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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Jun 05. 2022

보이스피싱을 당한 오케이 박

보이스톡이 아니라 보이스피싱을 당한거라고! 

  아들이 보이스 피싱을 당했다. 금액은 515만원!! 주말 아르바이트로 4년 넘게 부어왔던 청약저축 전액이었다. 군대도 다녀오고, 성적 장학금도 받았던 대학생이 제 손으로 현금을 찾아 보관함에 넣었단다.


  “보이스 피싱 당한 거 같음, 경찰에 신고 함.”이란 아들의 카톡을 받은 건 중남미 여행을 마무리하고 귀국을 앞둔 뉴욕에서였다. 너무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론 ‘그런 일도 한번 당해봐야 세상 무서운 줄 알지’란 생각도 들었다. 아들의 통장 잔고래야 자기가 번 돈을 넣어둔 용돈 통장이니 많아야 4~5십 만 원 정도 일 게 뻔했다. 물론 작은 금액은 아니지만, 그 정도 금액으로 인생 공부 톡톡하게 한 거면 됐다 싶었다. 그래도 자세한 상황이 궁금해 보이스 톡을 시도했다. 그러나 뉴욕 고층 아파트 인터넷 망이 촘촘하지 않은지 계속 연결이 되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통화에 성공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있던 아들은, “박oo이란 이름이 보이스 피싱에 도용되었다는 금융 감독원 안내문자가 먼저 왔고, 당장 청약통장을 해지해서 현금화 한 다음, 집근처 보관함에 비밀번호를 전화번호로 설정 후 안전하게 보관하고, 금융 감독원으로 직접 가서 신고하라” 고 했다고, 그런데 신고하러 가다보니 아차 싶었다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전형적인 보이스 피싱 수법이었다. 그리고 이 수법에 아들이 넘어간 거였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너 바보냐??  그러게 이 노무 자식아~ 평소에 정신 줄 똑바로 잡고 살랬잖아!!!” 꽥 소리 질렀다. 곧이어 “나도 화가 나서 미치겠다고…. 군번까지 부르면서 이름이 도용됐다는데 그럼 어떻게 가만히…”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다말다 하더니 갑자기 툭 끊겨 버렸다. 다시 보이스톡을 시도해봤지만 연결이 되질 않았다.     


  어릴 때부터 ‘OK 박’ 이란 별명을 달고 살았던 oo이는 성격이 느긋하고 쓸데없이 긍정적이었다. 친구에게 맞고 와서도 자기보다 키가 작아 맞아줬다고 뻥을 쳐서 매를 벌었고, 수능을 하루 앞둔 날에도 머리를 식혀야 된다며 느긋하게 컴퓨터 게임을 했다. 좀 더 약게 키워보고자 갖은 위협을 가해봤었지만, 타고난 천성인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성격은 바뀌질 않았다. 게다가 걸핏하면 물건을 빠뜨리고 다녀 제발 정신 줄 좀 붙잡고 살라는 잔소리를 꾸준히 듣고 자란 놈이었다. 그렇더라도 보관함 비밀번호를 전화번호로 하라는데,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건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끊어진 보이스 톡을 다시 연결하는 동안, 다단계 같은데 끌려갔었나? 괴롭혔던 군대 선임한테 협박당했나? 아님 자기가 돈을 다 써버리고 보이스 피싱 핑계 대는 건가? 정신 좀 차리게 등록금을 끊어 버려? 집에서 아예 내 쫓아 버려? 수많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의구심은 늘어나고, 화는 삭혀지질 않았다. 계속 연결되지 않는 보이스 톡 때문에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하소연을 하니 다들 놀라 한마디씩 답들을 보내왔다. 그냥 정신없이 홀린다더라. 법대 교수도 당했다더라. 내 동생도 통장 째 들고 가 현금 찾아 바쳤다더라. 작정하고 사기 치는 놈들 당해 낼 수 없다더라. 너무 혼내진 마라 등등, 위로의 답 글들을 읽다 문득 이름이 도용되었다는 말에 oo이가 충격을 받은 거 아니었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태어날 무렵, 남편이 보증으로 상속받은 돈을 몽땅 날려버린 후, “이름은 동생에게도 절대 빌려주지 마라. 이름 관리가 제일 중요하다” 세뇌를 시켜왔었다. 그랬으니 ‘이름’이란 말에 정신을 못 차렸을 거라 이해가 되었다. 그 돈은 아들에게 5천 만 원의 가치쯤 되는 금액이었다. 자동이체가 됨에도 매달 은행으로 직접 가 서 입금을 했고, 숫자로 금액이 찍혀가는 걸 보면 땀 흘려 모은 것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다며 뿌듯해했었다. 그랬으니 스스로 얼마나 한심하고, 분하고, 약 올랐을까 마음이 짠했다. 자괴감에 빠져 잠도 못자고 있을 게 분명했다. 515만원은 액땜 했다 생각하라고, 이럴 때일수록 잠을 푹 자야 된다고 당장 말해주고 싶었다.       


  한국 시간은 새벽 3시쯤이었지만, 잠들지 못하고 깨어있을 아들에게 보이스 톡을 했다. 그러나 계속 연결이 되질 않았다. 보이스 피싱 당해서 자살한 대학생도 있다는 지인의 문자가 계속 눈앞에서 아른댔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함을 잠재우려 “어휴~ 이놈의 보이스 톡까지 난리야~” 투덜대며 계속 연결을 시도 했다.


  드디어 20여 분 만에 통화 성공!! 그러나 잠도 못자고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박oo은 잠에 흠뻑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순간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준비해뒀던 말 대신 “야 시키야!!! 일 저질러놓고 돼지같이 퍼 자냐?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게 보이스 톡을 당하냐? 엉?” 고래고래 소리치며 따다다다 퍼부었다. 잠시 후, 아들놈이 찢어지게 하품을 해대며 OK 박답게 조용히 대꾸했다.


 “근데 엄마… 난 보이스 톡을 당한 게 아니라 보이스 피싱을 당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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