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취해 있어라 - <밤으로의 긴 여로>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69번.

by 이태연


"내 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쓴 극이다."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 수상자인 유진 오닐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입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탈고한 뒤 자신의 사후 25년 동안 발표하지 말 것, 무대에도 올리지 말 것이라는 조건을 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 칼로타가 고인의 뜻에 따르지 않고 작품을 발표하게 되죠. 이로써 이 작품은 오닐의 대표작이 되었는데요. 호텔방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 그는 , "빌어먹을 호텔방에서 태어나 호텔 방에서 죽는군." 이라고 탄식했다고 합니다.



<< 티론의 말 >> - 기계공이었지만 연극이 좋아 배우가 되고 작품이 흥행에 성공해 큰 돈을 벌게 됩니다. 그러나 가난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악착같이 땅을 사들이고, 가족들에게 인색하게 굴며 아내로 하여금 호텔방에서 아기를 낳게 합니다. 공연 일정에 따라 호텔을 전전하며 살지만, 결국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가정과 자신의 배우 인생을 망치고 맙니다.



* 넌 1달러의 가치를 몰라!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거야!


* 네가 브로드웨이 건달들한테서 배운 철학이나 에드먼드가 책에서 얻은 철학이나 다 그게 그거야. 둘 다 완전히 썩었어.


* 케케묵은 과거 얘기 좀 들춰내지 마. 이제 겨우 점심땐데 벌써 그렇게 과거 속으로 멀리 가면 밤에는 어쩌려고?


* 남들이 어떻게 하든 난 신경 안 써. 남한테 과시하고 싶어서 멍청하게 돈을 펑펑 써대고 싶은 인간들이야 얼마든지 그렇게 하라지!



안개는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가려주고 - <밤으로의 긴 여로>



* 그때야 어떻게 알았겠니? 내가 모르핀에 대해 뭘 알았겠어? 그리고 모르핀 중독이란 것도 몇 년이 지나서야 알았어. 난 그저 네 어머니 아픈 게 안 낫는 줄로만 알았어. 왜 치료를 안 시켰냐고? (중략) 치료비로 수천 달러나 까먹었어! 다 헛돈 쓴 거지. 치료해서 어떻게 됐는 줄 알아? 번번이 도루묵이었어.


* 어쩌면 인생의 교훈이 너무 지나쳐서, 그래서 돈의 가치를 너무 크게 생각하는 바람에 결국 배우 인생을 망치게 된 건지도 모르지.


* 작품이 흥행에 엄청나게 성공하는 바람에 그걸로 쉽게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내 손으로 무덤을 파고 만 거야. 다른 작품은 하고 싶지도 않았지.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내가 그놈의 것의 노예가 된 걸 깨달은 뒤 다른 작품들을 시도해 봤지만 너무 늦은 뒤였어. 그 역의 이미지가 너무 굳어져서 다른 역할이 먹히질 않는 거야. 당연하지. 몇 년 동안 편하게 한 역만 하면서 다른 역은 해보지도 않고 노력도 안 하다보니 예전의 그 뛰어난 재능을 잃고 말았으니까.


* 훌륭한 배우로 성공만 했더라면, 그래서 그 추억에 젖어 살 수만 있다면 하늘에 맹세코, 내 이름으로 땅 한 뙈기 없어도 좋고 은행에 저금 한 푼 없어도 좋다. 집도 없이 늙어서 양로원으로 가도 좋아.



안개속에 있고 싶었어요 - <밤으로의 긴 여로>



<< 에드먼드의 말 >> - 티론의 둘째 아들입니다. 염세적이고 허약한 체질이죠. 넓은 세상에 대한 갈망으로 해군에 입대하지만 여행하던 중 폐결핵에 걸리고 맙니다. 그러나 돈에 집착하는 아버지 때문에 싸구려 주립요양원으로 갈 처지가 됩니다. 유진 오닐의 실제 모습이 투영된 인물입니다.



* 전 안개 속에 있고 싶었어요. 정원을 반만 내려가도 이 집은 보이지 않죠. 여기에 집이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는 거죠. (중략)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들렸어요. 그대로인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바로 제가 원하던 거였죠. 진실은 진실이 아니고 인생은 스스로에게서 숨을 수 있는. 그런 다른 세상에 저 홀로 있는 거요.


* 세상에 인생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 늘 취해 있어라. 다른 건 상관없다. 그것만이 문제이다. 그대의 어깨를 눌러 땅바닥에 짓이기는 시간의 끔직한 짐을 느끼지 않으려거든 쉼 없이 취하라. 무엇에 취하냐고? 술에든, 시에든, 미덕에든, 그대 마음대로 그저 취해 있어라. - 에드먼드가 읇은 보들레르의 산문시 <취하라>


* 제일 참기 힘든 건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 벽에 둘러싸여 있는 거예요. 짙은 안개 속에 숨어 그곳에서 헤맨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네요. 고의적으로요. 그게 사람을 죽이죠! 고의적으로 그런다는 건, 우리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서 우리한테서 벗어나,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걸 잊으려는 거죠! 그러니까 마치, 우리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증오하는 것처럼요!



안개 떨어지는 소리까지 듣고 있죠 - <밤으로의 긴 여로>



* 어머니가 저를 낳고 심하게 아팠을 때 괜찮은 의사를 불렀다면 어머닌 이 세상에 모르핀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을 거예요! (중략) 어머니가 모르핀 중독이라는 걸 알았을 때 왜 치료를 안 시켰어요? 고칠 수 있었던 초기에. 돈이 들까 봐 그랬겠죠!


* 어머닌 위에서 과거 속을 헤매는 유령이 되어서 돌아다니고, 우린 여기 앉아서 신경 안 쓰는 척하면서도 잔뜩 귀를 세우고 추녀 끝에서 안개 떨어지는 소리까지 듣고 있죠.


 * 전 뱃머리 사장에 누워 고물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제 아래로는 물거품이 일고, 위로는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돛들이 높이 솟아 있었어요. 전 그 아름다움과 노래하는 듯한 리듬에 취해 한동안 몰아지경에 빠졌죠. 인생을 다 잊은 거예요. 해방이 된 거죠!


* 전 인간으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갈매기나 물고기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거에요. 인간이 되는 바람에 항상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고, 진정으로 누구를 원하지도, 누가 진정으로 원하는 대상이 되지도 못하고, 어디 속하지도 못하고, 늘 조금은 죽음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wㅣㅌ은 안개 속에 숨어 그곳에서 헤맨다 - <밤으로의 긴 여로>



<< 메리의 말 >> - 유복한 중산층 출신으로 수녀가 되기를 꿈꾸던 감수성 예민한 소녀였지만, 매력적인 배우 티론과 사랑에 빠져 호텔을 전전해가며 살아갑니다. 둘째의 죽음에 이어 호텔방에서 셋째 에드먼드를 낳은 후 싸구려 의사가 처방해준 모르핀에 중독되어버리고 맙니다.



* 다들 나가는데 나만 혼자야. 항상 혼자란 말이야.


* 여긴 가정집이었던 적이 없어요. 당신은 늘 클럽이나 술집을 더 좋아했죠. 그리고 나한테도 역시 하룻밤 묵는 지저분한 호텔 방처럼 늘 쓸쓸했어요. 진짜 집에서는 쓸쓸할 수가 없는 법이죠.


* 내가 어떻게 떠나요? 갈 데도 없는데. 내가 누굴 만나러 가요? 친구도 없는데.


* 우린 서로 사랑해 왔어요! 앞으로도 항상 그럴 거고! 우리 그것만 생각해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걸 이해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어쩔 수 없는 일을 붙잡고 씨름하지도 말아요. 운명이 우리에게 시킨 일들은 변명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거예요.


* 시즌마다 순회공연을 다니는 당신을 따라 침대칸도 없는 기차를 타고 구질구질한 호텔에 묵으면서 아무렇게나 먹고 호텔 방에서 아이들을 낳았지만 그래도 건강했어요. 하지만 에드먼드를 낳고는 무너져버렸죠. 그 뒤로 너무 아팠고 싸구려 돌팔이 호텔 의사가……. 그 무식한 돌팔이는 내가 아프다는 것밖에는 아는 게 없었어요. 통증만 없애는 건 쉬웠죠.




안개가 끼면 모든 게 변한 것 같고 - <밤으로의 긴 여로>



* 과거는 바로 현재예요. 안 그래요? 미래이기도 하고. 우리는 그게 아니라고 하면서 애써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인생은 그걸 용납하지 않죠.


* 그런데 왜 이렇게 쓸쓸한 거죠?


* 안개는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가려주고 세상을 우리로부터 가려주지. 그래서 안개가 끼면 모든 게 변한 것 같고 예전 그대로인 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아무도 우리를 찾아내거나 손을 대지 못하지.


*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 당신을 사랑해요. 그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 안개가 끼면 왜 모든 소리가 이토록 슬프고 허무하게 들리는 걸까?








<페이지생략><주인장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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