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
나의 밤마실을 위해 너의 도움을 받았다.
모처럼 저녁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날은 간단 씨네에서 아무거나 군 없이 제가 공식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있는 책모임을 위한 외출이 가능한 날입니다. 껌딱지 같은 아무거나 군 없이 온전히 저 혼자 홀가분 한 마음으로 말입니다.
저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녀들도 만나고, 껌딱지에서 자유로워지는 날이니 종일 절로 콧노래가 흥얼거려졌습니다. 이번달은 아이들 방학이 있어 한 달이 한참 지나 만날 수 있어 더 감사한 날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간단 씨네 저녁을 소월하게 할 수 없습니다.
평소보다 이른 준비를 했습니다.
메뉴는 간단 씨와 아무거나 군 둘 다 좋아하는 뜨끈뜨끈한 수제비입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하루 걸러 하루 수제비를 먹었습니다.
엄마가 들이나 밭일로 늦어지면 어김없이 저녁은 수제비였습니다.
어린 내 손바닥만 한 커다란 멸치가 수영을 채 끝내지도 못한 물에 반죽한 밀가루를 무심하게 툭툭 던져 넣어 푹 끓여 주셨습니다.
이때의 음식은 바쁜 엄마의 푸석푸석한 얼굴만큼 맛대가리 없게 보였습니다.
누릇한 밀가루 반죽이 두껍게 뜨진 못생긴 수제비 덩이에 멸치 비늘이 합쳐져 제 숟가락으로 건져지는 날은 화들짝 놀라 입맛이 싹 가셨습니다. 못생긴 만큼 맛도 없었습니다. 그런 수제비를 지겹도록 먹었다는 게 조금 슬퍼집니다.
특별히 가리는 음식이 거의 없는 저이지만 아직까지 수제비만큼은 좋아지지 않습니다.
그런 제가 수제비를 만듭니다.
어린 시절부터 제 기억에 살고 있는 못생긴 수제비는 안됩니다.
육수는 멸치대신 황태포와 무, 양파를 넣어 찐하게 끓여 줍니다.
밀가루는 2인분가량을 볼에 담아 밑간으로 국간장을 첨가합니다.
요즘은 요리는 과학입니다. 아는 만큼 편해진다는 말입니다.
예전에는 손에 찐득하게 밀가루를 달라붙여 가며 반죽했지만, 요즘은 젓가락을 이용해 덩어리를 만든 다음 반죽하면 손에 붙지도 않고 깔끔하게 잘 됩니다.
이렇게 반죽한 밀가루 반죽은 한 시간가량 숙성시켜 사용하면 더 쫀득한 식감의 수제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숙성이 된 반죽은 밀가루를 바닥에 흩뿌려 들러붙지 않게 준비해 밀대로 밀어줍니다.
이때 중요한 건 너무 얇게 밀면 씹는 식감이 사라지므로 두께감이 적당히 있게 밀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 반죽이 적당한 두께로 밀어졌다면 이때부터 손으로 뜨면 됩니다.
끓이고 있는 육수의 건더기를 건져내고 반죽을 뜨 넣어 끓여 줍니다.
밀가루는 잘 끓여야 특유의 밀가루 냄새가 사라지니 야채보다 먼저 끓입니다.
이제 반죽을 다 넣었다면 집에 있는 야채들 적당히 썰어 넣어줍니다.
이날 저는 애호박, 양파, 당근이 있어 이렇게만 넣었습니다.
수제비에는 감자가 한 몫하는데 아쉽게도 없어 패스했습니다.
야채는 너무 푹 익히면 역시 씹는 식감이 물컹해 별로입니다.
생으로도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니 적당히 3분 정도 팔팔 끓여주면 됩니다.
요리가 끝났습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 간단 씨와 아무거나 군의 얼굴에 군침이 살짝 흘렀습니다.
간단 씨는 심심한 음식을 싫어해 청량초를 다져 함께 올려줍니다.
따끈한 수제비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구경하며 어린 시절 저와 다른 표정의 그들이 낯설고 감사했습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힘든 일을 하고 들어와 시간에 쫓기듯 저녁을 준비한 엄마였습니다.
자신의 고단함을 뒤로한 채 사랑하는 가족의 입에 들어갈 음식을 만들었지만 어린 자식은 몰랐습니다.
이미 못생기고 맛없는 수제비에 실망감으로 오만상의 얼굴을 하고 투정을 했습니다.
그때의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때의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참 부끄럽습니다.
참 미안합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엄마에게 죄송할 정도로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제 시간을 위해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으로 선택한 수제비입니다.
그때의 나와 다른 얼굴인 간단 씨와 아무거나 군에게 한 없이 고마운 마음입니다.
요리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선물은 뭐라해도 사랑하는 사람이 맛있게 음식을 먹어주며 행복해하는 얼굴이 아닐까요.
천천히 그들을 바라보며 행복을 만끽했고 깔끔하게 설거지까지 끝낸 후 외출했습니다.
그래서 더 고맙고 감사한 홀가분한 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