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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May 10. 2022

가시

뱉어내고 싶은 말이 목에 걸려.....

 끝내 입 밖으로 뱉어지지 못한 말이 목구멍에 가시로 박혀 나를 찔러온다.

 억수같이 쏟아내는 빗소리에 잠에서 깬다. 태풍급 강풍을 동반한 많은 비가 내릴 거란 일기예보가 적중했나 보다. 지붕 위를 무겁게 때리는 비는 내 마음에도 고스란히 내려앉는다. 무섭게 내리던 비는 꿈속이었던 것처럼 아침엔 갓 시집온 새색시 치맛자락 나부끼듯 조용히 부슬비만 마당에 내려앉고 있다.

 전날 병원을 가기 위해 시어머님이 오셨다. 아들네 집이 편치만은 않으신가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며느리의 불만 가득한 뚱한 얼굴과 뻣뻣한 행동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짐작하셨을 거다.

 아침밥을 함께 먹으며 ‘비도 오는데 하루 더 있다 내일 가세요’라고 하고 싶었으나 서걱서걱 밥알과 섞이지 못한 말이 끝끝내 입속만 돌아다닌다.

 아이 등교를 위해 서둘러 나오는 내 뒤통수가 따끔따끔하다. 애써 외면하고 밖으로 나온다. 아들을 등교시킨 후 도서관 캘리그라피 수업에 갔다. 그 시간이 일렁이는 내 마음을 잔잔하게 가라앉힌다. 수업이 거의 끝날 무렵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 터미널까지 모셔 드렸다.” 한마디가 애써 가라앉힌 마음에 다시 거센 파도를 일게 한다.

 교실 창밖은 제법 굵은 빗방울이 요란하게 내린다. 아침 시간에 뱉어내지 못한 말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유영한다.’며느리인 나야 속에 응어리가 많아 그렇다 치고, 자식이면서 내일 가라는 말 한마디 못 하나‘ 말을 돌돌 속으로 굴린다.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차 안, 창을 연신 닦아 내는 와이퍼도 빗물 얼룩을 없애기엔 역부족인가 보다.  비가 시야를 가린다. 아침에 꺼내지 못한 말을 아무도 모르게 빗물에 숨겨 닦아 내고 싶다.

 나라고 마음 편할 리가 없다. 늙은 시어머니 구박하는 며느리 같아 상당히 언짢다. 나도 알고 있다. 도리에 어긋남은 없으나 정은 없고 무례한 것을, 스스로 꾹꾹 마음을 누르며 다독여 본다. 쉽지 않다. 이런 나의 죄책감은 어린 아들에게 옮겨간다.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는 이유를 붙여서 말이다.

 내게는 동기간이 남자 형제만 있다. 가끔 오빠에게 시댁 문제로 이야기하다 보면 어김없이 나를 탓한다. 남과 여를 구분 짓자는 게 아니다. 시댁 문제만큼은 엄연히 온도 차는 있다고 본다. 이렇듯 시댁 문제를 마음 터놓고 얘기 나눌 자매가 없다는 게 항상 불만이었다. 궁여지책으로 올케언니와 수다를 한다.

 올케언니는 친정아버지만 계신다. 작년 가을 정정하던 분이 갑작스레 주저앉아 허리를 다친 후 아들네 집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다. 그런 올케언니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도 없다. 시어머님 흉을 보며 나의 무거운 속내를 가볍게 한다. 올케언니는 그만큼의 무게를 넘겨받았을 거다. 별수 없이 나 역시 형편없는 사람이다 싶다.

 올케언니는 오빠에게 고맙다고 한다. 자신의 남동생이 못하는 부분을 오빠가 친정아버지에게 한다고 한다. 주말마다 목욕탕에 모시고 간다고. 예전 사돈어른이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도 퇴근 전 좋아하는 음식을 주문하고 포장해와 손수 쌈을 싸 입에 넣어 주는 다정함도 목격한 터라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오빠는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살갑지 못한 죄스러움이 있다 했다. 다시 그 감정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마음이 장인어른에 대한 연민을 갖게 했나 보다. 그러니 나에게도 후회될 행동은 하지 않길 당부한다.

 모르는 게 아니다. 귀에 따라붙은 내 마음의 잔소리가 조용한 여름밤 고목에 붙어 시끄럽게 우는 매미처럼 성가시다. 마음과는 별개로 주춤주춤한다. 그 사이 시어머님의 시간이 성큼 내 앞으로 당겨져 있다. 나중에 후회할 일 만들지 말라는 오빠의 말이 죄책감의 채찍질을 하는 것 같아 아프고, 불편하다.

 내 안에 요동치는 감정을 모른 척 싹 물러내야 할지. 거센 파도에 맡기고 함께 부대껴야 할지. 감정에 지치다 못해 힘에 부친 지금 아침에 뱉어내지 못한 말이 목구멍에 박힌 가시처럼 당분간 나를 몹시 아프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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