차한 곳으로 가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라고 하더냐고 물어왔다. 그 물음이 신호탄이 되었다. 막연한 두려움이 점점 위세를 뽐내며 내 온몸을 강하게 끌어안아 벗어날 수 없게 했다. 의사의 손길이 닿은 모든 곳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아우성이 쏟아졌다. 아프다. 아프다.

정말 아픈 것인지 두려움의 환상이 아프게 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아팠다. 처방 약을 받아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병명을 검색해봤다.


며칠 기분이 바닥을 기는 듯 가라앉았다. 순간순간 두려움이 나를 내가 아니게 했다.

걱정과 두려움이라는 녀석은 항상 이렇다. 처음엔 작은 미세먼지 같았던 게 순식간에 세를 불려 큰 덩어리가 된다. 흡입력 좋은 청소기 한방이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녀석이..... 아직 확실한 진단이 내려진 것도 아니다. 섣부르게 나를 걱정과 두려움의 장소로 끌고 갈 이유가 없다. 약 빼먹지 말고 잘 챙기자. 그리고 예약한 날짜에 의사에게 들으면 된다. 듣고 보면 요 며칠의 호들갑이 부끄러워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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