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 <연인>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144번.

by 이태연



<<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시선 >> - 프랑스 공쿠르 상 수상작이며 작가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1992년 상영되었던 영화 포스터 속 제인 마치의 얼굴은 책 표지에 있던 작가의 어린 시절 사진과 같은 분위기로 연출되었다고 하네요. 1929년 베트남, 가난하고 비정상적인 가족에게 혐오감을 갖고 있던 열 일곱살 프랑스 소녀가 열 세살 많은 중국인 남자와 광적인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평생 잊을 수 없는 운명의 사랑으로 남게 됩니다.



* 나의 삶은 아주 일찍부터 너무 늦어 버렸다. 열여덟 살에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어 버렸다. (중략) 열여덟 살에 나는 늙어 있었다.


* 사람들이 너무나 나를 보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여자들처럼, 아름다운 다른 여자들처럼 예쁘다고 착각할 뻔했고 그렇게 믿을 뻔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고 다른 것, 그렇다. 다른 어떤 것, 이를테면, 기질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나타내고 싶은 대로 나를 나타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내가 아름답기를 원하면 아름다워질 수 있었다.


* 나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나는 특별한 것을 알고 있었다. 여인을 아름다워 보이게 하는 것은, 화장술도, 값비싼 향유도, 희귀한 보석도, 고가의 장신구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문제가 다른 것에 있음을 알았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다. 다만 그것이 여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만 알았을 뿐이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 욕망을 외부에서 끌어 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욕망은 그것을 충동질한 여자의 몸 안에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욕망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첫눈에 벌써 욕망이 솟아나든지 아니면 결코 욕망이란 존재하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 나는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믿으면서도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닫힌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 첫 순간부터 그녀는 그 어떤 것, 다시 말해 그가 그녀의 마음대로 움직이리라는 것을 안다.


* 그는 말한다. 그는 외롭다고, 그녀에 대한 사랑 때문에 처참하리만큼 외롭다고. 그녀가 그에게 말한다. 그녀 역시 외롭다고.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울지 않는다. 그날 그 방 안에서 눈물은 과거를 달래 주었고, 미래 역시 달래 주었다. 나는 그에게 언젠가 나는 어머니와 헤어질 것이라고, 언젠가는 어머니에 대해서 더 이상 사랑을 품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운다. 그는 나를 베고 누워, 울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함께 운다.


* 처음부터 우리는 두 사람이 공유하는 미래는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해서는 결코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청동 하트



* 모두가 말없이, 멀찍이 떨어져 산다. 돌로 된 가족이다. 어떤 접근도 불가능한 두꺼운 퇴적물 속에서 화석이 되어 버린 가족이다. (중략)우리는 서로 말을 걸지도 않지만 보지도 않는다. 어쩌다 눈이 마주쳐도 시선을 돌려 버린다. 바라본다는 것은 한순간 그 대상을 향한, 그 대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불행에 빠지는 행위이다.


* 대화라는 단어는 허영이다.


* 여인의 체형은 지속되지 않고, 여름 한철처럼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는 날들 동안 유지되는 것이 고작이고, 그것마저도 곧 끝나 버린다.


* 나는 낮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햇빛이 모든 색깔을 퇴색시키며 짓누른다. 밤에 대해서는 잘 기억한다. 밤의 푸른빛은 하늘이 더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하늘은 세상의 본질을 덮고 있는 모든 불투명함의 저편에, 그 너머에 있었다.


* 그는 아버지에게 요구했다. (중략) 그녀를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전 아직 이 사랑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 사랑은 아직도,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만큼이나 새롭고 또 강렬해요. 지금 그녀에게서 멀어진다는 건 저에게 너무나 끔찍한 일입니다. 아버지가 잘 아시다시피, 저에게 이런 일은 다시는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줄줄이 하트



* 이제 그가 그녀에게 말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녀를 향한 자신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해도 그녀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것은 그 자신도 아직 잘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그는 그 사랑을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중략) 그는 그녀를 바라본다. 눈을 감아도 그녀가 보인다.


* 불멸성이 삶 속에 있을 때, 그것은 길게 사느냐 짧게 사느냐 하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르고 있는 또 다른 그 무엇인 것이다.


* 내 작은 오빠는 불멸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그를 보지 못했다. 그의 불멸성은 그가 살고 있었을 때, 작은오빠의 육신에 가려져 있었다. 우리는 불멸성이 바로 육신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 작은오빠의 육신은 죽었다. 그의 불멸성도 그와 함께 죽었다. (중략) 나는 영원히 그<작은 오빠>를 사랑할 것 같았고, 이 사랑에는 어떠한 변화도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죽음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 그녀는 눈물을 보이지 않고 울었다. 그가 중국인이기 때문이었고, 또 이런 종류의 연인들은 눈물을 흘려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중략) 그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도 그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그가 보이진 않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검은 승용차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승용차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항구가 시야에서 사라졌고, 곧이어 육지도 사라졌다.




나홀로 하트



*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콜랑의 그 남자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불현듯 예전에 자신이 콜랑의 남자에 대해 가졌던 감정이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런 종류의 사랑이었는지 확신을 할 수 없음을 알았다. 이제 그는 모래 속의 스며든 물처럼 이야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이제야, 쇼팽의 음악이 큰 소리로 퍼지는 지금 이 순간이 되어서야 겨우 다시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작은오빠가 죽은 후에야 그의 불멸을 기억해 냈듯이.


*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떨리는 음성 속에서, 갑자기, 그녀는 잊고 있던 중국 억양을 기억해 냈다. 그는 그녀가 책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략) 그는 잠깐 뜸을 들인 후 이렇게 말했다. 그의 사랑은 예전과 똑같다고. 그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결코 이 사랑을 멈출 수 없을 거라고. 죽는 순간까지 그녀만을 사랑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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