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개나 사랑할 수는 없어

개 산책에 천부적인 재능 1화

by 재승



늦가을, 저녁 산책으로 어스름 내린 돌길 위를 걷다가 메시지 하나를 받고 멈추었다. 순간 팽팽해진 리드줄 뒤로 우두커니 서서 바라본 휴대전화 화면 속에는 당시 임시 보호 중이었던 개 ‘찬’이 해외 입양 리스트에 올랐다는 소식이 들어있었다. 줄이 다시 느슨해질 때까지 개가, 그 길 위에서 발을 몇 번 굴렀을까. 겨우 리스트에 올랐을 뿐 구체적인 입양의 행방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별은 이미 시작된 것 같았다. 첫 번째로 임시 보호했던 강아지 ‘코코’의 해외 입양 출국 일정이 잡혔다는 말을 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동물 병원에 다녀오느라 탔던 펫택시의 뒷좌석에서 단 4일 후에 바로 출국해야 한다는 전화를 받았었다. 운이 좋게도 해외 입양과 함께 비행기 수화물 칸에 개를 태워줄 이동 봉사자가 빠르게 구해진 것이다. 차가 불편해서 내 옆구리에 딱 붙어 헥헥거리던 8개월의 강아지를 옆에 두고 조용히 울었었다.


기쁘지 않았다, 개가 입양을 간다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찬은 냄새를 맡기 바빴고, 그 날따라 더 부산스럽게 나와 걸음을 맞춰주지 않고 줄을 당겼다. 야속했다. 산책한 지 3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곧바로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찬은 산책이 시작되면 15분 안에 배변을 다 누기에 당장 종료한다고 해서 그의 방광이 터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비어버린 저녁 시간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지, 성에 차도록 산책하지 못해 상심한 개를 두고서 마냥 슬퍼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찬이 빠짐없이 들르고 싶어 하는 공원 내 다목적 공간에서 만난 동네의 다른 강아지들과 보호자들 사이, 어둑함을 빌려 뒤틀린 표정과 벌게진 눈시울을 틈틈이 감췄다.


찬은 3번째로 같이 살게 된 개였다. 살아온 날의 대부분을 동물 병원에서 보냈다는 7개월쯤의 하-얀 개가, 바깥으로 나온 것이 낯설어 납작하게 쭈그러든 모습의 사진이 그에 대한 첫 번째 기억이다. 해당 사진은 찬을 보호하고 있던 민간단체의 SNS로 볼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한 가정으로 임시 보호를 가 약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돌봄을 받고 다시 보호소로 돌아갔다. 그때 임시 보호 신청을 넣었다. 그 사진 속 찬의 모습이 첫 번째로 임시 보호했던 강아지 ‘코코’와 닮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낯선 곳에 와 영문을 모르고 당황하여 수심이 비치던 작은 눈, 커다란 코, 바보 같은 표정. 같이 살게 될 강아지는 운명처럼 다가온다. 그 순간에는 두 번 망설이지 못한다.


막상 보니 찬은 코코와 매우 달랐다. 하지만 같이 살기 시작한 1주 차에 곧 사랑스러워졌고, 2-3주 차에는 출근 전과 퇴근 후의 산책 루틴을 몸에 익혀가며 이 개와 평생 같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사실 임시 보호로 데려오는 순간부터 그러고 싶었다. 결국 해외 입양 리스트에 올랐다는 메시지의 답변으로 문의를 남겼다.


- 혹시 제가 입양 신청서를 낼 여지가 있을까요?

- 임시 보호자님 조건이 입양하기 어려운 조건인데, 이미 해외 입양 리스트에 올라간 상황이라서 신청이 불가합니다. 마음 아프시겠지만 입양 가기 전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입양 신청서를 내지도 못하고 입양 조건에 충분하지 못하다는 말을 들었다. 1인 가구는 보통 입양 대상으로 잘 고려되지 않는다. 이는 보호소 측에서 파양을 방지하고자 여러 가지의 경험적 사유를 바탕으로 만든 기준이고, 타당한 지점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때는 감정적으로 크게 상심하고 말았다. 진짜 가족을 찾게 되기 전까지 이 개에게 애정을 쏟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 개가 아니게 될 테니까. 이후로 여러 과정을 거치며 찬을 입양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당시엔 단숨에 모든 마음을 내려놓고 싶었다.


발을 씻길 때 한쪽 발을 유난히 들기 어려워한다는 이유로 슬개골 탈구가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는 것, 발을 씻기고 난 후에 습진이 생길까 간식을 물려 주고 물기가 사라질 때까지 손수건으로 조물조물하는 것, 하루에 변을 3번이나 누는 개의 마지막 것이 너무 무르다고 -사람도 여러 번 배변하면 무르게 된다- 나도 안 먹는 유산균의 종류를 고민하는 것, 건강 검진을 해야 할까 싶어 악착같이 돈을 모으려는 것, 아침 출근 전에 개 산책을 하고 논문 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6시 일어나는 것 -직장과 졸업 논문 준비를 병행하던 중이어서 글을 쓰기 위한 시간과 체력을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 골몰하고 있었다- 전부를 당장 그만두고 싶었다. 개에 대한 사랑이 헌신으로 가꾼 울창한 숲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숲 가운데 심긴, 그 토양이 없으면 잎사귀를 내기 어려운 단 한 그루의 나무에 가까웠다.


찬은 집에서 짖지 않는다. 노크 소리가 들리면 침대로 도망간다. 첫 번째로 임시 보호했던 강아지 코코가 짖는다고 현관 앞에서 수런거리던 이웃과의 트러블, 개와 살 때 가장 우려되는 지점을, 찬은 가볍게 넘어섰다. 찬은 목욕을 싫어하지만 막상 하면 얌전했다. 찬은 볼 수록 예뻤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찬은 퇴근하고 돌아온 나를 일반적인‘개’처럼 반겨주지 않아도 산책 도중에 만나는 새로운 사람과 강아지는 무척 좋아해서 누구나 “순하다”는 탄성을 자아내는 개였다. 그래서 타인, 타견과 마주쳤을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수고를 비교적 덜 해도 되었다.¹ 진돗개가 이러기 쉽지 않은데. 찬은 잘 때 나와 한 침대를 써 주는 개였다.² 또, 밥을 보고 달려들지는 않아도 편식은 하지 않는 강아지였다.³


¹ 입양하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타견에 대한 반응이 조금씩 생겨나 골머리 앓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² 자기 침구가 생기자마자 분리 수면을 택했다. 지금은 절대로 나와 같은 침대에서 자지 않는다.
³ 지금은 편식한다.



찬은 모든 면에서 키우기 용이했고, 물론 어느 면에서는 힘들었지만, 그래서 사랑스러웠다. 내가 바라는 조건을 충족한 개여서, 내가 견뎌내기 어려운 습성이나 성격을 가진 개가 아니라서, 견뎌낼 수 있게 하는 개라서 사랑했다. 나는 찬에게 바라는 것이 분명하게 있었다. 나와 같이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전제하에 돌봄의 품을 들였다. 애초에 임시 보호를 결정할 때, 전 임시 보호 가정의 SNS 계정을 틈틈이 들여다본 것도 이 개의 특성을 살펴보고 나랑 같이 살 수 있는 강아지인지 아닌지 가늠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 개를 사랑한 것이 아니다. 찬이라서 사랑했다.



- 찬아, 나랑 계속 같이 있어 주면 안 될까? 나랑만 살겠다고 떼를 써 주면 안 될까?



산책을 마치고 씻긴 발을 말리다 그 앞에 엎드려 또 울었다. 이 개의 삶에 잠깐 끼어드는 게 아니라, 평생을 같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찬은 내가 바로 앞에서 울든, 옆에서 울든, 뒤에서 울든 시선을 하나 주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돌리고 있거나 뒤돌아 누웠다. 개의 엉덩이를 껴안고 울다가, 한편으로 생각했다. 다행이다. 이 개는 해외로 갈 때 우는 나를 크게 신경 쓰지 않겠구나. 코코의 경우에는 비행기 화물칸에 탑승하기 위해 켄넬 안에 들어가 있는 채로, 울음이 터진 나를 계속 자꾸만 내다보아서 너무나 미안했었는데. 사랑하는 개가, 제발 이 과정을 파양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내내…….


그러다 울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이 개는 나를 사랑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개에 따라 인간의 감정에 반응하는 법은 다 다르고, 어떤 개는 거리감을 두는 것으로 배려를 표하기도 한다. 그러니 그때 찬의 반응으로 애착 형성을 운운하기는 적절하지 않은데, 다만 감정의 상호작용을 고려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살려 보고자 한다. 어떤 개를 사랑할 수 있는가에만 골몰하다가, 개는 누구를 사랑할까에 대해서 생각했던 순간을. 아침에 한 시간-저녁에 길어야 세 시간 겨우 그 정도로만 바깥을 거닐게 하는데, 하루에 단 서너 시간만 사는 것처럼 느끼지는 않을지, 그 서너 시간 중에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온전히 따라 주지 않는 이를 과연 좋아할지 고민했던 그 찰나를. 같이 있을 사람을 선택하지 못 하는 입장을, 생각한다.


개들은 사람을 필연적으로 사랑한다고 하나, 사랑할 반려를 고르지는 못한다. 선택되어 보호받는 처지에서 마침내 정을 붙이는 것을 과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물론 사람의 사랑을 개에게 투사할 수는 없다. 오랜 시간 같이 살게 된 인간에게 미우나 고우나 정을 붙이는 형태, 같이 사는 이를 파악하고 어느 부분을 신뢰하여 본견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여러 가지의 의존적 행위를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너는 어느 인간을 가장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냐고 묻고 싶다.


어떤 사람이 되어 줄까, 찬아. 네가 입양을 가기 전까지만이라도, 말야.


찬이 슬개골 탈구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수술 날을 정하며, 전반적인 사정을 고려해 입양 신청서를 넣어 볼 수 없겠느냐고 한 번 더 묻고 승낙을 받았던 순간에도 -해외 입양을 가고자 할 때는 개가 다친 상태여서는 안 된다. 다쳤다면 완치가 된 상태여야 하는데 슬개골 탈구는 완치라는 개념이 성립될 수 없는 증상이다- 다음과 같은 번민이 지속됐다.


너는 분명 더 좋은 곳으로 갈 수도 있다. 착하고 순하니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는 개니까. 너는 다른 동물을 착취하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서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네가 원할 때 뛰어놀 수 있는 집이나, 다른 형제가 있는 집으로 가서 개를 좋아하는 성향을 마음껏 표출하고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네가 다리가 아파서 부족한 내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면, 그건 부당하다. 정말 너를 위한다면 더 좋은 가정을 찾을 때까지 임시 보호의 형태를 고집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내 욕심에 희생양이 굳이 네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 집은 한 살짜리 강아지가 지내기에는 너무 조용하다. 더 많은 사람이 머물며 떠들고, 귀 기울일 수 있는 얘기가 많은 가족에게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개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가족 구성원이 나 하나여도 괜찮을까.


입양 신청에 대한 상담 전화의 마지막 질문은 입양 의사가 확고하냐는 것이었다. 혹시 유보적인 상태는 아닌지 물어보았고, 나는 위와 같은 말을 전했다. 보호단체 측에서는 확고한 대답으로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입양 승인을 받았다. 그렇게 찬과 나는 같이 살게 됐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이 개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개 산책에 천부적인 재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