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목표, 통제하기를 부정하기

개 산책에 천부적인 재능 5화

by 재승



산책을 마치고 개와 돌아오는 언덕길. 열기가 지글거리는 길 위로 미련을 뚝뚝 흘리며 뒤돌아보는 개를 괘념치 않고 오르막의 끝만 보고 걸어간다. 정신까지 발갛게 익는다. 그러니까 여름이 문제다.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드는 더위가. 길바닥에 잠시도 더 버티고 서 있을 수 없게 만드는 온도만 아니었어도 개와의 불화가 덜 했을 텐데.


멈추어 서는 네게 눈높이를 맞추고 앉아서, 어떻게 하고 싶어? 라고 물어보고, 가자는 대로 원 없이 걸었다가, 지치는 기색 없이 돌아오는 산책을 하고 싶었다. 돌아가 볼까? 그건 아니야? 어떻게 할래? 뒤로 가는 게 더 좋아, 앞으로 가는 게 더 좋아? 묻고 지켜보고 싶었다. 내 한계를 이기고, 네 한계를 몇 번이고 확인해 보고 싶기도 했다. 집의 바로 앞에서 걸음을 돌려 반대로 향한다. 좀 지쳐 보이긴 하지만, 발걸음에 생기가 붙었다. 좀 전까지 질질 끌려오던 녀석이.


물어볼 수 있었다. 선택지를 줄 수도 있었다. 어떤 것이 더 좋은지 확인할 수도 있었다. 열대야가 좀 수그러든 밤에는. 나의 여력을 뽑아낼 수 있는 날에는.



찬과의 산책 시간 중 대부분은 ‘훈련하기’였다. 바깥의 자극 요인에 휩싸여 홀로 튀어 나가지 않기, 흥분 가라앉히기. 줄 끝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기.


찬과 가장 처음 했던 산책 연습은 차가 지나갈 때 내 옆에 서 있기였다. 보호소에 있다가 낯선 곳으로 온 것이 두려워서인지 몰라도, 찬은 주행하는 차와 만나면 화들짝 놀라 도망가려고 했다. 위험한 행동이었기에 빠르게 개선하고자 했고, 집 앞 골목에서 걷다 차가 오면 옆에 앉히는 일을 반복했다. 시야에서 차가 사라질 때까지 바닥에 앉아 기다리면서 내 옆에 있으면 별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 주려고 했다. 무서운 상황에 노출되는 일이 찬에게는 퍽 스트레스였겠지만 비교적 금방 좋아졌다. 곧 찻길 옆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고,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옆으로 피해 설 수도 있게 되었다. 지금은 차를 보고 전혀 위협감을 느끼지 않아 오히려 자기 갈 길만 가려고 해서 문제다.


두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멀리 도망치지 않고 보호자에게 오기를 가르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그것까지는 되지 않았다. 여태까지 지내온 바로 미루어 보건대, 찬은 자극원으로부터 도망가거나 직접 다가가려는 경향, 즉 자기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질이 있다. 흥분도가 높아서 산책 중 줄을 당기는 정도도 강했다. 전 임시 보호처에서 더 어릴 때부터 줄을 끄는 경향이 있어 고치려고 했었다는 얘기를 전해 온 적이 있었다. 우선, 흥분하여 앞서나가려고 하면 걷지 않고 멈춰 서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이는 이전의 문제와 달리 쉽게 개선되지 않아서 결국 방문 훈련을 받기로 했다.


찬과는 임시 보호를 막 시작했을 무렵부터 산책 시간을 길게 가졌다. 이전에 돌보던 강아지들과 오래 걸었던 길이 내게 들여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방문 훈련사는 줄 당김 개선을 위해 산책 시간과 줄의 길이를 제한하여 그 방식을 완전히 바꾸길 권고했다. 줄을 아주 짧게 잡아 개가 바로 옆에서 걷도록 제안하고 산책의 반경도 집 주변으로 한정했다. 옆에서 걷는 것이 익숙해지면 줄의 길이와 산책의 거리를 조금씩 늘리라는 것이었는데, 자극원이 적은 환경에서 규칙을 익히고, 그 방식을 적용할 수 있는 영역을 점차 넓혀가는 방식인 것 같았다. 또‘리드워크’라는 훈련, 쉽게 말해 개가 앞서나가려고 하면 그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걸음을 틀어 줄을 쥔 이를 따라오게 만드는 방법도 권했다.


요컨대 개의 자유를 제한하고 통제를 늘리되 개가 인간에게 의존하게 하여 불안감을 낮추는 방식이었다. 개의 흥분은 불안감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방문 훈련사는 찬이 산책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불안해하는 타입이라고 말하며, 나더러 이제 ‘진짜 누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산책 일지- 진짜 누나 되기


# 2024.02.28.

산책 방식의 변동은 현관에서부터 시작이다. 이전에는 찬이 중문에 코를 박고 있다가 열리자마자 뛰쳐나갔다면, 이제는 내가 먼저 나가야 한다. 찬은 이리 와, 라고 할 때까지 앉아서 기다린다. 집에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다.

산책 반경과 시간을 줄이고, 옆에서 걷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찬이 주변의 소리나 움직이는 것들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았다. 버스나 행인이 지나가면 고개가 아주 빠르게 여기저기로 움직인다. 그 대상에게 미련이 남아서라거나 산책이 더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들이 안전한지 아닌지 주시해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럴 때는 개가 바라볼 수 있게 둘 필요가 있어 보였다. “봐. 근데 별것 아니지?”의 경험이 쌓일 수 있도록.



# 2024.03.06.

뒷산 언저리로 산책 경로를 조금 확장했다. 오랜만에 산으로 가니 냄새를 맡기 위해 안 움직이거나 자기 가고 싶은 데로 가자고 고집부리는 횟수가 늘었다. 나는 앉아 있는데 혼자 저만치 가 버리기도 한다. 새로운 장소에서 마음이 급해지는 모양이다. 그 원인이 호기심이든 불안감이든 간에, 이 공간을 파악하고 알아내야 한다는 욕구가 앞서나가는 것 같다.




찬에게 산책 훈련 과정은 꽤 당혹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억지로 받아들여야 했을 테고, 하지만 익숙해졌다. 결과적으로 줄을 짧게 잡으면 옆에서 걷고, 길게 하면 자유롭게 탐색하는 식의 규칙을 터득했다. 타견을 보면 달려들어 놀자고 하는 호승심 있는 행동도 내가 먼저 제지하면 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많은 발전에도 불구하고, 되려 개를 통제할 수 없는 순간에 대한 스트레스와 통제 자체에 대한 의문이 쌓여갔다. 어떤 훈련사들은 개에게서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이 개에게 더 평안함을 준다고 말하기도 한다. 판단 자체를 할 필요 없으니 불안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글쎄, 내가 찬을 보면서 느낀 바는 이 개가 자기 주도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불안과 직결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 2024.03.09.

바람 냄새 맡으면서 꼬리 왕창 들고 좋아하는 찬이. 공터에서 몇 번 냄새 맡을 수 있게 해 줬더니 오자마자 또 흥분했다. 물론 나만 아는 미세한 흥분이다. 찬은 다른 강아지들에 비해 유독 코를 땅에 박고 다니는 타입이기는 하다. 산책할 때 땅에 머리를 박고 다니는 애들의 경우, 불안감이 높은 거라는데. 정말 이게 불안해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호기심에 기인한 집착적 탐구 행동으로 보이는데…….





1년 반이 넘게 지난 지금에도 찬이 흥분감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산책 구간이 있다. 공원 내의 운동장으로 향하는 길목이다.


공원 내 운동장은 높은 울타리를 치고 인공 잔디를 깔아 두어 축구나 배드민턴뿐 아니라 이따금 각종 체험학습 공간으로도 이용된다.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는 밤에는 동네의 개들이 뛰어놀기도 한다. 찬은 그 공간을 정말 좋아한다. 들어가면 인공 잔디에 코를 박고 지난밤 있었던 일을 더듬느라 여념이 없다. 아래 길목이 보이는 곳에 서서 다른 개들이 오지는 않는지 기다리기도 하고, 안면 있는 개가 찾아오면 잔뜩 신나 한다. 그 공간에 아는 개가 있는 상황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곳에 먼저 도착한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리면 좀처럼 진정하지 못한다. 그럴 때 찬의 산책 목표는 오로지 그곳으로 달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공원은 뒷산으로 이어지는 경로에 놓여, 중간 지점부터는 오르막의 경로가 조성되어 있다. 운동장은 그 오르막의 가운데에 있고. 찬의 흥분은 그 길을 오르면서 커진다. 운동장의 출입구가 열릴 때 나는 소리나 그 안에서 사람들이나 개가 모여 떠드는 소리가 들릴 때, 혹은 그 안에서 통제 없이 뛰어놀았던 바로 어젯밤의 기억이 살아날 때 목줄이 팽팽해진다. 주둥이는 벌어지고 혀가 앞으로 삐죽이 나온다. 등에서부터 목까지의 선이 곧게 서고, 앞발의 걸음걸이는 당장 달려가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누르는 듯 종종거린다. 그 공간과 가까워질수록 찬의 어깨와 가슴이 앞서 나가는 것을 막기 힘들어진다.


운동장으로 향하는 오르막은 높게 자란 소나무를 둘러싼 원형의 트랙에서 가지를 뻗은 듯 트인 길에서 시작된다. 흥분을 조절하는 법을 익혀보려고 그 트랙에서 리드워크 훈련을 한 적이 있다. 찬은 잘 걷다가도 오르막의 길목이 가까워지면 줄을 팽팽하게 당겼다. 그러면 곧장 돌아서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그 지점을 스치고, 스치며, 둥그렇게, 찬이 비교적 침착하게 나를 따라올 때까지 돌았다.



줄이 팽팽해지도록 두면 곧 달려갈 거야. 그러니 그 전에 자제시켜야 해. 한두 번 허락하면, 뛰고 싶을 때마다 지체하지 않고 뛸 거야.



훈련에 해를 거듭하다 보니 찬이 운동장에 들어가면 안 될 때를 알게 되기도 했다. 가령, 안에 사람들이 축구공을 차고 있을 때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 상황마다 내가 거듭 들어가지 못하게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그 안에 자기 강아지 친구들이 들어가 있을 때만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뛰어 들어간다. 허용되는 환경을 기가 막히게 알아보는 것이다. 또한 내가 여력이 남아있을 때, 그러니까 이 아이의 딴죽을 받아들일 수 있는, 좀 더 걸을까 말까를 고민하는 찰나에만 고집을 피우고, 전혀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는 말을 잘 따른다.


찬은 알아챈다. 자기 마음이 들어갈 부분이 있는지 없는지.


찬은 체득한다. 제 의지만으로 내달릴 수는 없다는 것을, 보호자가 단호하게 막아서고 있다는 것을, 그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체념한다.



참아야 한다고 말하는 거 나도 싫어. 충동을 어떻게 조절한담. 나도 못하는 걸 개한테 어떻게 하라고 하는 거야. 나도 조절하는 법을 모르는데.



다만 왜 안 되는가를 되묻지는 못한다. 그러니 왜, 에 대한 물음은 오로지 나에게 남는다.



개가 줄을 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눈총받는 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너는 왜,




이렇게 그 운동장만 보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굴어. 이 줄이 너에게는 고삐야? 내가 이 줄을 고삐처럼 쥐고 있어야 해?


통제할 수 있어서 괴로웠을까. 개의 훈련 과정이 인간에게 의존하게 만들어 주도권을 넘겨주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좀처럼 되지 않는 나의 개를 보며 급기야 나보다 세상을 먼저 알게 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나와 익숙해지기 전에 바깥을 유랑하는 법을 더 먼저 배우게 한 것이 문제였을 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동시에, 목줄을 놔 버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달려 나가도록 두고 싶다.


산책하다 종종 나를 잊는 듯한 개에게, 매어준 줄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 같은 개에게, 좀처럼 나를 바라보는 일이 없어 나를 인지하게 하려 노력했으나 어떤 훈련으로도 그가 눈을 빛내는 자극원들보다 나와 걷는 행위 자체를 더 즐겁게 만들지는 못한 이 개에게 왜 화가 날까.


찬이 운동장으로 달려가려는 욕구까지 통제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었다.


뛰고 싶어 하는 것, 흥분하는 것, 다른 자극에 스스로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불안해하는 것, 자기 흥분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을 영영 지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행복한 산책의 목표가 될 수 있을까.










오후 내내 기다리다 저녁 해가 지기 전 적당히 서늘한 봄 날씨에 산책하러 나가는 개의 발걸음을 생각해 보자. 빠르다. 허공의 냄새를 맡고 나를 앞서나가며 걷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다 발만 앞서서 고개는 뒤로 젖혀질 때도 많다. 때로는 그들에게 아주 가까이 가고 싶다. 어느 구역의 냄새를 다 맡고, 그 대각선 앞에 있는 곳으로 달려가며 지그재그로 걷고 싶다. 흙과 바람 내음을 맡는다. 풀을 밟고, 소변을 보고, 들뜬다.


하지만 냄새 맡는 것에 몰두해 점차 앞서 나가 걸어선 안 된다. 줄이 팽팽해져 줄 끝에 있는 인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새를 보고 마구 달려들어서도 안 되고, 자신을 보고 호기심을 보이거나 짖는 다른 개에게 똑같이 달려들고 싶은 기색을 보여서도 안 된다. 아침 공기에 들떠 걸음이 빨라져서는 안 된다. 보호자를 잊고, 맞닥트리는 자극원들에 스스로 판단하여 대응해서는 안 된다.


천천히.

찬.

서, 기다려.

너, 또.



개에게 있어 가장 좋은 소양! 줄의 맞은편에 있는 인간에게 의존하기. 진돗개(처럼 보이는 믹스견)일 수록 더욱!



개 훈련에 있어서 목표로 삼을 수 있는 것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욕구를 누르고 인간의 말을 듣게 하는 것, 아니 스스로 흥분을 조절하게 하는 것, 그런 게 아닌가 싶지만, 그렇다면 산책의 목적은 어디로 통해야 할까.


개의 욕구를 영영 없애고 싶다는 나의 욕구를 누르고, 개의 말을 듣는 것. 그렇게 나 혼자 저 멀리 앞서나가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 개의 산책 목적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어쩌면 영영 알 수 없겠지만, 개의 욕구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을 알 것. 개의 목적과 나의 목적이 영영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 영원히 불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체념할 것. 여름의 더위를 체득할 것. 비록 내년은 더, 더, 더 덥고 힘들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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