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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Jan 03. 2023

줄어든 나이가 갑자기 늘어난 새해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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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는 새해가 되면 언론들은 새롭게 바뀌는 제도에 관해 바쁘게 기사화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작년과 달라진 제도를 연신 쏟아냈다. 새롭게 바뀌는 제도 중 나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어당긴 것은 법적, 사회적인 나이를 만 나이로 통일한다는 것이다.

새해부터라 함은 첫 달의 첫날인 1월 1일이 기준이라 생각하지 않나? 남들은 모르겠고 나는 그랬다. 해가 바뀌기 전부터 주워들은 만 나이에 대해 아들에게 이야기를 종종 했다. 간단하게 해가 바뀌어도 네 나이는 11살이 아니라 9살이 된다며 어려져 좋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번 이야기는 이렇게 나의 꼼꼼하지 않고 대충 쓱 훑어 얻은 정보를 완벽한 정보라 머릿속에 인식하는 지랄 같은 확신에서 시작됐다.   

  

새해 첫날. 아침 메뉴로 떡국이 아닌 비빔밥을 준비했다. 며칠 전 특별한 날처럼 남편 생일을 요란스럽게 준비하며 만든 나물이 해를 넘겨 2년째 냉장고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묵은해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메뉴를 준비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비빔밥은 새해 첫날 내 특수임무를 부여받은 요원들 같다.


이미 준비된 나물에 갓 지은 뽀얀 쌀밥만으로는 2% 부족한 상차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함께 먹을 뜨끈하면서도 시원한 북엇국을 끓여 부지런함을 뽐냈다. 그래야 군소리가 나와도 성실하지 못한 아침 메뉴에 대한 할 말이 생긴다.  

   

나는 태생적으로 매운 걸 싫어한다. 비빔밥에 고추장은 Never, 절대 함께하지 않는다. 밖에서 먹는 음식에 다대기도 일절 넣어 먹지 않는다. 그러나 나와는 별개로 마주 상에 앉은 두 남자는 고추장을 사랑한다.

요즘 제법 매운 게 맛있다는 아들이다. 가끔 손가락에 고추장을 푹 찍어 추파-고추장을 만들어 빨아먹을 정도니 인정한다.

아들의 숟가락이 고추장 그릇으로 향하는 모습이 서슴없다. 나는 미간을 반사적으로 찡그리며 숟가락 위 고추장을 봤다. 많다 싶다. 깊게 파인 내 미간 주름 따위엔 관심도 없는 아들이다. 고추장을 비빔밥에 쓱쓱 비볐다. 허여멀건 내 것이 붉은 비빔밥 나라의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들은 고루 비벼진 비빔밥을 한 숟가락 가득 떠 입으로 넣었다. 나도 모르게 숟가락을 눈으로 좇으며 속엣말이 튀어나왔다.

“매울 것 같은데….”

내 말과 걱정이 아들 숟가락에 살짝 얹어져 입속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스하스하, 엄마 너무 매워요”

말과 동시에 요란스럽게 물을 찾고 밖으로 쭉 빼낸 혓바닥에 손부채질로 연신 바람을 일으켰다.

“엄마, 올해 제가 9살이라 너무 어려서 매운 걸 못 먹나 봐요.”

순간 무슨 소리지 하는 얼굴로 아들을 바라봤다.

“아들, 너 9살에 손가락에 고추장 푹 찍어 모자 만들어 사탕처럼 빨아먹었어!”

“아니, 엄마가 저의 미래를 어떻게 아시는지요??? 전 이제야 9살인데요.”

그렇다 아들은 올해부터 만 9살이 된 어린이였다.

“엄마, 제가 11살이면 맵다고 하지 않았을 텐데, 9살이라 너무 어려서 그래요.”

“풉, 하하하”

웃음이 터졌다. 아들이 귀엽다. 매워 혓바닥을 길게 빼고 손부채질하는 모습이 더 사랑스럽다.

그러다 불쑥 정말 1월 1일에 만 나이가 적용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벌써 그릇을 비운 나는 아들 옆에서 핸드폰을 열어 인터넷을 검색했다.

제기랄, 오는 6월 28일부터 시행된단다. 그렇지 내가 똑바로 알지도 못한 정보로 아들에게 유식한 척했구나. 요즘 아들이 좋아하는 게임 어몽어스의 임포스터가 된 기분이었다.

“미안, 아들 아직 만 나이 시작 전 이래. 지금 현재 네 나이 11살이 맞다.”

“정말요. 저 11살이에요?”

맵다고 혓바닥을 쭉 내밀었던 행동은 온데간데없고 순식간에 그릇을 깔끔하게 비웠다.

“11살 정도면 이 정도 맵기는 식은 죽 먹기죠!”

살짝 부어오른 빨간 입술에 미소를 그리며 이야기했다.

    

이날 줄어든 나이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아들은 조금 더 큰아이가 됐다. 하는 짓이 마냥 어리고 귀엽기만 한 줄 알았는데, 생각도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 마음도 새로워진 새해만큼 확실히 달라져 있다.

곧 다가올 더 귀여워질 9살의 아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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