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연 Jan 10. 2024

그녀는 그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이선 프롬>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367번.





   이 작품의 제목이며 주인공의 이름인 <이선 프롬>은 너새니얼 호손의 단편 소설 <이선 브랜드>에서 빌려 왔다고 합니다.  애정 없는 결혼 생활과 작가적 야심 사이에서 갈등했던 이디스 워튼의 자전 소설이기도 한데요.  작가는 '가정이라는 감옥'에 갇힌 한 남자의 절망적인 삶을 보여주며,  도덕과 인습에 맞선 개인의 내면세계를 섬세하게 포착해냅니다.  



  << 프롤로그 >> - 매사추세츠주의 한적한 마을, 스탁필드에 머물게 된 '나'는 다리를 절룩대는 이선 프롬이 모는 마차를 타게 됩니다.  그러나 심한 눈보라 때문에 그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됩니다.  '나'는 그의 집에서 목격한 모습과 그동안 마을 사람들에게서 들어왔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선 프롬의 비극적인 삶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  " 저게 우리 집이오."  프롬이 잘 움직이지 않는 팔꿈치를 옆으로 들어 올리며 말했습니다.  그 풍경이 가져다주는 고통과 압박감에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어느덧 눈은 그치고 흐르는 물 같은 햇살이 섬광처럼 우리 위쪽 비탈길에 있는 그 애처롭고 누추한 집을 드러냈습니다. 검은 유령 같은 낙엽성 넝쿨 식물이 현관에서 펄럭거렸고, 페인트칠이 떨어져 나간 얇은 나무 벽은 눈이 그치면서 불기 시작한 바람 속에서 떨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 작가의 시선 >> - 공학도였던 이선프롬은 공부를 포기하고 부모님의 병 간호에 매달립니다. 그리고 홀로 남는것에 대한 두려움에 7살 많은 아내와 결혼하게 됩니다. 그러나 병에 걸린 아내를 위해 집안일을 도우려 매티라는 아가씨가 오자, 감성적으로 자신과 소통이 가능한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됩니다. 어느 날 아내가 치료를 위해 집을 떠나자 매티와 둘만 남게 되고······.


    *  그는 언제나 주위 사람들보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주는 감흥에 예민했다.  도중에 그만둔 학업이 이런 감수성에 형체를 부여했다. 심지어 가장 불행한 순간에도 하늘과 벌판은 그에게 깊고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말했다. 다만 지금까지는 그 감정이 그것을 불러일으킨 아름다움을 슬픔으로 가린 채 마음속에 소리 없는 아픔으로만 남아 있었다.  (···) 그러다가 또 하나의 영혼이 똑같은 경이의 감정으로 떨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언젠가 "꼭 그림을 그려 놓은 것 같아요!"  라고 말했을 때 이선에게는 정의를 내리는 기술이 이보다 더 나을 수 없을 듯 했고,  마침내 그의 비밀스러운 영혼을 표현할 말을 찾아낸 듯했다.


  *  매티는 갑자기 화난 눈빛으로 그를 향해 돌아섰다.  "이선 프롬 아저씨,  아저씨가 제게 말해 줘야 했어요. 그랬어야 하고말고요!  아저씨도 제가 떠나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죠······."  그녀가 떠나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면! 이 외침은 그의 아픈 상처에 바르는 연고와도 같았다. 무쇠 같은 하늘이 녹아 달콤한 비가 내리는 듯 했다.









  *  이선은 묘석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지난 몇 해 동안 이 말없는 선조들은 그의 조바심, 변화와 자유를 갈구하는 그의 욕망을 빈정대 왔던 것이다. '우리는 이곳을 결코 떠나지 못했다······  어떻게 네가 그럴 수 있겠느냐?' 라는 구절이 묘석마다 쓰여 있는 듯했다.  문을 드나들 때마다  '나는 이곳에서 살다가 마침내 저들에게로 가겠지.' 하며 몸서리치곤 했다.


  *  그는 매티에게 돌아올 일만 생각했다.   (···)  생전 처음 두 사람은 집안에 둘이서만 있게 될 것이다. 마치 결혼한 부부처럼 난로 양쪽에 마주 앉아 있을 것이다.  


  *  그는 날 때부터 점잖고 말수가 적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무모함과 쾌활함에 탄복했고,  다정한 인간관계를 맺게 되면 뼛속까지 따뜻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  '오늘이 우리가 단둘이 앉아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구나.'  이렇게 꿈속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은 마치 마취제를 투여받은 뒤 다시 의식을 되찿을 때처럼 고통스러웠다.


  *  " 당신은 그 애한테 집을 떠나야 한다고 말할 작정이군······  당장 말이야."  (···) 이선은 증오에 차서 아내를 바라보았다.  (···) 그녀는 그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그리고 지금 모든 손실을 보상해 주는 그 하나마저 빼앗으려 들지 않는가. 


  *  편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와 가까워졌다는 이상야릇하고 새로운 감정을 안겨 주었다. (···) 그는 절망에 쉽게 굴복하기에는 너무나 젊고 너무나 건장하고 생명의 수액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불평만 늘어놓는 무정한 여자 곁에서 모든 생애를 낭비해야만 하는가? 그에게는 여러 가지 다른 가능성들이 있었지만 지나의 편협함과 무지 때문에 하나씩 희생시켜 왔다. 


  *  그녀를 그곳까지 데려갈 여비조차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담보물 없이 단돈 10달러도 꾸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엄연한 현실이 마치 교도관이 죄수에게 수갑을 채우듯 그를 압박했다.  빠져나갈 길이라고는 정말 하나도 없었다.  평생 죄수와 다름없었다.  









 *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의 어려움에 무관심하거나 그 또래의 젊은이라면 병자 세 명은 아무 불평 없이 감당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헤일 부인은  "이선 프롬, 당신은 참 운이 나빠." 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불행하면서도 덜 외로웠다.  (···) 그는 가난한 농부였고,  자기가 버리면  고독과 가난 속에 남게 될 병든 여인의 남편이었다. 


  *  "맷, 이제 우리는 신나게 썰매를 탈 시간이 많아!"  이선은 털가죽 밑을 더듬어 그녀의 손을 자기 손안에 꼭 쥐며 소리쳤다. 


  *  " 이선 아저씨,  제가 아저씨와 헤어져 어디로 가겠어요?" (···) 이 말에 이선의 심장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  전나무들이 어둠과 적막으로 그들을 둘러쌌다.  땅속의 관안에 나란히 드러누워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이런 느낌일 거야······."  하고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고 나서  " 그 다음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겠지······." 하고 중얼거렸다.


  *  두 사람이 나무를 향해 질주하는 순간 매티는 두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녀의 피가 그의 혈관 속을 흐르는 것 같았다. 썰매가 한두 번 두 사람 밑에서 살짝 벗어났다. 이선은 몸을 비스듬히 숙여 썰매를 계속 두릅나무 쪽으로 향하게 하면서 "우린 할 수 있어."  하고 거듭 중얼거렸다. (···) 그때 갑자기 뒤틀리고 흉물스러운 생김새를 한 아내의 얼굴이 그와 그 목표물 사이에 나타나 그는 본능적으로 썰매를 옆으로 틀었다.  썰매가 빗나갔지만 다시 한번 방향을 바로잡고는 튀어나온 그 검은 덩어리를 향해 돌진했다.  마지막 순간 대기가 수백만 겹의 붙타는 전선처럼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 에필로그 >> -  화자인 '나'는 다시 현실 세계로 되돌아옵니다. 


  *  내가 프롬네 부엌으로 들어가니 투덜거리는 단조로운 목소리가 그쳤습니다.  (···) 여자는 아무 표정이 없고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흐릿하고 불투명한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얇은 입술은 얼굴과 마찬가지로 혈색이 없었습니다.  다른 여자는 몸집이 훨씬 작고 갸날펐습니다. 난로 옆 안락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  볼품없는 옷 밑에서 몸은 무기력하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검은 눈동자는 척추병 환자에게서 가끔 볼 수 있는 마녀의 눈동자처럼 빛났습니다. 


  *  헤일 부인은 한숨을 지으면서 말을 멈췄습니다.  "세 사람이 저 부엌에 갇혀 있다는 게 말이에요.  여름철 날씨가 좋은 날이면 매티를 객실로 옮기거나 뒤뜰에 옮겨 내놓아요. 이건 비교적 쉬운 일이지요······.  겨울이 오면 불 피울 일을 생각해야 해요.  프롬 집안은 여윳돈이라고는 한 푼도 없어요.  (···) 난 또 이런 말도 해요.  만약 매티가 죽었더라면 이선 씨는 살았을 거라고요.  지금 모습을 봐서는 농장에서 사는 프롬네 사람들이나 무덤 아래 있는 프롬네 사람들이나 이렇다 할 차이를 모르겠어요.  저 땅 밑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이 없다는 사실을 빼놓고는 말이지요.













                                                <페이지생략><주인장 사진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