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

by 곱슬머리


"당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예전에 누가 물어온다면 한참 망설여야 했습니다. 아마 이것저것 들춰보다가 하나 콕 집어 말하지 못하고 "글쎄요" 라고 대답했을 겁니다.




지금은 망설이지 않고 답할 수 있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렇게 답할 수 있게 된 것은 10년 전쯤 나무들이 많은 수목원 근처의 주택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한국에 회사 사무실이 없어서 홈오피스를 꾸미고 재택 근무를 하고 있었고, 마침 두 아이들은 홈 스쿨링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어쩌다 보니 365일 24시간을 가족들과 한 공간에서 보내게 된 상황이 되 버렸지요. 자연스레 온 가족이 집에서 삼시 세끼를 먹게 되었고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저는 식구들의 식사를 준비에 매번 진심이었습니다. 거기다 주택에 산다는 핑계를 대고 틈만 나면 지인들을 초대해서 뒷마당에서 고기를 굽고 함께 밥 먹는 일을 원 없이 했습니다. 요리가 생활이자 취미가 되어 버렸죠.


특별히 어디서 음식을 배우진 않았지만 먹어본 웬만한 음식은 비슷하게 만들어 내기도 하고, 냉장고에 남은 식재료로 어떻거든 한 접시 뚝딱 만들기도 잘 했습니다. 이런 요리에 대한 친밀감은 어머니 덕분인 듯합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도와 메주 빚고 장 담그고 김장도 했고, 명절과 가족 모임을 위해서 만두나 빈대떡 부치는 정도의 일들은 자주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 딸 가리지 않고 음식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주셨고 부엌에 드나드는 저를 딱히 말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시간 어머니 옆에서 듣고 보고 배운 것들이 제 몸 속 어디인가 기억으로 그리움으로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저에게 즐거움입니다. 의식적으로 에너지를 써서 계획하거나 고민을 하지 않아도 어떤 음식을 만들지 자연스레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완성된 그림들이 선명히 보입니다. 생각과 동시에 손은 벌써 칼을 들고 도마 앞에 있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동안에는 잡념과 적정이 없어지고 깊은 몰입의 상태에 들어가고요. 정성껏 만들어져서 식기에 담긴 음식을 보면 쾌감마저 느낍니다. 무엇보다 그 작업의 결과물을 행복하게 함께 먹고 누리는 사람들을 보면 더없이 기분이 좋습니다. 스트레스가 풀리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 기다리던 문제와 씨름할 약간의 심리적 여유가 생깁니다.


해보진 않았지만 자전거 라이딩, 낚시, 등산, 일렉기타, 독서, 러닝, 자동차 튜닝, 사진, 영화…… 그게 뭐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동안에 사람들은 이런 경험들을 동일하게 맛보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늘 '좋은 매니저'로 기억하고 있는 옛 직장 상사가 한 분 있습니다. 그분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비행기를 타는 것이었습니다. 본인이 조종하는 비행기이든 출장을 위해 타는 상업용 비행기이든 비행 자체를 그렇게 즐거워했습니다. (자가용 면장Private pilot license가 있었고 본인의 경비행기도 소유한 분이었습니다.) 물론 비행을 좋아하는 것이 리더로서 업무에 직접 관련은 없었지만 프로젝트가 끝나 한 동안 비행을 하고 다시 일터로 돌아오는 상사는 인간적으로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최근에서야 내가 음식 만드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고 스스로 말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이 정도로 요리하기를 좋아하는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몇년간의 내 생활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돌아보고 가족과 지인들의 피드백이 제가 그렇다는 것을 증명해주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나라는 사람을 더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스스로 더 단단해진것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삶이 좀 더 풍성하게 되고 인간적으로 좀더 매력적인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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