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아들 둘 키운다고 생각하세요.

내 아들은 하난데...

by 핑크뚱

"엄마, 나 귀가 너무 뜨거워요."

새벽녘에 일어나 운동하는 내게 와 아무거나 군이 말을 합니다.

"열이 있나?"

손으로 이마를 짚으니 꽤 뜨겁습니다. 얼른 체온계를 찾아 귀에 꽂아 열을 쟀습니다. '39도'.

"해열제 먹어야겠다."

항상 준비되어 있는 비상약인 해열제를 찾아 먹였습니다.

"잠을 푹 자야 열도 떨어지고 몸도 안 아파. 자러 가자."

다시 잠자리로 데려가 눕혀 재웠습니다. 그래도 컸다고 고열이 있어도 까무러지거나 하지 않아 다행입니다.


한숨 더 자고 일어난 아무거나 군의 컨디션이 좋습니다. 목소리만 조금 잠겼고, 침 넘길 때 따끔한 정도라며 괜찮다고 했습니다. 이마를 짚어보니 열도 제법 내렸습니다. 아침으로 지난주 먹지 못한 카레를 했습니다. 먹고 싶다고 해 했는데 카레를 앞에 두고 시간재기를 하듯 더딥니다. 겨우 반정도를 먹고 잘 안 넘어간다며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엄마는 무엇보다 이럴 때 제일 안쓰럽습니다. 아파서 못 먹을 때요. 잘 먹어야 병도 빨리 낫을 텐데 말입니다.


아침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내게 와 아무거나 군이 춥다고 합니다. 다시 열을 재어 보니 '38.9도' 해열제의 약효는 4~5시간 지속된다고 하니 다시 먹을 때가 된 겁니다. 해열제를 다시 먹이고 이불을 덮어 주며 누워 있으라 했습니다. 조금 후 방에 있던 아무거나 군 심심하다며 간단 씨에게 놀아 달라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간단 씨의 성질도 만만치 않습니다. 놀부 심보가 있어 항상 아무거나 군이 요구하는 반대로 합니다.)

"싫은데. 내가 왜?"

"아니, 저는 환자잖아요. 환자 기분 좀 맞춰주면 안 돼요?"

"안돼."

"진짜. 심심해요. 놀아주세요."

대충 이런 말을 주고받던 아무거나 군은 끝내 저를 부릅니다.

"엄마, 아빠가 안 놀아줘요."

그럼 저는 간단 씨를 채근합니다. 주말이면 이런 상황이 열두 번도 더 반복됩니다. 자녀 둘 이상 키우는 엄마들이 하는 육아의 고단함을 아빠와 아들에게서 그대로 느낍니다.

대부분은 둘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 생각하고 모른 척합니다. 하지만 이날은 아무거나 군이 아픈 날이며, 끄물끄물한 날씨에 제 마음도 동조해 함께 끄물끄물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가 있을 뿐.
- 존 러스킨


나에겐 나쁜 날씨가 많습니다. 이날도 그날 중 하루입니다. 끄물끄물하고 우중충한 날씨는 곧 제 기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난히 혼자 있고 싶고, 내 옆의 작은 소리도 내 마음을 깊이 찔러오는 날카로운 송곳 같았습니다. 그러니 짜증 유발자들에게서 몸서리처지게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티격태격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느어어어무 넓은 집에 살고 있어 슬픈 날이었습니다. 작은 소란은 끝끝내 아무거나 군이 울음을 터트리며 내게 와, 내 안에 꾹꾹 둘러뒀던 감정을 터트린 후에야 상황이 종료됐습니다.


뒤뚱뒤뚱, 아장아장 걷는 게 영 어설퍼 웃기고 귀여웠던 서너 살 아무거나 군. 걷기를 무지 싫어했습니다. 조금 걷다 두 팔 벌려 안아 달라고 하면 간단 씨는 뽀르르 뛰어 1m 앞으로 달려가 그곳까지 오면 안아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무거나 군은 또 뭣도 모르고 간단 씨에게 달려가지만 다시 달려온 만큼 멀어져 갑니다. 이렇게 서너 번 더 반복하면 끝내 아무거나 군이 울며 내게 달려와 안기고서야 끝이 났습니다. 이렇듯 간단 씨는 거짓말 안 보태고 한 번도 아무거나 군에게 맞춰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부자 사이는 길 지나는 모르는 아저씨보다 못한 사이가 됐습니다. 이 시기가 네여섯 살까지 최고점을 쭉 이어갔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아무거나 군을 점점 자라게 했고, 눈물 콧물 마를 날 없이 매일매일의 힘겨운 시기를 버터 낸 제가 있어 그나마 지금의 관계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간단 씨는 모릅니다. 다 자기 덕이랍니다. 웃기지도 않습니다.


이날 끝내 눈물 흘리며 엄마에게 (마음) 알아달라. (자기) 안아달라. (아빠) 혼내달라. 많은 생각을 눈에 가득 담고 내 품에 안깁니다.

예전에 아무거나 군에게 물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아빠를 이기려고 해? 어차피 네가 지고 울어야 끝이 나는데."

"아빠는 나보다 키도 크고, 힘도 세면서 한 번도 안 봐줘요. 나한테 져 줄수도 있잖아요."

문제는 이겁니다. 서로 질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 말입니다. 간단 씨는 꼬박꼬박 아빠를 이기려고 드는 아무거나 군이 괘씸해서라도 이겨야겠답니다. 아무거나 군은 어린 자신에게 한 번도 져 주지 않는 아빠가 미워서 더 이기고 싶다고 합니다. 이렇듯 다른 생각을 가지고 부딪히니 어리고 약한 아무거나 군이 울어야 끝이 날 밖에요.


일단 아무거나 군을 다독입니다. 이후 저의 날 선 목소리는 간단 씨를 향합니다. 집안 공기는 순식간에 빙판장이 됐습니다. 눈치 빠른 아무거나 군은 슬금슬금 제 눈치를 살핍니다. 하지만 눈치 없는 간단 씨는 끝끝내 별일도 아닌 걸로 제가 예민하게 군다고 생각합니다. 아, 정말 이런 날은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습니다. 뿅! 순간이동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픈 아무거나 군이 소리 높인 제 주변을 맴돌며 눈치 살피는 모습에 짠해져 그러지도 못합니다.


이날은 예전 아무거나 군이 심리센터에 다니며 놀이치료 할 때 25년 경력의 상담사분이 부모 양육태도를 검사한 후 제게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랑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 경험이 없어요. 자신의 감정이 우선인 분입니다. 어머님이 힘드시겠지만 마음 크게 먹고 아들 둘 키운다 생각하시는 게 오히려 편하실 겁니다."

정말 아들 둘 키우는 게 확실합니다. 하지만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은 하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