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핑크뚱 May 17. 2022

달걀

내겐 사랑 너에겐 뭘까?

 슬쩍궁 마음을 건드리듯 부드러운 바람이 이는 쨍한 일요일 한낮이다.


 깨끗이 빤 빨래가 질서 정연하게 줄 서 따뜻한 햇볕과 바람에 나부낀다. 한나절 후면 한껏 햇볕을 머금은 뽀송뽀송한 빨래를 개킬 생각에 행복감이 밀려온다. 이렇듯 마음이 간질간질할 때 아들의 불쑥 뱉은 삶은 달걀이 먹고 싶다는 말이 나를 행복한 단상으로부터 끄집어낸다.


 아들은 유난히 입이 짧았다. 특히 닭고기, 달걀을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 명확한 이유를 알지는 못하고 어림짐작만 한다. 네댓 살 때쯤 온몸을 뒤덮은 두드러기가 원인이었던 듯하다. 의사 선생님은 그날 먹은 음식이 원인일 거라 했다.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을 때라 이삼일 간격의 식단에 닭고기와 달걀이 겹쳤다. 그 사실을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렸고,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들은 자신의 무의식이라는 깊은 마음 편에 닭고기와 달걀은 안 돼!라고 담아 두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아들이 10살이 되면서 좋아하는 웹툰 속에 등장하는 음식을 간간이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삶은 달걀이다.


 나의 유년 시절은 없어 못 먹던 것이었다. 특히, 삶은 달걀은 소풍에나 싸주던 귀한 것이었다. 사이다 한 병에 달걀 서너 개만으로도 소풍의 재미는 배가되었다. 또, 어릴 적 들판에 지천으로  핀 개망초꽃을 닮은 반숙 프라이에 간장과 참기름으로 쓱싹 비벼 먹을 때면 세상 모든 것이 하찮게 느껴질 정도였다.


 집에서 키우던 닭이 알을 낳으면 도시락에 소담스레 프라이를 올려주셨다. 안타깝게도 삼 남매 모두에게 행운이 돌아가진 않았다. 그래서 양은 도시락 뚜껑을 열 때는 항상 조마조마했고 두근두근 했다. 뚜껑을 살포시 열면 고소한 식용유 냄새가 먼저 엄마로부터 선택받았음을 알려줬다. 그 뒤로 밥 위에 올려져 있는 반들반들 윤기 흐르는 프라이는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다. 그만큼 늘 고팠던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느낌이라 종일 행복했다.


 이렇듯 나에겐 엄마 사랑을 확인받을 수 있는 달걀을 싫어하는 아들이 이해되지 않아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아들이 불쑥불쑥 요구할 때는 난감하지만, 될 수 있으면 만들어 주려 노력한다. 달걀을 싫어해 냉장고 속의 이 칸은 항상 비어있었다. 나라가 들썩이던 달걀값 파동에도 남의 이야기였다. 최근에야 드문드문 마트에서 한판은 무리고 십여 개가 포장된 것을 산다. 이날처럼 급작스레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쑥 뱉은 요구에 순간 내 머릿속은 냉장고 속을 뒤지고 있다. 다행이다. 전날 장 봐다 놓은 게 생각난다.

 얼른 다섯 개를 꺼내 물로 깨끗이 샤워시킨다. 냄비에 잠길 정도의 물을 채우고 소금 한 자밤과 함께 넣어 가스 불에 올린다. 십여 분 정도 팔팔 끓이면 완전한 완숙이 된다. 그 후 오 분 정도 찬물에 담가 둔다. 껍질을 수월하게 벗기기 위해서다. 이 과정이 없으면 달걀 깔 때 자동으로 애먼 소리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껍질이 수월하게 벗겨진다. 노른자도 알맞게 잘 익었다.


 아들은 고사리밥 같은 손으로 달걀 하나를 집어 들고 껍질을 깐다. 흰자와 노른자를 다시 분리한다. 그중 흰자만 소금에 찍어 입으로 넣는다. 노른자는 접시 가운데를 비켜 둔다. 노른자를 먹지 않는다.


 처음엔 싫은 소리도 했다. 그 말은 조용한 귓가에 울리는 성가신 모깃소리처럼 잔소리가 됐다. 내 어릴 적 엄마는 잔소리가 많았다. 자식 빗나가지 않고 올곧게 성장하길 바라는 소리였지만 어린 나는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었었다. 그냥 듣기 싫고 귀만 아팠다. 의식적으로 아들에겐 조심한다. 그러나 부지불식간에 나 올 때는 나도 어쩌지 못한다.


 이날만큼은 잔소리를 접시 가장자리에 놓인 노른자와 함께 내 입속으로 삼킨다. 목구멍이 꽉 막혀온다. 아무리 좋아하는 달걀이지만 흰자 없는 노른자는 힘든 사랑이다.


 재바르게 손으로 물컵을 찾아 입으로 가져다 대며 ‘엄마에겐 사랑인 달걀이 너에겐 뭘까’ 물과 함께 목구멍으로 흘려보낸다.

작가의 이전글 가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