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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Jan 12. 2024

시간은 공연되지 않습니다 - <관객모독>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306번.






   페터 한트케의 작품으로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관객들이,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를 구경하는 모습을 비난하는 내용입니다.  네 명의 배우가 텅 빈 무대에서 특별한 줄거리나 사건 없이 즉흥적인 말들을 쏟아냅니다. 극 후반에서 관객들은 "여러분" 에서 "너희들"로 호칭이 바뀌고, 배우들은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풍자하는 거친 욕설들을 관객들에게 퍼붓게 됩니다. 기존의 연극 요소들을 뒤엎고 내용과 형식에서 분리된 언어 자체의 가능성을 실험한 작품입니다.



 <<  페터 한트케의 시선 >> -  내 희곡은 단어와 문장으로만 구성되었고, 중요한 것은 의미가 아니라 그 단어의 다양한 사용에 있다. 


  *  배우 넷이 앞으로 걸어 나온다.  (···)  그들은 동시에 말한다. 그들은 모두가 동시에 말하지만 서로 다르게 말한다. 









  *  여러분은 환상이 없는 연극을 보게 될 것입니다.  (···) 여러분은 우리를 쳐다봅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주시하고 또 우리에게 주시당합니다. 


  *  우리는 극적이지 않습니다.  (···) 여러분은 여기서 아무런 인생 체험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단지 연극을 체험합니다.  


  *  여러분은 우리들의 얼굴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습니다.  (···)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을 통해서도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설득력 있는 눈짓이나 몸짓도 없습니다. 침묵과 무언은 예술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침묵하는 철자는 없습니다.  여기서는 묵음 H가 있을 뿐입니다. 


  *  우리는 행동도 연기하지 않고,  시간도 연기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시간은  한 단어에서 다음 단어로 진행되는 현실입니다.  여기서 시간은 단어들 사이를 흘러갑니다.   (···) 여기서 시간은 순간순간 지나갑니다. 시간은 순간에 따라 측정됩니다. 시간은 여러분의 순간에 따라 측정됩니다. 










  *  우리는 아무것도 반복할 수 없고,  시간은 이미 지나가고 있습니다.  


  *  우리는 시간을 연기하지 않습니다.  (···) 우리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말합니다. 우리는 시간이 흘러간다는 점에 관해 말합니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 말합니다. 


  *  우리는 단지 말할 뿐입니다.  (···) 우리가 무대에서 말하기 때문에 우리가 곧 연극입니다. 


  *  시간은 공연되지 않습니다.  여기엔 오직 실제 시간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  여러분 스스로가 주제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문제를 만듭니다. 여러분 자신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여러분은 중심인물입니다. 









  *  여러분은 연극 뒤에 있는 연기된 현실을 발견해야만 했습니다. 


  *  시간은 상연될 수 없습니다. 시간은 현실입니다.  현실인 시간은 연기될 수 없습니다.  시간을 제거한 연극만이 연극입니다. 시간이 함께 상연되는 연극은 연극이 아닙니다.  


  *  우리는 말만 합니다.  (···) 우리는 시간의 현재 속에서 또 과거 속에서 또 미래 속에서 말합니다. 


  *  우리는 어떤 몸짓도 하지 않고,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고,  아무런 연기도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문학적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단지 말만 하기 때문에, 우리는 문학이 지닌 다양한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  여러분은 인사하며 헤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여러분은 좀 더 욕설을 들을 겁니다. 


   *  너희들은 이 연극의 주인공들이었다.  (···) 너희들은 너희들의 역할을 살아왔다.  (···) 너희들은 서로 훌륭하게 연기했다.  너희들은 삶의 이야길 듣고 배웠다. 


  *  너희들은 뛰어난 연기자들이다. (···) 패배주의자들아,  수정주의자들아, 보복주의자들아, 군국주의자들아,  평화주의자들아, 파시스트들아, 주지주의자들아,  허무주의자들아, 개인주의자들아, 집단주의자들아, 정치적인 미성년자들아, 훼방꾼들아,  (···) 돼지처럼 탐욕스러운 작자들아, 노랑이들아, 극빈자들아,  불평분자들아,  아첨꾼들아, 지적(知的)인 프롤레타리아들아, 허풍쟁이들아, 아무것도 아닌 작자들아, 쓸모없는 작자들아. 














                                                           <페이지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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