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425번.
<< 일레인의 시선 >> -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만난 일레인과 코딜리어의 관계는 서로 바뀌게 됩니다. 피해자이었던 일레인이 가해자이었던 코딜리어에게 언어 폭력을 가하게 되고, 망가진 채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 코딜리어를 외면해 버립니다. 그러나 자신의 얼굴 반쪽과, 나머지 반은 유년 시절 여자 친구들로 채워진 <고양이 눈>이라는 자화상을 완성해냅니다.
* "시간도 차원이야. 시간은 공간에서 분리될 수 없는 거야. 우리는 시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거지." 오빠가 말한다. (···) 시간은 늘이거나 수축될 수 있으며, 어떤 장소에서는 다른 장소에서보다 시간이 빨리 흘러가 수도 있다고 한다.
* 나는 때로 내가 자신을 쳐다보는 줄 모를 때 코딜리어를 보곤 한다.
* 예술이란 처벌을 모면하며 해내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마치 예술이 물건을 슬쩍하는 일이나 가벼운 범죄 행위라도 되는 것처럼, 어쩌면 예술이란 그것이 전부였는지도, 아니 현재도 그런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도둑질, 시각적인 것을 가로채는 행위.
* 긴 턱선과 약간 일그러진 입술, 그녀는 전시실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보인다. 파스텔 녹색 벽의 전시실. 이것은 내가 코딜리어만을 홀로 그려 낸 유일한 작품이다. (···) 나는 열세살 정도의 그녀를 그리고 싶었다. 반항적인, 전투적으로까지 보이는 눈초리로 쳐다보는 그녀를. 그래서? 그러나 그 눈이 나를 곤경에 빠뜨렸다. 이 작품 속의 눈은 강해 보이지 않는다. 그 눈 때문에 그녀의 얼굴은 자신감 없고 우유부단하며 원망하는 듯한 표정을 담고 있다. 겁에 질린 얼굴. 이 그림 속에서 코딜리어는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 나는 코딜리어가 두렵다.
* 아버지가 말한다. "네 날카로운 혀 때문에 곤경에 처할 날이 올 거야." (···) 내가 험한 입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대상은 바로 코딜리어다.
* 기차 시간에 늦게 도착하면 기차를 놓친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말한다. "하지만 집은 기차가 아니잖아요. 집은 어디로 가 버리는 게 아니죠."
* 과학 대신 사람들은 정치와 종교와 전쟁에 열중하면서 서로를 죽일 광적인 이유들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과학은 그와 반대로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며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과학은 유일한 보편적 언어다. 그 언어는 숫자다. 결국 죽음과 쓰레기 더미에 빠진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이 혼돈을 정리하기 위해 과학으로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 "너를 제외하고는 좋은 친구들도 없었어." 코딜리어의 얼굴이 해체되었다가 다시 형성된다. 그 얼굴 아래에서 그녀의 아홉 살 때 얼굴이 형태를 갖추는 것이 보인다.
* 나는 수년 전에 그렸던 작품을 생각하고 있다. <추락하는 여자>가 그 제목이다. 당시 나의 많은 작품은 언어의 혼란에서 시작되었다. 그 그림에 남자는 없지만 내용은 남자에 관한 것이다. 여자들을 추락하게 하는 그런 부류의 남자들. 나는 그들이 어떤 특정한 의도를 가진 것으로 묘사하지는 않았다. (···) <추락하는 여자>에는 사고 때문인 것처럼 다리에서 떨어지는 세 여자가 그려져 있다. 치마는 바람 때문에 종처럼 펄쳐지고, 머리카락은 위쪽을 향하여 나부끼고 있다. 그들은 저 깊이, 아래쪽에 보이지 않게 누워 있는, 거칠고 어둡고 아무 의지 없는 남자들 위로 떨어진다.
* "우리는 지금 의학 교과서를 만드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지금 그린 것은 시체지 여자가 아니에요." (···) 내가 이제까지 그린 것을 바라본다. 그의 말이 옳다. 나는 철저하고 정확하지만, 내가 그려 놓은 것은 움직이지 않고 생명력이 없는 사람 형상의 빈 병에 불과하다.
* 나는 유화도 포기했다. 유화가 지니는 농밀함, 선의 삭제, 혀로 핥은 듯한 붓 자국, 화가의 붓놀림에 이목을 집중시키는 방식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것으로는 어떤 작품도 생산해 낼 수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자발적으로 존재하는 작품이다. 나는 빛을 뿜어내는 대상을 그리고 싶다. 빛을 발하는 평면성.
* 나는 유리병을 그린다. 거기에서 벨라도나 꽃다발이 연기처럼, 도깨비 병에서 나오는 어둠처럼 솟아오른다. (···) 윤기 나는 잎사귀 뒤쪽에 거의 보이지 않게 고양이 눈들이 그려져 있다.
* " 나는 돈이 없어. 요양원에서 돈을 갖고 있게 허락하지 않아. 담배도 대신 사 줘." 코딜리어가 말한다. (···) 코딜리어가 나를 넘어선 곳, 내가 미칠 수 없는 곳, 내가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린 것과 같다. 그녀는 자기 존재의 개념을 놓아 버린 것이다. 그녀는 상실된 존재다.
* 나는 가볍고, 자유롭다. 그러나 나는 코딜리어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코딜리어가 석양을 배경으로, 양팔을 활짝 펴고 치마가 종처럼 부풀어오른 가운데, 허공에서 눈 천사 모양을 만들며 절벽이나 다리에서 떨어지는 꿈을 꾼다. 그녀는 결코 어디에 부딪히거나 착륙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추락할 뿐이다.
* 내가 마지막으로 본 코딜리어는 요양원 문으로 들어가던 모습이었다. 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말을 했던 때였다. 하지만 그녀가 내게 마지막으로 말을 건넨 때는 아니었다.
* 나는 떠나는 것에 능숙하다. 요령은 자기 자신을 철저히 고립시키는 것이다. 아무것도 듣지 말고, 아무것도 보지 말 것, 돌아보지 말 것.
*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나는 가방을 열고 내 푸른 고양이 눈을 꺼낸다. "구슬이구나!" 어머니는 아이와 같은 환희를 보인다. "스티븐이 모으던 그 많은 구슬 기억하니?" "예." 나는 대답한다. 그러나 이것은 내 것이다. 나는 구슬 안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내 삶 전체를 본다.
* 그림의 제목은 <고양이 눈>이다. 이것은 일종의 자화상이다. 코 중간부터 그 위쪽만 그린 내 머리가 우측 전면에 놓여 있다. 코의 상단, 위쪽을 쳐다보는 눈, 이마와 그것을 덮고 있는 머리카락. 나는 이제 막 생기기 시작한 주름, 눈꺼풀 한끝의 작은 주름살을 그려 넣었다. (···) 먼 곳에는 거울의 굴곡 때문에 축소되어 보이는 세 명의 작은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은 사십 년 전 여자아이들의 겨울 옷차림을 하고 있다.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진 그들은 눈 덮인 들판을 배경으로 앞으로 걸어온다.
* 나는 내가 창조한 시간에 둘러싸여 전시실을 걷는다. 그것은 장소가 아니라 단지 흐릿한 무엇, 우리가 살아가는 움직이는 경계선이다. (···) 나는 더 이상 이 그림들을 통제하거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닌 에너지는 모두 내게서 빠져나간 것이다. 나는 그저 잔존물에 불과하다.
* 내가 정말로 기대하고 보고 싶은 사람은 코딜리어다. 그녀에게 물어봐야 할 것들이 있다. 내가 잃어버렸던 시간, 그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묻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물어봐야 한다. (···) 코딜리어가 자기 입장에서 기억하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녀가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 우리는 옛 우화에 나오는 열쇠를 반씩 받은 쌍둥이와 유사하다.
* 날씨가 춥다. 더 추워진다. 싸락눈이 스치며 내리는 소리, 얼음 아래 흐르는 물 소리가 들린다. 나는 코딜리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이제 나는 더 나이 들고, 더 강하다. 더 오래 있으면 코딜리어는 얼어 죽고 말 것이다. 그녀는 잘못된 시간대에 혼자 뒤쳐질 것이다. 너무 늦을 뻔 했다. "괜찮아. 이제 집에 가도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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