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이 온 마당에 가득 흘러넘치는 꿈을 꾸어볼 참이다.
좋은 꿈이었다. 고향집 마당에 깨끗한 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꿈속에서도 기분이 참 좋았다. 깊진 않았지만 발을 담그고 싶을 정도로 잔잔하고 맑았다. 그런데 마당 한가운데로 길게 나 있는 도랑을 기준으로, 맞은 편 마당은 움푹 파인 흙구덩이들이 가득했다. 꿈속에서도 의아했다. 왜 오른쪽만 맑은 물이 가득하고, 왼쪽은 보기 흉한 흙구덩이가 있는 건지….
잠에서 깨자 꿈 해몽 검색을 시작했다. 집에 물이 고여 있는 꿈은 좋은 꿈이라고 나와 있었다. 마당반쪽에 흙구덩이들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래도 길몽(吉夢)이라고 확신 했다. 토요일 새벽에 꾼 꿈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었다. 분명 로또 복권을 사야 할 꿈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로또를 매주 사는 건 아니었다. 지인이 운영하는 로또가게에 자주 놀러가지만 복권을 사는 일은 많지 않았다. 가끔 지인의 강매(?)에 이끌려 사는 경우는 있었지만 큰 금액은 아니었다. 대신 여행이나 볼일로 다른 지역으로 갈 경우, 그 지역의 로또판매점을 찾아가 복권을 사는 습관은 있었다. 그때도 금액은 오천 원을 넘진 않았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버린 주택복권으로 딱지를 접곤 했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복권을 사려면 시내까지 버스를 타고 나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직사각형으로 된 복권을 꿈에 가득한 얼굴로 들여다보곤 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열심히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오는 거라고” 했던 아버지가 행복한 표정으로 복권을 들여다보는 모습은 아이러니했다. 그러나 슬쩍 기대에 부풀기도 했다. 복권만 당첨되면 좋은 집으로 이사 갈 수도 있고, 예쁜 옷도 입을 수 있고, 책도 인형도 많이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버지의 복권이 꼴찌에 라도 당첨된 적이 있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러나 암담하던 시절, 아버지는 복권에 담긴 일주일치의 희망을 붙잡고 절박한 현실을 이겨냈을 게 분명했다.
로또 복권이 처음 나왔을 때는 첫째가 기어다닐 무렵이었다. 처음으로 로또를 사 보던 날, 대박을 위해 장난감공에 번호스티커를 붙인 후 기저귀를 찬 아기에게 골라보게 했다. 그런 다음 아기가 공을 굴리는 순서대로 여섯 개의 번호를 정했다. 그러나 결과는 꽝이었다. 그 후로 일 년에 서너 번쯤 산 로또가 4등까지는 당첨된 적이 두 번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더 이상 등수가 올라가지 않았다. 그래도 지인이 운영하는 로또판매점에서 가끔 2등, 3등 당첨자가 나왔다는 소식들을 들을 때면 내 일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 맑은 물 꿈을 꾼 내가 1등에 당첨될 차례였다.
토요일 오후, 오 천원어치 로또복권을 샀다. 평소 좋아하던 번호를 고르려다 그냥 자동으로 결정했다. 로또를 챙겨 지갑에 넣으며 지인에게 “나 어제 좋은 꿈 꾸었다"고 자랑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무슨 꿈이냐고 다들 궁금했지만, 미리 얘기하면 천기누설이라고 절대 발설하지 않았다.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복권을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넣어두었다. 어디선가 자신이 잠을 자는 매트리스 아래 복권을 넣어두면 당첨이 잘 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몇 시간 후, 대박이 터지기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8시 뉴스는 긴장감 가득한 우크라이나상황과 대선으로 시끌시끌했다. 그러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 세계일주를 갈 수도 있고, 이사를 앞둔 친구를 도와줄 수 있으며, 호텔 스위트룸에서 쉴 수도 있다. 게다가 1억 원을 턱 하니 기부하고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걸 몇 십분 후면 이룰 수 있게 되는 거였다. 그러나 추첨 방송 시간이 다가오자 가슴이 벌렁대기 시작했다. 도저히 지켜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리모컨을 들어 다른 채널번호를 눌렀다.
아홉시, 떨리는 마음으로 매트리스를 들어 로또복권을 꺼냈다. 그런 다음 큰 숨을 한 번 내쉰 후 1,003회 당첨번호 검색을 시작했다. 그런데!!! 맑은 물이 고여 있던 오른쪽 마당처럼 오른쪽 끝으로 세 개의 번호가 연달아 당첨되었다. 39,43,45. 그러나 흙구덩이가 있었던 왼쪽 마당처럼 왼쪽번호 3개는 전멸이었다. 결과는 꼴찌 당첨!
나의 꿈이 반쪽으로 뭉텅 잘려나가 버렸다. 억지로 길몽이라고 믿고 싶었던 내 꿈은 반쪽짜리 꿈 이었다. 이제 맑은 물이 온 마당에 가득 흘러넘치는 꿈을 꾸어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