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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Jun 04. 2022

특별한 옷

-  매일매일이 특별한 행복이길 바란다 -

  큰 아이가 졸업한 후 교복을 드라이해서 아파트 입구 쪽에 걸어두었다. 세탁소 비닐 위에 메모지도 붙였다. <ㅇㅇ고등학교 교복입니다. 필요한 분 가져가세요.> 교복 넥타이를 다시 챙겨 나오는데 아래층 동생이 넥타이를 보며 반가워했다. “우리 애 3학년 올라가잖아. 키가 너무 자라서 교복을 다시 사기엔 아까웠는데 잘 됐다”. “좀 전에 로비에 걸어놨는데?"말과 동시에 비상계단을 뛰다시피 내려갔다. 그러나 교복이 있던 자리엔 옷걸이만 남아 있었다.      


  그때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소리쳤다. “리어카 할머니가 가져가는 거 우리가 봤어요.” “재활용함 옷들 꺼내다가 고물상에 판다는 그 할머니 아냐?” 투덜대는 동생과 함께 후문 쪽에 있다는 할머니 집을 찾아갔다. 허름한 연립 지하 문 앞에서 할머니는 리어카를 세우고 있는 중이었다. 계단 아래로 폐지들과 헌 옷가지들이 쌓여 있었다. “할머니! 저희들이 책이랑 신문이랑 자주 챙겨드리잖아요. 근데 그거까지 가져가서 팔면 안 되죠~” 동생이 소리치며 폐지더미 위에 놓인 교복을 집어 들려 하자, 할머니가 다급히 교복을 챙겨 들었다. 


  “우리 손자가 이번에 고등학교 들어가는데… 메이커인가 그런 거는 너무 비싸서… 영어로 써 있는 게 좋아보여서…” 교복을 품에 안은 채 안절부절 하던 할머니는 내가 넥타이를 건네자 고맙다며 고개를 조아렸다. “할머니, 이번엔 특별하게 챙겨 드리는 거니까 다음부턴 그냥 들고 가고 그러지 마세요.” 다그치는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오는 길, ‘특별하게 챙겨 드리는 거’란 동생의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이거 특별히 니 생각나서 가지고 온 거야” 서울로 이사 가는 옆 집 언니가 새하얀 교복을 들고 왔을 때 내 가슴은 마구 쿵쾅댔다. 가난했던 시절, 겨울 동복은 옆 동네에서 얻어 와 해결됐는데 하복은 구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모두 하복을 입었을 때도 나만 시커먼 동복을 접어 입고 다녀야 했다. 그런데 드디어 나에게도 하복이 생긴 것이었다. 그날 머리맡에 걸려있는 새하얀 교복 때문에 밤을 꼴딱 지새웠다. 다음날은 꼭두새벽에 일어나 눈처럼 새하얀 교복을 입고 학교에 젤 먼저 등교했다. 그날부터 집에 오면 제일 먼저 교복을 빨아 햇빛에 변색될까 그늘에 널었다. 그런 다음, 물기가 빠질 때까지 손 다림질을 했다. 예민했던 사춘기 시절, 옆집 언니가 ‘특별히 챙겨준’ 교복은 특별한 옷이 되어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큰 아이의 교복을 물려받은 아이라서 그런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일부러 교복 준 사람이라고 찾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끔 고등학교 교과관련 책들을 할머니 리어카에 올려놓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아이를 보게 되었다. 봄비가 제법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아이는 리어카를 끄는 할머니와 함께였다. 아이의 손에 들려진 우산은 할머니 쪽으로 잔뜩 기울어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좀 멈춰 서서 아이를 찬찬히 보았다. 훤칠한 키에 선한 인상이 잘 생긴 아이였다. 반듯한 아이를 보니 괜히 흐믓했다. 


  그런데 이때 “쫌 달라고~~ 할머니이이~~” 라고 소리 지르며, 할머니 팔을 잡아당기는 아이의 모습을 본 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 아이의 손을 뿌리치던 할머니가 뒤뚱대며 넘어지려 하자 더욱 화가 치밀었다. ‘할머니가 자기를 얼마나 챙기는데 돈 달라고 저렇게 소리를 질러댄대? 쯧쯧~’ 아이를 혼내주려고 다가가는데 아이가 다시 소리쳤다. “내가 한다니까요~ 쫌~” 알고 보니 자기가 리어카를 끌겠다고 할머니의 팔을 잡아끄는 중이었고, 이 와중에 할머니가 비틀댔던 거였다. “교복 다 젖겠다. 할민 괜찮다니까~” 할머니는 안쓰러워하며 우산을 손자 쪽으로 밀었다. 결국 할머니를 이기지 못한 아이는 우산을 받쳐주느라 한 손으로 리어카를 밀며 빗길을 갔다.      


  덩치보다도 더 큰 리어카를 끌고 온 동네를 돌며 폐지를 줍던 할머니가 보이지 않게 된 건 가을이 깊어갈 무렵이었다. 오랜만에 책 몇 권을 들고 찾아간 할머니 연립 지하 방은 재건축으로 반쯤 부서져 있었고, 낡은 리어카만 놓여있었다. 동네소식통으로부터 아픈 외동딸 내외를 대신해 돌 때부터 할머니가 키워낸 금쪽같은 외손자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을 뿐, 어디로 가셨는지 여부를 알 수는 없었다.      


  생각해 보니 큰 아이가 자라는 동안에도 베넷저고리를 시작으로 색동 돌 한복, 노란 유치원 원복, 사춘기의 감색 중학교 교복, 입시의 부담감이 솔기마다 배어 있는 체크무늬 고등학교 교복, 진초록 얼룩무늬 군복 등을 입어내며 그 나이또래의 아이들이 통과해야 할 과정들을 무사히 마스터해낸 거였다.  물론 앞으로 대학졸업, 스펙 쌓기, 취업, 결혼, 육아, 내 집 장만… 등 무수히 많은 터널들이 기다리고 있긴 하다. 그러나 심성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 준 것처럼 어른으로 가는 길목들도 소신껏 걸어 나가리라 믿는다. 큰아이보다 3년 뒤에서 인생의 길을 걸어갈 할머니의 손자도 당당하게 나아갔으면 좋겠다. 매일매일 아이가 입는 옷이 특별한 옷이길, 매일 매일이 특별한 행복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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