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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Dec 31. 2023

죽이느냐 죽느냐, 먹느냐 먹히느냐 - <야성의 부름>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30번.

  


 

   '벅'이라는 개가 니체적 초인으로 그려진 잭 런던의 작품입니다.   '개'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요. 인간과 자연에 맞서 벅이 '대장'으로 성장하는 과정,  주인의 생명을 구하고 교감하는 과정,  야성의 부름에 응답하는 과정 등을 탄탄한 플롯 안에 담아냅니다. 벅이 적응하려 애쓰는 냉혹한 알래스카는 자본주의 세계를 상징합니다.  작가는 고도로 발달한 현대 문명 속에서 살아 남으려면 이성과 합리성이 아니라, 내면에 숨어 있는 야성과 창의력, 상상력을 일깨워야 한다고 역설해줍니다. 



 << 작가의 시선 >> - 벅은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 상상력, 부당한 대우에 대한 저항, 앞날에 대한 정확한 예견 능력이 있는 우수한 늑대개입니다.  인간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다 썰매개로 팔려가게 되고, 가혹한 매질에도 처세술, 굶어 죽지 않기 위한 도둑질, 싸움 기술 등을 배워나갑니다. 그러던 중  자연으로부터 '야성의 소리'를 듣게 되고, 자신을 사랑해주던 손턴이 인디언의 습격으로 죽자 야성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매년 손턴이 살던 곳을 방문해 그를 그리워합니다. 


  *  벅은 햇빛이 잘 드는 산타클라라 계곡의 어느 큰 저택에 살았다.  사람들은 그 집을 밀러 판사 댁이라 불렀다.  (···) 벅은 집 안에 사는 개도 아니고 우리에 갇힌 개도 아니었다.  전부 그의 영역이었다. (···) 판사의 장원 안에서 기고 걷고 나는 모든 것 사이에서 그는 왕이었다.  









 *  털을 곤두세우고 입에 거품을 물고 충혈된 눈에 광기를 번뜩이며 뛰어오르려고 몸을 잔뜩 웅크렸을 때 벅은 글자 그대로 붉은 눈의 악마였다. 이틀 밤낮 갇혀서 터질 듯한 열기로 끓어오른 65킬로그램짜리 몸이 분노에 차서 사내를 향해 곧장 돌진했다. (···) 사내는 곤봉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겨 쥐고 냉정하게 벅의 아래턱을 잡아 아래로 그리고 뒤로 비틀었다.  벅은 공중에서 완전히 한 바퀴 반을 돌고는 머리와 가슴을 땅에 처박았다. 


  *  벅은 두들겨 맞았다. (그는 그걸 알았다) 그러나 길든 것은 아니었다.  


  *  정당한 싸움이란 없다.  일단 쓰러지면 너는 끝이다.  그러니 절대로 쓰러지면 안 된다.  


  *  벅은 예전의 까다로운 식습관을 곧 잊었다.  우아하게 먹으면 먼저 다 먹은 동료가 그의 남은 음식을 강탈했다. 그것을 막을 길은 없었다.  (···) 훔치기 잘하는 교활한 파이크가 재빠르게 베이컨 한 조각을 훔치는 것을 본 그는 다음 날 그대로 따라 해서 베이컨을 덩어리째 훔쳤다.  대소동이 벌어졌으나 그는 의심받지 않았다. 









 *  생존경쟁이라는 무자비한 투쟁에서 도덕성은 허영에 불과하고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다. 


  *  그는 경험에서도 배웠지만 그보다 오랫동안 죽어 있던 본능이 되살아나서 그렇게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 추운 밤에 그는 별을 향해 코를  쳐들고 늑대처럼 길게 울었다. 죽어서 먼지가 된 그의 조상들이 하던 행동이었다. 


*  많은 남부 개들 가운데 벅처럼 야영 생활이나 썰매 끌기에서 능력을 보여 준 개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너무 연약해서 노역에, 동상에, 굶주림에 죽었다.  벅만이 달랐다.  그만이 그것을 참아내고 발전했으며 힘이나 야만성이나 교활함에서 에스키모개들과 맞먹었다.  그는 대장감이었다. (···)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의 시간이 올때를 기다릴 줄 알았다. 


  *  벅에게는 위대한 대장이 될 수 있는 기질이 있었다. 그것은 창의력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도 싸울 수 있었으나 또한 머리로도 싸울 수 있었다. 









 *  "일어나 벅!   모두들 일어나라고!   출발한다!"  (···) 그는 파국이 닥치고 있다는 것을 막연히 느꼈다.  강둑으로 들어섰을 때부터 그런 느낌이 강하게 벅을 사로잡았고 이후 그 느낌은 줄곧 그를 떠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발밑에서 흔들리는 얇은 얼음을 느끼며 그는 재난이 가까이,  저기 저,  지금 주인이 그를 끌고 가려는 그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막연히 알았다.  


  *  손턴과 벅은 일행이 얼음 위를 기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썰매 뒷부분이 마치 홈으로 미끄러지듯이 쑥 들어가더니 채찍에 매달린 핼이 공중으로 튕겨 나갔다.  (···) 얼음 전체가 떠내려가면서 개와 인간들이 모두 사라졌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입을 딱 벌린 구멍뿐이었다.  강바닥이 녹아 썰매 길이 떨어져 나간 것이었다. 존 손턴과 벅은 서로 마주 보았다. 


  *  손턴은 이상적인 주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개를 의무감에서 일의 편의를 위해서 돌봐 주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 친절한 인사와 즐거운 말을 잊지 않았고, 앉아서 개들과 긴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는 곧 개들의 기쁨이자 그 자신의 기쁨이었다. 

 




 





 *  벅은 주인에 대한 커다란 사랑 때문에 이 사내로부터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으나,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캠프에서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물건을 훔칠 수 있는 교묘한 책략을 갖고 있었다. 


  *  벅은 스피츠에게서, 경찰견이나 우편견의 대장들에게서 교훈을 얻었는데 그것은 중간노선이란 없다는 것이었다.  지배자가 되든 지배를 받든 둘 중 하나였다.  자비를 베푸는 것은 나약한 행동이었다.  원시적 삶에서 자비란 존재하지 않았다.  자비는 공포로 오해받았고 그런 오해는 죽음을 불렀다.  죽이느냐 죽느냐,  먹느냐 먹히느냐 이것이 유일한 법이었다. 태곳적부터 지금까지 벅은 이 법칙에 복종했다. 


  * 모든 사람이 벅을 굉장한 개라고 인정했지만 25킬로그램짜리 밀가루 포대 스무 개라는 것이 실제로 보니 대단한 무게여서 쉽사리 지갑을 열기는 어려웠다.  (···)   "벅,  네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네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만."  손턴은 이렇게 속삭였다.  벅은 열기를 누르면서 낑낑거렸다. 군중는 호기심에 차서 지켜보았다.   (···) 벅이 100미터를 표시한 장작더미 가까이에 이르자 환호성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썰매가 마침내 장작더미를 지나 명령 소리에 멈춰 서자 환호성은 함성으로 변했다.  











*  숲에서 부름이 들렸다.  (···) 그에게는 어딘지 친숙한,  전에 들었던 소리였다.  그는 캠프를 뛰쳐나와 고요한 숲 속을 빠르게 달렸다. 


  *  벅이 자신을 해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챈 늑대가 그에게 다가와 코를 흥흥거렸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친해졌고,  사나운 짐승들이 자신들의 사나움을 감추는 식으로 불안해하면서도 수줍게 어울렸다.  (···) 벅의 내부에서 피에 대한 갈망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해졌다. 그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힘과 수완으로 살아 있는 동물들을 잡아먹고 사는 맹수였다.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적의에 찬 세상에서 용감하게 살아남는 살인자였다.


  *  벅은 세인트버나드종 아버지에게서 몸집과 무게를 물려받았고 셰퍼드종 어머니에게서 그에 걸맞는 자태를 물려받았다.  그의 주둥이는 늑대의 것보다 크기만 컸을 뿐 영락없이 기다란 늑대 주둥이였고 넑은 머리통도 마찬가지였다. 







  




    *  벅은 그 땅에 가까워질수록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점점 더 확신했다.  (···)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의 감정이 이성과 책략을 누르고 폭발했다.  그가 이성을 잃은 것은 순전히 손턴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허물어진 전나무 숙소 주변에서 춤추다가 사나운 울음소리를 들은 이해츠 족은 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의 동물이 돌진해 오는 것을 봤다.  그것은 펄펄 끓는 분노로 이글거리며 광적인 파괴력으로 그들을 향해 돌진하는 벅이었다. 


  *  밤이 찾아오자 벅은 연못가에 앉아 침울하게 손턴의 죽음을 애도했다.   (···) 멀리서 날카롭게 짖는 소리가 희미하게 공중으로 퍼져 나갔고 (···) 그는 부름에 복종할 준비가 되었다.  손턴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를 묶어 놓았던 마지막 끈이 끊어진 것이다.  인간 그리고 인간의 어떤 요구도 그를 더 이상 묶어 놓지 못했다. 


  *  해마다 여름이면 한 방문객이 그 계곡을 찾는데 (···) 그 놈은 찬란하게 빛나는 털로 뒤덮인 커다란 늑대인데 다른 늑대들과 비슷하면서도 어딘지 다르다.   (···)  그는 여기에서 잠시 동안 뭔가 생각하다가 떠나기 전에 한 번, 아주 길고 슬프게 운다.  (···) 긴 겨울밤이 오고 늑대들이 낮은 계곡으로 먹이를 찾아 내려올 때면 그가 무리의 맨 앞에서 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페이지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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