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연 Aug 21. 2022

모자를 좋아하는 지게차 아저씨

젠틀맨의 모자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로또 판매점 주차장에 지게차 한 대가 세워져 있다. 차량출입에 방해되지 않도록 벽 쪽으로 바짝 붙여 비스듬히 주차되어 있다. 지게차주인 J는 매일 판매점으로 출근한다. J는 판매점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짐을 옮겨달라는 전화가 오면 일을 나간다. 판매점이 위치한 상가는 5층 건물로 드나드는 차량들이 제법 많다. 그러나 J는 쇠 받침대가 길게 달린 지게차를 주차하고 빼 내는 일을 실수 없이 성공해낸다.      


   50살인 J는 늘 야구 모자를 쓰고 다녀 나이보다 훨씬 더 어려 보인다. 손님들은 J와 주인장을 부자사이로 오해하기도 한다. 탈모가 진행되어 정수리부분이 허옇게 드러나 있는 주인장은 J와 다섯 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며 억울해했다. 그리고 모자 아래로 보이는 J의 풍성한 곱슬머리를 부러워했다. 주인장은 “머리카락이랑 돈은 붙어있을 때 지켜야 되는 법”이라며 J에게 두피보호를 위해 모자를 쓰지 말라고 조언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J는 이제 모자를 안 쓰는 게 더 어색하다며 웃었다. 공사 현장의 먼지와 햇빛을 가려주니 헬멧과 같은 존재인 듯 했다. 매일 다른 컬러의 모자를 착용하는 것으로 보아 모자수집이 취미인 게 분명했다.      


   J가 판매점으로 매일 출근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주변 신축공사현장으로 일을 왔던 J는 다음 작업까지 시간이 붕 떠서 판매점 옆에 주차를 해놓고 있었다. 그러다 “로또나 한 장 사볼까?” 하고 가게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후로 건물완공이 될 때까지 매일 들르다 아예 출근을 하게 된 거였다. 자재가 미리 준비되어야 작업을 할 수 있는 건설현장일 특성상 J는 새벽에 일을 시작해 아침녘에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일을 마친 J가 9시경 문을 여는 판매점 앞에서 주인장을 기다리기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J가 지게차를 주차할 곳이 없어서 판매점으로 출근하는 건 아니었다. 집 근처에 지게차를 세워둘 공간도 충분했다. 그러나 집이라는 특성상 자꾸 나태해진다고, 지게차 주차를 위해 사무실을 따로 얻기에도 애매해 공동사무실도 마련했었지만, 동종업종 사람들이라 일의 많고 적음에서 서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반면 로또 판매점은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활력이 있어서 좋다고 했다. 

     

  J는 <사람들이 좋아서> 꼬박꼬박 판매점으로 출근을 하는 거였다. 그러나 덩치 큰 지게차를 주차하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상가를 찾는 이들이 많아 하차 일을 마치고 오면, 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없는 상황도 종종 발생했다. 이럴 경우 J는 맞은 편 은행 벽에 바짝 붙여서 주차를 했다. 어떤 날은 다음 작업을 위해 급히 점심밥을 먹던 J가 갑자기 전화를 받으며 튀어나간 적도 있었다. 알고 보니 경찰이 주차위반 딱지를 떼고 있는 걸 단골손님이 보고 알려준 거였다. 덕분에 과태료를 내지 않아도 되었다.     


  사람들이 J를 부르는 호칭은 “지게차 양반”에서 “젠틀맨 양반”으로 차츰 바뀌어갔다. 하차 일이 없는 시간이면 판매점의 쓰레기를 정리하고, 언제 작업의뢰 전화가 올지 몰라 긴장을 하며 점심을 먹다가도, 손님이 오면 다리가 불편한 주인장을 대신해 잽싸게 계산대로 향했다. 아무리 바빠도 커피를 찾는 손님에게 믹스 커피를 타서 건네고 현장으로 출발할 정도였다. 행동 하나하나에 배려가 스며들어 있는 J에게 <젠틀맨>은 딱 들어맞는 호칭인 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젠틀맨의 모자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평일 오후 주차장 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지게차들 전용주차장 아닙니다.” 경비아저씨 목소리였다. 한 남자가 대리점 벽 쪽으로 지게차를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는 중이었다. 그곳은 J가 늘 주차하던 곳이었다. 경비아저씨가 다시 소리쳤다. “아니 어르신! 제 말이 안 들려…????” 갑자기 경비아저씨가 말을 잇지 못하고 남자를 뚫어지게 보았다. 이마에서 뒤통수까지 사무라이처럼 대머리가 시원하게 벗겨진 60대중반의 남자가 멀뚱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J였다. 미처 챙겨 쓰지 못한 J의 하얀색 야구모자가 지게차 핸들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