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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Jul 01. 2022

읽지 않은 메일

-  돌아가신 선생님의 글을 차마 삭제할 수 없었다 -


   지나간 자료를 찾느라 메일함을 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꼭 필요한 메일들만 남겨두고 정리했기 때문에 보통 한 달에 몇 개의 메일만 남아있었다. 그러나 작년 11월경부터 바빠서 정리를 못했더니 몇 달 동안 합평 글들, 은행이나 거래처, 보험회사 등에서 받은 메일들이 700여개나 쌓여 있었다. 자료를 찾은 후 11월 1일자로 거슬러 올라가 보관하지 않아도 되는 메일들을 삭제해나갔다.      


  그러던 중 <읽지 않음> 상태인 12월 5일자 메일에서 마우스가 멈춰졌다. 얼마 전 돌아가신 조 선생님의 합평용 글이었다. 성격 상 스팸메일까지도 체크 할 정도로 받은 메일들은 꼭 확인하는 편인데 의아했다. 왜 확인을 안 했었지? 문득 선생님의 글은 두 번째 수정 글부터 읽었던 게 떠올랐다. 첫 번째로 보내온 글은 개인 일기처럼 너무 길기만 해서 끝까지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았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 조 선생님의 첫 번째 글은 읽지 않게 되었다. 그 후 수정된 글이 올라오지 않아 <읽지 않음>으로 계속 남아 있었던 거였다.      


  선생님과는 온라인 상에서 글로 만나 왔었고, 단체로 밥을 몇 번 먹었을 뿐, 대화를 나누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분의 글이 읽히지 않은 상태로 메일함에 남겨져 있었다고 생각하니 괜히 죄송스러웠다. 조심스레 메일함을 열었다. “ㅇㅇㅇ선생님께. 제가 몸담고 있는 ㅇㅇ에서의 경험을 사실에 입각해서 글을 써 보았습니다. 이런 것도 수필이 될 수 있을런지 구색을 갖추기 위한 글이라 여기시고 합평을 부탁드립니다.” 라는 짧은 글과 함께 올라온 작품명은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봉사활동에 관한 글 이었다.


  글을 읽는 내내 말없이 웃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평소 한번만 읽었던 것과 달리 한 번 더 찬찬히 읽어보았다. 왠지 그래야 될 것만 같았다. 역시 제법 긴 글이었다. 여느 때라면 ‘이 부분이 꼭 필요한 걸까?’ 습관처럼 첨삭을 하며 평을 하고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어느 문장도 뺄 게 없었다. 문장을 삭제시킨다는 것은 선생님의 삶에서 한 조각을 도려내는 것과도 같은 행위인 것만 같았다. 합평이라는 이름으로 잘려져 나가기엔 한 문장 한 문장이 너무 소중했다.      


   몇일 후 조선생님의 성함이 적힌 책이 배달되었다. 선생님의 첫 수필집이었다. 합평을 받기 위해 보내졌던 《아름다운 동행》도 책에 실려 있었다. 제일 먼저 그 글을 찾아 읽었다. 다행히 미세하게만 수정이 되었을 뿐 원문 그대로였다. 메일을 받은 날짜를 다시 확인해보았다. 2021년 12월 5일 오후 1시경이었다. 자제분들이 남긴 말로 보아 갑자기 발병된 혈액 암으로 중환자실에 들어갈 무렵의 시간이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힘겹게 붙잡고 있던 상태에서, 합평용 글을 메일로 보내며 선생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찻집에 마주 앉아 선생님의 인생이야기를 들은 것만 같았다. 미사여구 없이 자신이 걸어왔던 삶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정갈한 글들이었다. 글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쓰는 것임이 새삼 느껴졌다. 그리고 한 편의 글을 읽어낸다는 것은 그 글을 쓴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행위임을 알게 되었다. 내 기준이 아니라 그 글을 쓴 사람의 입장에서 읽어나가야만 했었다. 글을 쓴다는 사람이 남의 글에 담겨있는 마음과 인생과 생각을 읽어내는 데 미흡했던 것이, 잘 쓴 글과 좋은 글 사이를 오가며 평을 합네 했었던 것이 부끄럽기만 했다.      


  책 서두에 쓰여 있던 “의미 있는 시간은 짧게 지나간다고 하지만, 하루하루 무심히 지나쳐온 삶의 순간들이 더없이 아름답고 소중했습니다. 그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들이 마냥 그립습니다.” 라는 인사말이 가슴에 박혀, 조 선생님의 글을 차마 삭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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