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285번.
20세기 문학, 철학, 심리학에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된 소설입니다. 심리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고, 철학적 소설의 전형을 제시한 점 등, 세계 문학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오직 순수하게 영혼의 재료로만 빚어낸 작품"이라고 극찬합니다.
<< 작가의 시선 >> - 라스콜니코프를 미행하고 있던 예심판사 포르피리는 그의 범행을 꿰뚫어봅니다. 그러나 불안감에 빠져 있는 라스콜니코프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며, 그가 스스로 자백하도록 유도합니다. 자신의 몸을 팔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순결한 소냐를 만나면서 라스콜니코프는 점점 더 혼란에 빠집니다. 소냐는 그의 고통을 함께 짊어집니다.
* 유령이란 말하자면 다른 세계의 조각이자 파편, 그것의 시작이다. 건강한 인간은 물론 그런 것을 볼 이유가 전혀 없다. 왜냐면 건강한 인간은 무엇보다도 지상적인 인간이고, 고로 충만함과 질서를 위해서 이곳의 삶 하나만을 살아야 하니까
* "도망칠 곳이 아무 데도 없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그가 저에게서 도망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심리적으로 제 손아귀에서 도망치지 못하는 겁니다." (···)라스콜니코프는 대답도 하지 않고 창백한 얼굴로 꿈쩍도 않고 앉아 예의 그 긴장된 표정으로 포르피리의 얼굴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다.
* 라스콜니코프는 무엇에 찔린 사람처럼 온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그럼······ 도무지 누가... 죽인 겁니까?" 그가 더는 참지 못하고 숨이 찬 것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포르피리 페트로비치는 너무 뜻밖이라는 듯, (···)"아니, 누가 죽였냐니요? " 그는 자신의 귀를 못 믿겠다는 듯 되물었다. "그야 선생이 죽였지요."
* 라스콜니코프가 경멸스럽다는 듯 포리피리를 쳐다보았다. (···)"저를 범인으로 생각한다면 대체 왜 감옥에 잡어넣지 않는 겁니까?" (···)"선생을 거기다 가둠으로써 영원한 안식을 줄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 과연 내가 이십 년 동안의 유형살이 이후 고뇌와 백치 상태에 짓눌리고 늙어 빠져 쇠약해질 그때 지금보다 더 잘 의식할 수 있을까, 그때는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어쩌자고 나는 지금 이렇게 사는 데 동의하는 걸까? (···)그를 꺾은 것은 유형생활의 공포도, 노역도, 음식도, 삭발한 머리도, 누더기 옷도 아니었다.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에 병이 났던 것이다. 오, 만약 스스로 죄를 인정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랬다면 모든 것을, 수치와 치욕마저도 견뎌 낼 수 있었으리라.
* 그가 수치스러워한 것은 다름 아니라 그, 즉 라스콜니코프라는 인간이 운명의 어떤 맹목적인 선고에 따라 그토록 맹목적이고 허망하고 먹먹하고 어리석게 파멸했으며 (···)그것에 굴복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대체 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염두에 둬야 하는가? 무엇을 지향해야 할까? 그저 존재하기 위해 산다?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항상 부족했다.
* 그는 항상 더 많은 것을 원했다. (···)이미 감옥에 들어와 자유를 누리는 지금 자신의 모든 행동을 새로이 검토하고 숙고해 보니 그것이 예전의 그 운명적인 순간에 생각됐던 것처럼 그렇게 어리석고 추악하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대체 어떤, 어떤 점에서' 하고 그는 생각했다.
* '악행'이라는 말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나의 양심은 평온하다. 물론, 형사상의 범죄를 저질렀다. 물론, 법조항이 파괴됐고 피를 보았으니, 뭐 그렇다면 법조항에 대한 대가로 내 머리를 가져가시라······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나는 견뎌 내지 못했고 그랬기에 나는 스스로에게 그 걸음을 허용할 권리가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점, 즉 그것을 견뎌 내지 못하고 자수했다는 점에서만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 라스콜니코프의 말 >> - 이성의 광기 속으로 침잠하는 자폐적 인간입니다. 가난 때문에 '관' 같은 비좁은 골방에 틀어박혀 그 골방을 증오하며 살다, 몽상과 환멸 속에서 살인을 저지릅니다.
* 만약 내가 오직 굶주림 때문에 사람을 찔러 죽였다면 (···)그랬다면 나는 지금······ 행복했을 거야! (···)나는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고 그 때문에 사람을 죽였어. 자, 이제 이해가 돼?
* 나는 줄곧 자문하곤 했어. 어쩌자고 나는 이토록 바보 같을까, (···)나는 알게 되었어, 소냐. 다들 현명해질 때까지 기다린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임을······. 그러다가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고 사람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그 누구도 그들을 개조할 수도 없으니 그러려고 애쓸 가치도 없다는 것을 또 알게 되었지!
* 권력이란 오직 감행하는 자, 즉 그것에 마음을 두고 쟁취하려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을. 여기에는 오직 하나만 있으면 돼. 오직 감행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 (···)나는 감행하고 싶었고 그래서 죽였어······ 그저 감행하고 싶었을 따름이야.
* 그냥 죽이고 싶었어. 나를 위해, 나 하나만을 위해 죽이고 싶었던 거야! (···)비용과 권력을 얻기 위해, 인류의 은인이 되기 위해 죽인 것도 아니야, 허튼소리! 나는 그냥 죽였어. 나 자신을 위해, 나 하나만을 위해 죽인 거야
* 나는 나 자신을 죽인 거야, 노파가 아니라! 어쨌거나 그로써 나 자신을 작살낸거야, 단번에 영원토록! 그 노파를 죽인 것은 악마지, 내가 아니야.
* 죄라고? 무슨 죄? (···)저 추잡하고 해로운 이를, 가난한 자들의 피를 쪽쪽 빨아먹는, 아무에게도 필요 없는 전당포 노파를 죽였으니 마흔 가지 죄악은 용서받을 텐데, 그것이 죄라고? 나는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 죄를 씻을 생각도 없어. 그런데 왜 다들 사방에서 나에게 '죄야, 죄!' 하며 손가락질을 하느냔 말이야.
* 형식이 틀렸단 말이야, (···)미학에 대한 두려움은 무기력의 첫 번째 징후야! 이 사실을 지금보다 더 또렷이 의식한 적은 결코, 결코 없었고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의 죄를 이해하지 못하겠어!
* 저들은 어쩌자고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 걸까, 정말 그럴 가치가 없는 놈인데! 오, 만약 내가 혼자였다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 역시 아무도 절대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은 없었을 텐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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