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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Aug 14. 2022

나! 1등 당첨 됐어

좋겠다. 그 여자 팔자 피었네!

   로또 판매점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들뜬 분위기로 술렁거렸다. 1등 당첨자가 나왔다는 거였다. 단골 중년여자손님이 벽 쪽으로 돌아 앉아 즉석복권을 조심스레 긁더니, 갑자기 “나 1등 당첨 됐어 1등 1등”이라고 소리치며 뛰쳐나갔다는 것이다. 로또보다 당첨확률이 더 높은 즉석복권은 찾는 이가 제법 많아 구색으로 갖추어놓은 것으로 최고당첨금도 다양하다. 여자 손님이 샀던 건 당첨금이 20억짜리라고 했다.      


   그동안 판매점은 1등 당첨자를 배출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2등이나 3등은 나왔는데, 왜 1등이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단골손님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간혹 복권가게 주인장이 1등 욕심을 부려서 그렇다고 핀잔을 주는 이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주인장은 아버지의 위대한 유산이라며 웃었다. 주인장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즐겨 샀던 여섯 개의 번호들로 매주 구매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외에도 1등이 나오지 않는 이유들은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매번 아직 1등 당첨자를 배출할 <때가 되지 않은 거>라고 결론이 내려지곤 했다.   

   

   술렁대는 분위기는 쉽게 사그라지질 않았다. “좋겠다. 그 여자 팔자 피었네. 20억이면 세금 빼고도 어지간한 로또 1등보다 더 많이 받는 거잖아”, “에이~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그 여자 분이랑 친분 좀 쌓아둘걸”, “자~ 이제 로또 1등만 나오면 되는 거죠? 그렇다면 이번엔 제 차례입니다 하하”, “주인장! 나는 도대체 왜 꼴찌도 안 되는 거야? 화끈하게 1등으로 좀 주라고~~ 아끼지 말고 기 좀 팍팍 넣어서”, “네~ 여기 1등 로또 드리겠습니다. 손님! 손님도 1등 복권으로 드릴까요?” 파안대소하며 나가는 손님들의 뒷모습에는 당첨되지 않더라도 이미 그만큼의 행복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 후 “여기서 저도 모르는 1등이 나왔다면서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한 남자가 들어섰다. 판매점마다 즉석복권들을 배부하는 담당자이었다. 1등 당첨자가 당첨금을 찾으러 가게 되면 담당자들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의 담당 판매점에서 20억짜리 1등이 나왔다는 소문은 무성한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는 거였다. 이상했다. 담당자는 혹시 다른 곳에서 산 건데 여기서 확인한 거고, 무슨 일이 생겨서 아직 당첨금을 못 찾은 거 아니냐며 걱정을 했다. 그리고 혹시 그녀의 연락처를 아냐고 주인장에게 물었다. 다행히 택배를 보관해주느라 전화번호가 주인장에게 있었다. 안 그래도 그날 이후로 택배도 찾아가지 않고 있는 그녀의 상황을 궁금해 하던 주인장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굵직하고 우렁찬 그녀의 웃음소리가 크게 울려 퍼져 나왔다. “으하하하하~ 아니 김 사장! 그걸 진짜로 믿었었어? 뻥이야 뻥! 으하하하하~ 택배? 아~ 나 지금 공사가 잡혀서 신랑이랑 지방에 와 있으니까 좀 더 맡아주라. 으하하하하~ 아이고 생각만 해도 진짜로 1등 당첨된 거 같네. 으하하하하~” 남편과 도배 일을 하는 그녀는 평소에도 농담과 장난을 좋아하는 호탕한 성격이라고 했다.   

   

   주인장과 담당자 그리고 판매점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녀에게 전염된 듯 동시에 어이없는 웃음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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