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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May 31. 2022

내 사랑도 단수중

밥 한 끼 정도야...

 알람 소리가 요란하다. 머리맡에 핸드폰으로 손이 얼른 간다. 혼자 자는 게 무섭고 엄마, 아빠랑 함께 자는 게 행복이라는 아들 덕에 촘촘히 한 방에 있어 혹시라도 아들이 깰까 서둘러 껐다.

 요즘 미라클 모닝이 유행이다. 나의 기상 시간도 유행에 맞춰진 듯하다. 출근이 이른 남편 덕이기도 하고, 진해로 이사 왔으나 전학을 원하지 않는 아이 덕이기도 하다.


 몇 해 전 난생처음 구급차를 탔다.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만 보 걷기를 위해 공원을 돌다 순간 움직일 수 없었다. 이 일로 입원해 치료까지 받았다. 다이어트가 되면 좋겠으나 쉽지 않다. 살짝  허리 근력을 키우기 위한 목적 선회로 새벽 운동 습관을 만든다.

 기상 후 한 시간 가량 운동과 남편 출근 그리고 아이랑 등교를 위해 삼십 분가량 차로 움직여야 하니 일 분 일 초가 빠듯하다.


 이날도 아이 등교 준비를 끝내고 서둘러 현관을 나섰다. 대문 아래 틈새로 빼꼼 전단지가 보인다. 궁금해 주워 들었다. 당일 오후 세 시간가량 단수 관련 안내다.

 시간이 얼추 아이랑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라 대수롭지 않게 훑고 현관 앞에 툭 던져놓는다. 그렇게 단수 통보는 비행기 없는 하늘 구름길처럼 머릿속 기억에 궤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으로 데리러 간다. 어김없이 다음 목적지는 도서관이다. 이른 출근만큼 남편의 퇴근 시간도 이르다. 도서관에 더 있고 싶은 아들과 마음이 바빠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 나 사이에는 늘 보이지 않는 신경 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다행이다. 서로에게 무리 없이 타협이 이루어졌고, 평소보다 빠른 귀가가 이루어진다. 집으로 가는 자동차에서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집밥을 좋아하니 저녁밥 이야기다. 서둘러 돌아와 나는 쌀을 씻기 위해 수돗물을 틀었다. 수도관을 통해  더위를 식혀줄 시원한 소낙비처럼 쏟아내야 할 수돗물의 반응이 없다. 순간 당혹스럽다. 곧이어 아침의 전단지머릿속을 유영한다.

 난감하다. 그것도 잠시,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밥하기 싫은 나를 하늘이 보우하사, 수돗물이 나오기 전에 얼른 저녁으로 배달시켜 먹고 싶다.

 


 남편을 속된 말로 남의 편이라 하지 않던가, 진정 그랬다. 전단지에 기재된 담당자에게 전화한다. 연신 죄송하다며 원인 파악이 아직이라는 담당자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린다. “그럼 밥을 할 수 없습니까?” 묻는 남편이 부끄럽고 얄밉다. 먹고사는 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화두인 것 같다.

 겉으로 내색하지 못한 구시렁이 나온다. 먼저 남편의 배달시켜 먹자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럼 마지못한 척하며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거다.

 늦은 밤에나 정상적인 수돗물 공급이 가능할 거란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남편의 민원 전화가 여태 찾지 못한 고장을 서둘러 고칠 것 같은 조급함이 인다. 얼른 저녁으로 배달 음식을 먹자고 다. 남편은 탐탁지 않은 얼굴로 마지못해 그러자 한다.

 남의 편이 좋든 싫든 중요치 않다. 내 게으름에 의해 배달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부득이한 선택이니 마음은 한결 편했다.

 코로나19 확진으로 아픈 몸으로도 식구들 밥을 챙겼던 억울함이 있었다. 예기치 않게 길어진 단수 덕에 맛도 있고 몸도 편한 저녁을 해결할 수 있어 묵어있는 억울함이 사라지는  듯했다.


 저녁을 해결한 후 불현듯 남편에 대한 내 마음이 보인다. 사랑의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흐르던 그때. 현재 내 안의 사랑이 단수 중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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