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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May 25. 2022

라면

행복이 별건가!

후루룩 블랙홀 같은 입속으로 끊임없이 빨려 들어간다. 꼬불꼬불 탱탱한 면발과 짭조름하고 살짝 매콤함이 조화를 이뤄 산해진미 부럽지 않은 맛이 혀끝에서 느껴진다.

 누군가는 열전도율이 좋은 양은 냄비에 끓인 게 낫다 하고, 화력이 좋은 곳에서 끓인 것이 낫다 한다. 내가 생각하기엔 뭐래도 봉지에 떡하니 제시한 조리법대로 끓일 때 최상의 맛이 표현된다고 본다. 종이컵 세 개 분량인 물 550ml를 냄비에 넣어 끓인 후 면과 스프를 같이 넣고 4분 30초간 더 끓이면 가장 간단하면서 맛있게 만들어진다.

 요즘은 다양한 첨가물을 넣어 인스턴트 같지 않고 요리 모습으로 끓여 내기도 한다. 내가 가장 즐기는 방법은 면이 꼬들꼬들할 때 풀지 않은 달걀 탁, 송송 썬 대파 가득 넣어 끓인 것이 최고다.

 통계적으로 라면은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좋아하고, 일 인당 소비량도 세계 최고라고 한다. 그만큼 조리가 간단하고, 적은 시간 투자로 맛있는 한 끼 식사로 손색없기 때문일 것이다.

 내 어릴 적엔 국수보다 귀해 마음껏 먹지 못했다. 엄마는 삼 남매가 라면이 먹고 싶다면 국수 큰 뭉텅이에 딸랑 하나를 넣어 끓여 주셨다. 중면이라 굵어 면발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제아무리 스프가 마법 가루라지만 많은 면의 맛을 하나가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은 국수 없이 한 번에 여러 개도 끓여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데, 화학적 조미료와 과도한 나트륨으로 인해 건강에 해롭고, 특히 살찌는 음식이라 안타깝게도 자주 먹지 못하고 있다.


 주말 아침이다. 평일보단 조금 느긋하지만, 마음은 항상 바쁘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짓누르는 생각이 식구들 밥이다.

 한때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 문구처럼 주중 열심히 주부로 엄마로 살았으니 격하게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요즘 나는 심한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솔직히 하고 싶지 않다.

 아들의 주말은 더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시작된다. 나는 깼어도 자는 척으로 외면하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행동이다. <오무라이스 잼잼>이라는 웹툰을 즐겨 읽고 있어 부쩍 음식에 관심 많아졌다. 책 속 소개된 다양한 음식들에 정신이 빼앗겨 있다.

 입이 짧아 고생한 유아기를 생각하면 반갑고 고마운 일이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 달라져 있다. 의욕이란 것이 원래 내 몸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듯 빠져나가고 없다.

 이른 아침 대놓고 엄마를 깨우지는 않는다. 환하게 불을 켜고, 거실과 방을 번잡스럽게 오가며 책 한가득 안아 들고 온다. 그렇게 하면 어쩔 수 없이 일어나게 된다.

 내가 깼다는 것을 확인한 후부터는 아침 메뉴에 대해 시종일관 입을 닫지 않고 물어 온다. 그럼 깊이 고민하듯 하며 이것저것 메뉴를 불러본다. 그중 선택받지 못한 메뉴는 빠르게 지워간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어제 과음한 남편과 아들 모두 만족할만한 라면 메뉴를 내놓는다. 기분 좋게 덥석 받는다. 지독히도 밥하기 싫은 날 라면 끓이기 정도는 행복이다.

 아들은 라면을 좋아한다. 솔직히 끓인 것보다 끓이지 않은 것을 사랑한다. 내 양심이란 것은 손바닥 뒤집듯 쉽게 변해 끓이지 않은 것은 안 된다며 불량 엄마의 탈출구를 만든다.

 뭐든 잘 들어주는 좋은 엄마 흉내 내기를 시작해본다. 얼마를 먹을지 양을 정하고 냄비에 물을 부어 가스 불에 올린다. 물이 팔팔 끓어 오면 여러 개로 조각낸 면을 넣을 준비를 한다. 옆에서 시종일관 조잘조잘 거리며 지켜보던 아들에게 라면 조각쯤은 보너스로 손에 안겨준다.

 끓인 라면 생각만으로도 벅차게 기분 좋은데 조각까지 덤으로 손에 넣었으니 아이 얼굴에 웃음이 번지며 행복이 느껴진다.

 받아 든 조각을 입에 넣으며 얼마 전 책에서 읽었다면 맷 비둘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엄마, 맷 비둘기 어미는 모이를 입에서 죽처럼 만들어 새끼 입속에 넣어준대”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다 “엄마도 그렇게 해 줄까?” 웃으면 말을 건넨다.

둘은 누가 먼 저랄 것도 없이 한참을 바라보며 웃는다.

 좋아하는 라면이 끓고 있고, 좋아하는 책에서 알게 된 것을 조잘조잘 나에게 이야기하며 대화하는 게 좋다.

 행복이 별건가 좀 불량스러운 엄마라아이랑 함께 만족하는 시간이면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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