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나는 자고 있는 걸까? - <고도를 기다리며>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43번.

by 이태연




"고도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뮈엘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고도Godot는 신, 자유, 빵, 희망 등등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영어의 God와 프랑스어의 Dieu를 하나로 압축한 합성어의 약자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기다림'입니다. 두 방랑자가 지루함과 초조 속에서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립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기다림에 지친 이들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으려, 살아 있음을 확인하려 끊임없이 허튼소리로 대화를 나눕니다. 부조리극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이 작품은, 여성 출연자가 없다는 이유로 교도소에서도 상연되어 죄수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하네요.


<< 블라디미르의 말 >> - 나이 들어 기억력도 판단력도 흐려진 방랑자입니다. 다리를 벌려 종종걸음으로 걷고 지적이지만 말이 많은 낙천주의자입니다. 나무 한 그루만 서 있는 황량한 시골길에서 친구 에스트라공과 수다를 떨며 고도를 기다립니다.

* 이 세상에 고통을 당하는 게 너 하나밖에 없는 줄 알아? (···) 제 발이 잘못됐는데도 구두 탓만 하니, 그게 바로 인간이라고.

* 고도에게 묶여 있다고? 무슨 소리야?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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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저마다 작은 십자가를 지도다.

* 이제 우리만이 아니다. 밤을 기다리고, 고도를 기다리고······ 또 ······어쨌든 기다리는 게 말이다 저녁 내내 우리 둘이서만 갖은 수를 다 써가며 애를 써왔는데. 하지만, 이젠 끝났다. 벌써 내일이 된 거나 진배없으니까.

*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지. 그건 고도가 오기를 우린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성은 이미 한없이 깊은 영원한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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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심풀이를 할 일이 코앞에 나타났는데 우린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냥 썩히고 있잖느냔 말이다. 자, 시작하는 거다. 조금 있으면 모두들 사라지고 우린 다시 외톨이가 되겠지. 이 허허벌판 한가운데서.

* 저녁때라오. 저녁때가 됐단 말이오. (···) 하지만 난 오늘 이 긴 하루를 헛되게 보낸 건 아니오. 그래서 오늘의 일과도 이제 다 끝나간다는 걸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거요.

* 남들이 괴로워하는 동안에 나는 자고 있었을까? 지금도 나는 자고 있는 걸까? 내일 잠에서 깨어나면 오늘 일을 어떻게 말하게 될지? 내 친구 에스트라공과 함께 이 자리에서 밤이 올 때까지 고도를 기다렸다고 말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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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트라공의 말 >> - 누더기 옷에 모자를 쓴 블라디미르의 친구로 단순하고 감정적인 성격입니다. 친구와 허튼소리를 주고받으며 고도를 기다립니다.

*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 난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기쁘단 말이오. 아무리 하찮은 인간이라도 만나면 다 배울 점이 있고 마음이 넉넉해지고 더 많은 행복을 맛보게 되거든.

* 우린 서로 떨어져 있었던 편이 낫지 않았을까? 어차피 같은 길을 걷게 돼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 우린 늘 이렇게 뭔가를 찾아내는 거야. 그래서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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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조의 말 >> - 권위적인 지주입니다. 짐과 트렁크를 잔뜩 든 노예를 목줄로 끌고다니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해댑니다. 두 방랑자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할 것을 강요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장님이 되어버립니다.

* 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오. 웃음도 마찬가지요. 그러니 우리 시대가 나쁘다고는 말하지 맙시다. 우리 시대라고 해서 옛날보다 더 불행할 것도 없으니까 말이오.

* 어느 날 깨어보니 캄캄하더란 말이오. 마치 운명처럼. 그래서 지금도 나는 혹시 내가 잠을 자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때가 있다오.

* 그놈의 시간 얘기를 자꾸 꺼내서 사람을 괴롭히지 좀 말아요! 말끝마다 언제언제 하고 물어대다니! (···) 여느 날과 같은 어느 날 저놈은 벙어리가 되고 난 장님이 된 거요. 그리고 어느 날엔가는 우리는 귀머거리가 될 테고.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거요. 어느 같은 날 같은 순간에 말이오.























<페이지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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