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은 당신이 들어앉아 있는 감옥입니다-<황야의 이리>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67번.

by 이태연



















「싯다르타」와 함께 헤세 붐을 선도한 작품입니다. 헤세의 작품 중 가장 대담한 작품으로, 정신 분열, 은둔자, 마약, 동성애, 그룹 섹스 등 당시로서는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소설의 주요 모티프는 대부분 헤세 자신의 체험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 작가의 시선 >> - 지식인 하리 할러는 세상과 고립된 채 은둔자처럼 살아가는 고독한 이상주의자입니다. 그는 주변의 세계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도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방황하던 중, 환각제를 먹은 상태에서 다양한 심리적 현상들을 접하게 됩니다. 자기 중심적인 욕망으로 인해 더 이상 자유롭게 전개되지는 않지만, 할러는 불멸의 존재들이 유머의 천성을 지닌 자들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 인간의 삶이 정말로 고통으로, 지옥으로 변하는 건 두 시대, 두 문화, 두 종교가 서로 교차할 때뿐입니다. (···)지금은 한 세대 전체가 두 시대 사이에, 두 개의 생활 양식 사이에 끼여, 어떠한 자명한 이치도, 도덕도, 어떠한 안정감이나 순수함도 상실해 버리니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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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러의 수기는 병적이면서도 아름답고 깊은 성찰이 담긴 환상적인 글이다. (···)할러가 앓았던 영혼의 병은 한 인간의 괴팍한 생각이 아니라, 시대의 병리 그 자체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 언젠가 우리가 이른바 중세의 <끔찍스러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는 말했다. "그런 끔찍스러움은 사실은 끔찍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시대, 모든 문화, 모든 도덕과 전통은 나름의 양식을 가지고 있고, 자기에게 맞는 부드러움과 강고함을, 아름다움과 끔찍함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고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어떤 악은 참고 견디는 법입니다. (···)가령 니체 같은 사람은 오늘날의 고뇌를 한 세대 이상이나 앞서 체험해야 했지요. 그는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이 고뇌를 고독하게 곱씹어야 했지만, 오늘날엔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체험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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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리 할러의 수기 - 미친 사람만 볼 것 >> - 하리 할러는 두 시대 사이에 끼여 있는 자입니다. 그는 삶이 지닌 모든 문제를 자신의 고통과 지옥으로 승화시켜 체험하는 것을 숙명으로 여깁니다.


*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얻고자 아우성치는 그 모든 기쁨을 이해할 수 없고, 공감할 수도 없다. 그러나 반대로 극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나에게 행복과 환희와 체험과 무아경과 승화를 주는 것들을, 세상 사람들은 기껏해야 문학에서나 찾고 이해하고 좋아할 뿐, 삶에서 그것들을 대하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


* 지금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일이백 년 전 독일 시인들의 책, 손때에 절고 곰팡내 나는 이 모든 책들, 그리고 옛 음악가들의 인쇄본과 필사본, 그들의 소리의 꿈이 엉겨 굳어진 누렇게 변색된 악보집 - 사상이 넘치고, 장난스러우면서도 동경에 찬 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누구이며, 이들의 정신과 마술을 가슴에 품고 이들과는 이질적인 다른 시대를 견디며 살아가는 자는 누구인가? (···)밤마다 라인 강 너머에서 움직이는 안개구름의 글귀를 읽어내는 자는 누구인가? 그 자는 황야의 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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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황야의 이리>라고 불리던 사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하리였다. (···)똑똑한 사내였다. 그러나 그가 배우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건 자신과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것이었다. 그가 그렇게 된 건, 마음 저 아래에서는 자신이 본래 인간이 아니라 황야에서 온 이리라는 것을 항상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황야의 이리는 두 개의 본성, 즉 인간의 본성과 이리의 본성을 함께 지녔다. 이것이 그의 운명이었다. (···)그에게는 인간과 이리가 병존하지 못했고, 서로 돕는 일은 더 더욱 없었으며, 둘은 줄곧 철천지 원수처럼 맞서서 한 쪽이 다른 쪽을 괴롭혔다. 둘이 하나의 피와 영혼 속에서 서로 죽일 듯이 적대한다면, 그건 저주받은 인생이다. 어쨌든 누구나 자신의 운명이 있고, 어떤 운명도 쉽지는 않은 것이다.


* 아무리 불행한 삶도 나름의 행복한 시간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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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래전부터 보통 사람의 생활, 정상적인 사람의 삶과 사고와 멀리 떨어져 살아온 건 아닐까?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세상과 격리된 미치광이가 아닐까? 그렇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이 부르짖는 소리를 충분히 이해했다. 이성과 속박과 시민성을 떨쳐버리고 광인이 되라는, 영혼과 공상의 풍요롭고 규범 없는 세계에 몰두하라는 요구를 나는 이해하고 있었다.


* 지금까지의 나의 개성이라는 것이 하나의 망상에 지나지 않음을 똑똑히 보았다. (···)하리라고 하는 사내의 상을 그려내어 본래 문학, 음악, 철학에 지극히 빈틈없는 교양을 갖춘 전문가인 그자의 삶을 살아왔던 것이고, 그러면서 내 개성의 나머지 부분, 즉 그 밖에 모든 능력과 충동과 노력의 카오스를 부담스럽게 느껴 <황야의 이리>라고 불러왔던 것이다. 어쨌든 내 망상의 정정, 개성의 해체는 결코 유쾌하고 편안한 일만은 아니었다.


* 하리 할러는 자신을 이상주의자요 세상사의 경멸자로, 비애에 싸인 은둔자로, 그리고 천둥처럼 울리는 경고를 하는 예언자로 멋지게 치장했지만, 근본적으로 보면 그는 일개 부르주아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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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블로가 따뜻한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당신이 동경하는 저 다른 현실은 오직 당신 자신의 내면에만 있습니다. 나는 당신 속에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당신에게 줄 수 없습니다."


* 나는 약간 흐릿하고 얼룩진 거울에서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자신 속으로 파고드는 자의 모습, 격렬하게 활동하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내면을 가진 자의 모습이었다. 그건 나였다. 하리 할러였다. 이 하리의 내면에 있는 황야의 이리였다. (···)"당신은 자신의 모습을 본 겁니다." 파블로는 부드럽게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는 다시 거울을 주머니에 넣었다.


* "당신의 개성은 당신이 들어앉아 있는 감옥입니다." (···)그는 다시 그 작은 손거울을 꺼내 내 얼굴에 갖다댔다. 다시 혼란스럽고 흐릿한, 몸부림치는 이리의 모습이 뒤섞인 하리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건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거기에선 <이리 하리>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한 순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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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소위 당신의 개성이라고 하는 것이 여러 모습으로 분열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소." (···)그는 내 앞에 거울을 들이댔다. 거기서 나는 또다시 나라는 통일적인 인간이 수많은 자아들로 분열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수는 그새 더 늘어난 것 같았다.


* "통일체처럼 보이는 인간이 이렇게 수많은 모습으로 분열되는 경우를 사람들은 미쳤다고 하는 것이오. 과학은 거기에 정신분열증이라는 이름을 붙였소. (···)수많은 하부 자아의 질서라는 것이 평생에 걸쳐 구속력을 지니는, 하나밖에 없는 일회적 현상이라고 믿는다는 점에서 과학은 과오를 저질렀소. (···)이 오류 때문에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미친 많은 사람들이 <정상인>이라고, 더욱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인간이라고 여겨지게 되었고, 거꾸로 많은 천재들이 미친 사람으로 간주되게 된 것이오." (···)그는 잠시 넋을 잃고 있는 내 눈앞에서, 질서 정연하면서도 활기찬 이 작은 세계가 움직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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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삶의 기술이라오." 그가 강의하듯이 말했다. "당신 자신이 인생이라는 판을 마음대로 짜고,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소. 헝클어뜨릴 수도 풍요롭게 할 수도 있는 것이오. (···)광기가 모든 지혜의 출발점이듯이, 정신 분열은 모든 예술, 모든 환상의 출발점이오. 학자들조차도 이것을 희미하게나마 알고 있었소"


* 나는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내가 쓴 쓸데없이 많은 책들, 논문들, 평론들에 짓눌려 있었다. 그것들을 만들어낸 수많은 식자공들, 그 모든 것을 받아 삼킨 수많은 독자들이 그 뒤를 따르로 있었다. 맙소사! 그 밖에 또 아담과 사과, 그리고 그 외의 원죄가 모두 아직 거기에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속죄되어야 하고, 정죄의 불길이 끝없이 타올라야 한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 뒤에 아직 어떤 개성적인 것, 어떤 고유한 것이 남아 있는지, 아니면, 나의 행위와 그 결과는 그저 바다 위의 공허한 거품, 사건의 흐름 속의 의미 없는 유희에 불과한 것이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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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이란 그런 거라네. 우리는 그걸 있는 그대로 놓아두어야 한다네. (···)우선 듣는 법부터 배우게! 진지하게 여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진지하게 여기는 법을 배우게. 그리고 그 외의 것들은 비웃어버리게나! (···)자네는 자신의 인생을 끔찍스런 병자의 이력으로 만들어버렸고, 자신의 재능 때문에 불행해졌다네." (···)나는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정말이지, 모든 것이 거짓이었어요. 모든 것이 참으로 어리석고 졸렬했습니다. 저는 짐승이에요."


* 나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인생이라는 유희의 수십만 개의 장기알이 모두 내 주머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충격 속에서 그 의미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다시 한번 그 유희를 시작해 보고, 다시 한번 그 고통을 맛보고, 다시 한번 그 무의미 앞에서 전율하고, 다시 한번 더 내 마음속의 지옥을 이리저리 헤매고 싶었다. 언젠가는 장기말 놀이를 더 잘할 수 있겠지. 언젠가는 웃음을 배우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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