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284번.
도스토옙스키가 8년에 걸친 유형 생활 후 두 번째로 발표한 작품입니다. 죄와 속죄에 대한 다양한 인식들이 팽팽하게 갈등하며 교차하는 이야기로, "범죄에 대한 심리학적 보고서"라고 불리워집니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과학자보다도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작가"라고 극찬합니다.
<< 작가의 시선 >> - 가난 때문에 학업을 중단한 스물세 살 명문대생 라스콜니코프는 하숙비가 밀려 끼니조차 떼우지 못하는 상황이 됩니다. 그는 성공을 위한 학비 마련과, 자신을 위해 희생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자 무서운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완벽하게 구상한 대로 전당포 노인과 그녀의 이복 여동생을 도끼로 살해합니다. 살인을 저지른 후에도 더럽고 해롭기만 한 이를 죽였을 뿐이라며 광기에 빠져 있던 그는 차츰 불안감에 휩싸여갑니다.
* '이렇게 큰 일을 꾸밀 생각이면서 동시에 이렇게 시시한 것을 두려워하다니!' 그는 야릇한 미소를 머금으며 생각했다. (···)'모든 것은 인간의 손에 달려 있는데 오로지 겁을 먹은 탓에 모든 것을 놓쳐 버린다.'
* 그는 대단히 잘생긴 편으로 짙은 색의 아름다운 눈, 짙은 황갈색 머리카락, 제법 훤칠한 키에 몸매는 가늘고 날씬했다. (···)그의 옷차림은 다른 사람 같으면, 심지어 이런 일이 다반사인 사람도 대낮에 이런 누더기를 걸치고 거리를 나다니는 것이 창피할 정도로 후줄근했다.
* 그가 당혹스러워하며 중얼거렸다.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찮은 것, 하찮은 것들이 중요하단 말이다······! 바로 이런 하찮은 것이 항상 모든 일을 망치니까.'
* 우리는 때에 따라서는 (···)모든 것을 고물 시장에 내놓을 것이다. 인생이야 망하든 말든! 우리가 사랑하는 저 존재들이 행복하기만 하다면야.
* "뭐든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삶을 거부해야 한다!" 그는 갑자기 미친 듯 흥분하여 소리쳤다. "운명을 있는 그대로 순순히, 단번에 영원히 받아들여야 한다. 행동하고 살고 사랑할 수 있는 온갖 권리를 거부함으로써 자기 내부의 모든 것을 목 졸라 죽여야 한다!"
* "설마, 설마 내가 정말로 도끼를 들고 사람의 머리를 내리치게 될까, 설마 그 두개골을 박살내려는 걸까······ 끈적끈적하고 따뜻한 피 위로 미끄러지며 자물쇠를 부수고 도둑질을 하고 벌벌 떨 것인가, 온통 피범벅이 된 몸을 감춘 채······ 도끼를 들고. 맙소사, 설마?" 이 말을 하며 그는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었다. (···)'주여!' 그는 기도했다. '저에게 저의 길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저 빌어먹을 저의 몽상을 단념하겠습니다!'
* 도끼를 손에 든 채 거리를 활보할 수는 없잖은가. (···)이제는 올가미가 있으니까 도끼날 부분을 여기에 끼워 넣기만 하면 도끼는 길을 가는 내내 안쪽 겨드랑이 밑에 얌전히 매달려 있을 것이다.
* "아니, 뭐 한다고 이렇게 꽁꽁 묶어 놓은 거야!" 노파는 신경질을 내며 소리를 지르더니 그가 있는 쪽으로 몸을 살짝 움직였다. 더 이상 단 한 순간도 허비해서는 안 됐다. 그는 도끼를 완전히 꺼낸 다음 양손으로 획 들어 올려 무슨 감각도 없이 거의 힘도 들이지 않고, 거의 기계적으로 도끼 등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 두려움이 더욱더 거세게 그를 사로잡았고 전혀 예기치 못한 이 두 번째 살인 이후에는 특히 더 그랬다. 어서 빨리 여기서 달아나고 싶었다. (···)그는 자리에 선 채로 앞을 보고 있으면서도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문, 즉 현관에서 계단으로 나가는 바깥문이 (···)빗장도 걸리지 않은 채 손바닥 하나는 족히 들어갈 만큼 열려 있었던 것이다.
* 그는 이제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떤 생각의 조각과 파편이 연이어 그의 머릿속에서 들끓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어느 것 하나 붙잡을 수도, 또 어느 것 하나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 그는 갑자기 한없이 분노의 발작에 사로잡혀 생각했다. '일단 시작됐다면 시작된 것이다. 노파든 새로운 삶이든 전부 엿 먹어라! 맙소사, 이 얼마나 병신 같은 짓인가.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을 괴롭히고 못살게 굴었다. 무슨 짓을 하는지 나 자신도 모르면서······. 어제도, 그저께도, 요 근래 계속 나 자신을 못살게 괴롭혔다.'
* '됐어!' 그는 단호하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신기루 따위는 꺼져 버려라. 괜한 두려움도, 환영도 꺼져 버려라! 삶이 있잖은가! 아니, 지금만 해도 나는 살아 있지 않았던가? 내 삶마저 늙어 빠진 노파와 함께 죽어 버린 것은 아니다! '
*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선각자로, '파괴자'로 상상하길, '새로운 말'을 내뱉으려 안달하길 좋아합니다. 더군다나 그야말로 진심으로 말이죠. 하지만" (···)라스콜니코프는 똑같은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대체로 새로운 사상을 가진 사람들, 심지어 뭐든 조금이나마 새로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례적일 만큼 적게 태어납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모든 부류와 세부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태어나는 질서가 필경 어떤 자연법칙에 따라 극히 확실하고 정확하게 규정돼 있다는 것입니다."
* "사람이란 교활하면 할수록 자기가 단순한 것에 넘어가리라는 생각은 덜 하지. 가장 교활한 사람은 그야말로 가장 단순한 것에 넘어가도록 해야 돼." (···)라스콜니코프는 자기 집에 다다랐을 때 관자놀이가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숨 쉬는 것도 힘겨웠다.
* "살인자!" (···)"누가 살인자라는 겁니까?" 라스콜니코프가 들릴락 말락 중얼거렸다. "네놈이 살인자란 말이야." 상대방은 더욱더 또박또박, 의미심장한 어조로 말하더니 어딘가 증오에 찬, 의기양양한 미소를 띠우며 또다시 곧장 라스콜니코프의 창백한 얼굴과 죽은 사람 같은 눈을 쳐다보았다.
* '그놈은 누굴까? (···)그놈은 모조리 다 보고 있었다. 이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때 어디에 서 있었고 어디서 보고 있었을까?' (···)라스콜니코프는 온몸이 서늘해지고 부들부들 떨리는 가운데 생각을 이어 갔다.
*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다. 원칙을 죽인 것이다! 원칙은 죽였지만 정작 넘어서는 것은 죽이는 것뿐이었지. (···)나에게 삶은 한 번 주어지는 것이지, 더 이상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는 계속 생각에 잠겨 심술궂은 쾌감을 느끼고 그 생각에 들러붙어 그것을 헤적이고 갖고 놀면서도 그로 인해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 '어머니와 동생, 이들을 나는 얼마나 사랑했던가! 한데 지금은 왜 이다지도 증오하는 걸까? 그래, 나는 이들을 증오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이고는 서서히 자신을 덮쳐 오는 미망과 투쟁을 벌이듯 안간힘을 쓰면서 생각을 이어 갔다. '오, 지금 이 노파가 정말 증오스럽다! 혹시 깨어난다면 한 번 더 죽일 것만 같다!'
<페이지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