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글귀로 명작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78번.
마르케스의 「 백년의 고독 」이 남성을 중심으로 한 7대에 걸친 가족사라면,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은 여성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4대에 걸친 가족사입니다. 작가는 트루에바 가문의 사랑과 죽음, 자유와 혁명의 이야기를 사실적이고 환상적인 색감으로 담아냅니다. 이 소설에 대해 뉴욕 타임스는 "예리한 통찰력과 위트가 번뜩이는, 강렬하고도 비범한 작품"이라고 언급합니다.
<< 작가의 시선 >> - 예지력을 갖고 태어난 클라라는 지진을 예견하기도 하고, 꿈을 꾼 후 차 사고로 죽은 엄마의 머리를 찾아내기도 합니다.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클라라는 언니를 사랑하던 에스테반과 사랑 없는 결혼을 합니다. 에스테반은 딸 블랑카가 소작인의 아들 테르세로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갖게 되자 테르세로를 죽이려 합니다. 그리고 딸을 다른 남자와 결혼시켜버립니다.
* 말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여 침묵을 지키기로 결심한 것은 클라라가 열 살 때 일이었다. (···)클라라가 알아맞히는 것은 꿈만이 아니었다. 미래도 내다볼 줄 알았으며, 사람들의 속도 들여다보았다. 클라라의 이런 능력은 한평생 지속되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 두드러졌다.
* 클라라의 집은 놀랄 만한 이야기들과 차분한 침묵의 세계였다. 그곳에서 시간은 시계나 달력으로 표시되지 않았고, 물체들은 스스로의 생명력을 갖고 있었으며, 혼령들은 식탁에 앉아 인간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과거와 미래는 서로 다를 것 하나 없는 단일체를 이루었으며, 현재라는 현실은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는 뒤죽박죽된 갖가기 거울들의 만화경이었다.
* 클라라는 생일날 초콜렛 케이크에 꽂힌 열아홉 개의 촛불을 불어서 끄고 난 후 입을 열었다. 오랜 세월 갇혀 있던 터라 마치 조율되지 않은 악기와 같은 투박한 소리가 났다. "난 곧 결혼할 거예요. (···)로사 언니의 약혼자랑요."
* 에스테반은 클라라가 자신의 운명을 보고, 마음으로 자기를 불러들여 사랑없이도 결혼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에스테반은 클라라가 완전히 자기에게 속해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클라라가 계속해서 혼령들이나, 저절로 움직이는 삼각 테이블, 미래를 말해 주는 카드의 세계 속에 파묻혀 산다면 절대 자신에게 속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 에스테반은 클라라가 (···)오직 자기 한 사람에게만 의지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클라라는 티베트의 규율에 따라 신을 찾아 헤매고, 삼각 테이블을 통해 영혼과 교류하며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하고 마르코스 외삼촌처럼 허공에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 클라라는 꿈속에서조차 늘 멀리 있었다. 자기 옆에서 자고 있어도 곁에 있는 것 같지 않고, 자신은 갈 수 없는 아주 먼 곳에 가 있는 것 같았다.
* "페드로 테르세로 가르시아는 당신이 하지 않은 일을 한 게 아니에요! (···)당신도 당신 계급이 아닌 처녀들과 잤잖아요. 차이가 있다면 페드로 테르세로는 사랑 때문에 그랬다는 거지요. 그리고 그건 블랑카도 마찬가지고요." 에스테반은 놀라서 꼼짝도 하지 않고 클라라를 노려보았다. (···)그 후 클라라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남편과 말하지 않았다.
* 블랑카를 강제로 결혼시킨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반대했던 클라라는 결혼식 파티에 참석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클라라는 바느질 방에 틀어박혀 신혼부부의 암담한 미래를 점쳤으며, 나중에 모두가 확인한 것처럼 그 점괘는 딱 들어맞았다.
* "얘야, 그만 울어라. (···)페드로 테르세로는 살아 있단다." (···)블랑카는 눈물을 닦고 고개를 똑바로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고통이나 외로움을 비롯한 다른 여러 이유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칠 년 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시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 에스테반 트루에바의 시선 >> - 광부로 돈을 벌어 농장주가 되고, 상원의원까지 된 클라라의 남편입니다. 친구도 없고, 농장의 처녀들을 강간하며 다니는 괴팍한 성격입니다. 사랑했던 로사가 결혼을 앞두고 죽고 말자 절망에 빠지지만, 클라라와 결혼 후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나 사랑에 무심하기만 한 클라라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 나는 비비 꼬인 나무 같았다. (···)나는 이제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이젠 절대 웃지도 못하고, 환상도 좇지 못할 거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절대라는 말은 있을 수 없으며, 시간이 흐르면 모든 아픔은 낮게 마련이다. 나는 기나긴 인생을 살아오면서 그 사실을 몸소 확인할 수 있었다. 분노가 내 몸속에서 암세포처럼 마구 뻗어 나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모두 망가뜨려 놓았다.
*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신부를 불러 소작인들의 결혼을 축복하고, 가축과 기계를 축복하고, 아이들에게 세례를 해주고, 죽은 사람들을 위해 늦게라도 명복을 빌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나는 고독을 즐겼으며, 당장 해야 할 일들도 태산 같았다. 나는 점차 미개인이 되어갔다. 단어도 많이 잊어버렸고, 어휘력도 점점 줄어들었으며, 뭐든지 명령조로 말했다. 체면을 지켜야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워낙 고약했던 성격이 더 고약해지고, 툭하면 성질을 부렸다.
* 인생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듯하다.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절대 저지르고 싶지 않은 실수 몇 가지를 하긴 했지만 대체로 후회할 일은 없었다. 그렇다. 나는 훌륭한 주인이었다. 그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클라라가 점점 나에게서 멀어질수록 나는 더욱더 그녀의 사랑을 갈구했다. (···)그녀의 영혼까지 통째로 갖고 싶었다. 그렇지만 투명하기만 한 클라라는 바람처럼 내 곁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 이제 나에게는 아내와 딸이 없었다. (···)나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으며, 아무리 손으로 닦아내도 멈추지 않았다. "젠장, 전부 지옥에나 나가떨어져라."
* 이 모든 것이 페드로 테르세로 가르시아 그놈 때문이었다. 그놈 때문에 블랑카가 떠났고, 아내와 싸웠으며, 페드로 세군도가 농장을 떠났고, 소작인들이 증오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내 등 뒤에서 속닥거리게 되었다. 언제나 그놈이 말썽이었다. (···)날강도 같은 놈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가로채 갔다.
* 나는 도끼를 집어 들고서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엄청난 괴성을 지르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도끼가 허공에서 번쩍거리며, 페드로 테르세로 가르시아 놈 위로 떨어졌다. 순간 핏줄기가 내 얼굴로 튀었다. 마지막 순간에 놈이 팔을 들어 도끼를 막으면서 도끼날이 놈의 오른손 손가락 세 개를 깨끗하게 잘라냈다.
* 어린 에스테반 가르시아가 나를 가만히 쳐다보며 내 옆에 있었다. 아이는 잘려 나간 손가락들을 주워 피 묻은 아스파라거스 꽃다발처럼 들고 있었다. (···)"이제 보상금을 주시겠어요, 주인 나리?" 아이가 말했다. 나는 아이를 한 손으로 밀쳐냈다.
* "내 집안에 사생아가 생기는 건 용납할 수 없어. (···)내 손으로 그놈을 죽였다. 그러니 그놈은 잊어버리는 게 좋을 거다." (···)블랑카는 절대 원치 않았던 결혼식이 대성당에서 주교의 축복을 받으며 성대하게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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