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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Dec 24. 2023

학문, 아름다움의 숭배, 명상 - <유리알 유희1>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273번.




   헤르만 헤세의 문학 인생을 총결산하는 걸작으로,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작품입니다. <유리알 유희>는 "삶과 죽음, 어둠과 밝음,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욕망과 금욕, 혼돈과 질서, 젊음과 늙음,  강한 것과 부드러운 것, 동양과 서양,  선과 악, 신과 악마라는 양극의 문제를, 절묘하게 조절하고 결합시켜 최적의 균형과 조화를 찾아가는 방법론"을 의미합니다. 



 << 서문  >> -  논문형식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서문입니다. 전설적인 유희의 명인 요제프 크네히트의 일생과, 그의 유고 순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  우리는 고전 음악을 우리 문화의 정수요 총화라고 여긴다.  그것은 우리 문화의 가장 뚜렷하고 독특한 몸짓이자 표명이기 때문이다.  이 음악 속에 우리는 고대와 기독교의 유산을, 명랑하고 용감한 경건함의 정신을, 탁월한 기사도의 도덕을 담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고전적인 문화의 태도는 궁극적으로는 도덕을, 태도로 응축된 인간적 행동의 모범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고전 음악의 태도란 이런 것을 의미한다.  인간 존재의 비극을 아는 것, 인간의 운명을 긍정하는 것, 용감함, 청랑함!  (···) 우리의 유리알 유희에도,  우리의 전체 삶과 행위와 고뇌에도 그런 울림이 깃들어야 한다. 









<< 헤세의 시선 >> -  작가가 이 작품을 집필한 시기는 나치의 세력이 급속으로 힘을 키워 가던 1932년 무렵이었고,  나치 정권은 헤세 작품의 독일 출판을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  그 무렵 유희의 의미와 이론에 대해 수첩에 기록해 놓은 메모들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삶은 전체가 하나의 역동적인 현상이다.  유리알 유희는 근본적으로 그 역동적 현상의 미학적인 측면을 파악하는 것이고,  그것도 주로 리드미컬한 진행 과정이라는 형태로 파악하는 것이다."


  *  소인은 위대한 사람에게서 그저 자신이 볼 수 있는 만큼밖에는 보지 못한다. 


  *  행운이란 합리나 도덕에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상 어딘가 마술적인 것이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생에서 '행운'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탁월한 인간들이 있다.  (···) 크네히트는 이런 사람들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  크네히트는 그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위대하고 모범적인 관리자요 대표자였고, 흠잡을 데 없는 유리알 유희 명인이었다. 








<<  음악 명인의 말 or 편지 >> - 크네히트와 노인과 젊은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이어갑니다. 


  *  누구나 다 유리알 유희를 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야.  그런 사람들은,  유리알 유희란 예술의 대용물이고, 유희자는 대중 예술가이며,  참된 정신적 존재라기보다 그저 제멋대로 몽상에 잠기는 아마추어 예술가라고 말하지.   (···) 유희에 위험이 따른다는 것은 분명하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이 유희를 사랑하는 것이지.  위험이 없는 길로는 약한 자나 보내는 법이니까. 


  *  본능적으로 격렬하게 좋고 싫음을 나타내는 사람들에게서는 자네도 분명히 하찮은 영혼밖에는 볼 수 없을 거야. 


  *  신성(神性)은 개념이나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네 안에 있어.  진리는 체험되는 것이지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야. 


  *  유리알 유희는 잡문 시대로의 전락이며,  여러 가지 예술과 학문의 언어들을 용해시켜 만든 문자들을 가지고 하는 무책임한 유희에 불과하고···.









*  세계 역사에 진실로 위대했던 인물들은 모두 명상할 줄 알고 있었거나 혹은 명상을 통해 우리가 이르게 되는 그곳으로 가는 길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네.  그렇지 못한 자들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힘이 있었다 해도 결국은 모두 실패하고 패배했지. 


  *  우리의 유희는 철학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야. 하나의 독특한 훈련으로,  성격상 예술에 가장 가깝지. 특수한 예술이네.  (···) 칸트는 신학적으로 철학하는 것을  '환영(幻影)의 환등'이라고 불렀지. 유리알 유희가 그렇게 되도록 해서는 안 되네. 


  *  시로 우리를 황홀하게 하는 시인은 아마 슬픈 고독자이고,  음악가도 우울한 몽상가였을지 모르지만, 그런 경우에라도 그들의 작품은 신들과 별들의 명랑성을 나누어 가지고 있는 것이라네. 


  *  우리의 유리알 유희는 그 속에 학문, 아름다움의 숭배, 명상이라는 세 가지 원칙 모두를 통합시키고 있어. 그래서 진정한 유리알 유희자라면 익은 과일이 달콤한 과즙으로 가득 차 있듯 명랑성에 속속들이 젖어 있기 마련이지. 









<< 요제프 크네히트의 말 or 편지 >> - 주인공입니다. '카스탈리엔'이라는 정신적 이상향에서 영재로 교육받고 유리알 유희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명인으로 추대됩니다. 그러나 학생 시절의 친구와 재회하게 되면서 자신이 진정 바라던 바가 무엇이었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   우리는 학문을 사랑하고 각자 자기 학문을 사랑하지만,  학문에 헌신한다고 해서 반드시 이기심과 악덕과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르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 유리알 유희 또한 그 속에 악마적인 것을 가지고 있어 그것은 헛된 기교나 예술적 허영의 자기만족, 성공주의, 타인을 누르려는 힘의 획득과 그 힘의 악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카스탈리엔과 유리알 유희는 정말 놀라운 거야.  거의 완벽에 가깝지.  다만 너무 완전하고 지나치게 아름다워 걱정 없이는 바라볼 수가 없다네.  이것들도 다른 모든 것처럼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리라는 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  그래도 생각해야만 해. 


  *   우리는 유리알 유희에서 현인과 예술가들의 작품을 부분으로 분해한 뒤,  거기에서 양식의 법칙이라든가 형식의 틀이나 세련된 해석을 끌어내서는 마치 건축용 벽돌처럼 이러한 추상들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이지.   (··· ) 그러나 누구도 평생을 그저 추상만을 호흡하고 먹고 마시며 살 수는 없는 법이라네.   (··· ) 추상이 매력적이긴 하지.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공기를 호흡하고 빵을 먹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지지하네. 










                                                             









                                                              <페이지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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