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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Jun 26. 2022

달콤한 꿈을 꾸는 공간

희망을 담아가는 꿈의 공간이다.

   로또 판매점은 꿈을 꾸는 공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담아 가는 꿈 공간의 일주일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간다.    

  

  월요일은 비교적 평온한 날이다. 그렇다고 아주 한가한 건 아니다. 판매점들은 일요일에 쉬는 곳이 많기 때문에, 월요일은 당첨여부를 확인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주인장이 기계에 복권을 넣으면, 띠리링 소리와 함께 “낙첨 되셨습니다”, “05등에 당첨되셨습니다. 5,000원을 지급하시기 바랍니다.” 등 글귀가 뜬다. 5등에 당첨된 사람들은 대부분 복권으로 교환해 간다. 낙첨 복권들은 판매대 아래쪽에 있는 커다란 박스에 버려진다. 박스에는 낙첨된 복권들과 마킹용지들이 한가득 쌓여있다. 간절함이 가득 담겨있던 이 꿈 종이들은 주인장에 의해 봉투에 꽉꽉 눌러 담겨진 다음 재활용 차에 실려 가게 된다. 

   

  화요일에서 목요일까지의 정경은 비슷비슷하다. 판매점은 보통 유동인구가 많은 길가 쪽에 위치한다. 그러다보니 우연히 지나다 들르는 사람들도 제법 많다. 그래도 매주 들르는 단골손님들이 훨씬 더 많다. 빨강 천 주머니에 복권을 담아 안주머니에 소중히 챙겨 넣는 할머니,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부끄러운 듯 후다닥 복권을 사가는 새댁, 남들이 버리고 간 마킹용지들을 깔아놓고 거기에서 번호를 추려 내는 백수총각, 김밥을 사들고 와 먹으며 30분 넘게 고민 끝에 5천원 어치 번호를 완성해내는 중년신사, 주인장에게 1등 번호 내놓으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취객 등. 판매점을 찾는 이들은 직업도, 마킹을 하는 모습도, 복권을 사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A씨는 자동차 정비 회사의 부장이다. 자전거로 왕복 두 시간에 걸쳐 출퇴근을 하는데 퇴근 때마다 판매점에 들러 천 원어치씩 로또를 산다. 그의 퇴근시간은 칸트의 산책처럼 정확하다. 로또 한 장 사들고 가는 퇴근길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단다. 간혹 덩치는 커다란 사람이 속 좁게 천 원 짜리 한 장이 뭐냐고 타박을 주는 손님도 있다. 그러나 A씨는 “어차피 천 원 짜리 한 장만 사도 당첨 될 놈은 된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정말로 그는 3등에 당첨된 적이 있다고 한다.   

  

  금요일쯤 되면 전문적으로 로또를 사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회계학을 전공했다는 B씨는 자칭 로또분석가이다.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이면 그는 도서관에서 지나간 당첨번호들을 바탕으로 패턴을 연구한다. 그런 다음 당첨 확률이 높은 번호를 뽑아 동호회 회원들에게 당첨 예측 번호들을 만들어 준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3등 이상의 당첨자가 나오면 %로 수수료를 받는다는, 서로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내용이 명시된 계약서까지 작성했다고 한다.      


  B씨는 한 시간 가량 꼼짝 않고 앉아 수첩에 빽빽하게 적힌 숫자들을 마킹용지에 체크해나간다. 그 모습이 너무도 경건해서 의식을 치루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킹이 끝나면 기계에서 인쇄되어 나오는 로또복권들을 하나하나 사진으로 찍어 각자에게 전송해준다. 이어서 각자의 이름이 쓰인 봉투에 입금 받은 금액만큼의 복권을 마킹용지와 함께 나누어 담는다. 그의 임무는 이 봉투들을 각자에게 배달까지 해야 마무리된다. 소문에 의하면 그가 뽑아낸 예상번호들 중에 정말로 1등이 있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 번호들을 배정(?)받았던 회원이 입금을 안 해서 복권을 사지 않았고, 결국 1등이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토요일은 판매점이 가장 바쁜 날이다. 1등이 많이 배출되어 유명해진 가게들은 주변으로 줄이 몇 바퀴나 이어진다. 평소에 복권을 사지 않았던 사람들도 괜히 줄을 서 본다. 그리고 꿈을 위해 지갑을 연다. 건강문제로 조기 퇴직한 C씨는 토요일이면 같은 지역에 있는 판매점들을 돌며 로또를 산다. 예를 들면 이번 주는 ㅇㅇ동, 다음 주는 ㅇㅇ동 이런 식이다. 한 곳에서 몇 천원어치씩 사지만 판매점들이 꽤 많다보니 금액이 커지기도 한다. 어떤 날은 칠만 원 어치를 샀다고, 그래도 술, 담배 끊은 돈으로 사는 거니까 건강해치지 않는 좋은 투자라며 허허 웃는다. 다리가 불편한 주인장을 대신해 바닥 청소를 하고, 눈이 침침한 어르신들에게 직접 마킹까지 해 주는 성격 좋은 C씨를 일컬어 사람들은 ‘부사장’이라고 부른다.    

  

  판매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실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이다. 이들은 삶의 위안으로 혹은 취미로 로또복권을 산다. 판매점은 이들에게 일주일치의 꿈을 선물해준다. 다행히 시간(時間)은 수많은 사람들의 꿈을 ‘다음 주, 다음 회 차’라는 시계(時計)로 연결해준다. 간절한 희망들이 가득 담겨있는 로또 판매점은 달콤한 꿈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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