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걸 원했던가? - <야콥을 둘러싼 추측들>

책속 글귀로 명작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257번.

by 이태연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철도원과 그를 둘러싼 분단 독일의 차가운 현실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난해한 형식은 조망할 수 없는 현실을 조각난 채로 보여 주고, 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재구성된 야콥의 추측들은, 동서독을 둘러싼 의견들도 절대적 진리가 아님을 우회적으로 나타내줍니다.

<< 작가의 시선 >> - 동독 국가안전부 소속의 롤프스는 서베를린의 나토본부에서 일하는 게지네를 포섭하기 위해 주변 인물인 야콥에게 접근합니다. 철도 근무원 야콥은 게지네를 동독으로 초청하라는 롤프스의 설득을 무시하지만, 결국 그와 협상할 처지에 놓이고 맙니다. 서독에서 어머니와 게지네를 만난 뒤 동독으로 되돌아온 야콥은, 어느 날 의문의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 나는 분명히 전체를 조망하고 있어요. (···)그런데 내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는 바로 그것이 일을 어렵게 해요. (···)그러니까 사회 질서라는 것은 사람들의 동기와 교통 상황을 표면적으로만 변화시킬 뿐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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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콥은 언제나 선로를 가로질러 넘어 다녔다. (···)그림자는 숙달된 솜씨로 레일을 차례차례 무심히 넘어 와서 녹색 불이 들어온 신호주 아래 멈췄고, 굉음을 내며 역을 빠져 나가는 급행열차에 가려졌다 다시 나타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듯한 자세와 느릿한 걸음걸이로 보아 야콥이었다.

* 야콥은 이렇게 말했어. 뭔가 오는 게 보이면 그냥 멈춰 서 있어야 해. 그게 아직 멀리 있다고 해도 말이야. "기차는 오는가 싶으면······ 벌써 눈앞에 와 있다니까" 야콥이 그랬어. 안개가 꼈더라도 야콥은 기관차가 오는 걸 알았을 거야. (···)야콥은 동서독 간 열차 편으로 그날 아침 막 돌아온 길이었어. 누구한테 다녀왔을지 생각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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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콥은 스물여덟 살이었는데, 그해 가을만큼 10월을 '시간'으로 겪어 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그 이름난 계절의 변화에 대해서 느낀 것이라고는 밝기의 차이뿐이었다. 결국 일 분 일 분이 모여서 만드는 것은 하루라는 시간이 아니라 운행 시간표에 불과했던 것이다.

* 지금 세상은 개인이 자기 삶을 꾸려 갈 수 있는 힘은 적고, 오히려 자신이 시작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다.

* 그는 정말로 무언가 생각하고, 심사숙고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표정을 '자신만만한 부주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는 마치 평생을 숲에서 산 사람 같았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나는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남자를 보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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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텍스트 속에 인생이 담겨 있었나? 그는 인생을 허비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 '자유'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결핍 개념에 해당한다. 이것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자아'로서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이며, 이것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여러 '자아'와 함께하면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중요성을 세워 가야만 한다. 그리고 그 누구도 물리학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그렇게 자기 혼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 세상이 나만을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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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세월을 가지고 살 수는 없다. 그건 쓸모가 없다. 그것을 어떻게 보증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어떻게 (···)엉망이 된 내 삶과 그리고 야콥과 조화가 될 수 있겠는가. 폭이 좁고 캄캄하고 높은 절벽 사이로 난 길에서 야콥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빨리 가면 안 된다.

* 내가 그걸 원했던가? 내가 그걸 원했다. 바람직한 일은 다 그렇다. (···)"항상 자신이 원하는 걸 선택할 수 있고 책임지는 것, 너는 그걸 자유라고 하지?" 야콥이 물었다. (···)너는 왜 서쪽으로 가지 않느냐는 질문은 이렇게 고치는 것이 적절하다. 너는 왜 여기 남아 있느냐.

* 좋은 의도를 갖고 잘못된 일을 하는 자는 가장 어리석은 자이다. (···)의도라는 것도 주어진 환경에 대한 인식과 참작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변할 수 있고, 믿을 만한 건 결정을 내린 사람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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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야콥이 그런 낮고 둥근 모양의 창문 곁에 앉아서 서독 기차역의 플랫폼에 들어가는 모습을 끊임없이 그려 보았고, 광고에 나타난 세계적인 수준의 물건들을 볼 때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켜보게, 야콥. (···)당신이었다면 틀림없이 국경선 너머에 있는 우리 모두한테 우리가 잘못 살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 왔을 거예요.

* 이른 아침 시간 독일 제국 철도직원 한 사람이 출근길에 선로를 건너가던 중 마주 오던 기관차를 피하려다가 (···)달려오던 또 다른 기관차에 휩쓸려 버렸다. (···)짙은 안개 때문에 선로를 관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 계절의 안개 속에서는 정말로 거의 한치 앞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선로를 넘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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