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유교적인 문화 속에서
나는 나르치스 처럼 되는 것이 순결하고, 고결하다고 믿고 살아왔다.
하지만, 30대 중반이 된 나는 솔직히 골드문트처럼 살고 싶다.
아니, 어쩌면 골드문트처럼 살고 싶지만, 외모와 성격, 여러 가지 상황들 때문에
골드문트가 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어릴 적 골드문트와 같은 친구가 있었다.
난 항상 속으로 그 친구가 `너무 문란하다`느니, `어떻게 여자를 저렇게 많이 사귈 수가 있어?`라느니 라고 하며 욕을 했는데,
30대 중반 되어 돌아보니 그 친구가 부러웠다.
이성에게 사랑받는 모습이 부러웠고,
그에게는 이성에게 사랑받고 교제하는 일이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나는 어려운 일이었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였기에 나는 부러웠다.
교회를 다니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속으로 욕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나도 이성에게 사랑받고 관심받고 그 관계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싶었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교적인 문화를 가지고 한국을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나르치스의 삶이 더
고결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30대 중반이 되어서 삶을 돌아보니 나르치스가 골드문트를 보면서 한 생각이
정말 인간의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20대 중반에 내 삶의 즐거움이 한 사람의 여자와 교제하는 것에 모든 것이 올인되어 있을 때,
나는 그 삶이 참으로 미개하며,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사랑하는 것만으로 즐거워하고, 슬퍼하지라고 하며
내 인생을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골드문트와 나르치스를 읽으면서,
사랑 하나만으로도 즐거워하며, 슬퍼하며, 그게 삶의 전부가 돼도,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런 것이 없었던 나르치스의 삶이 불행할 수도 있다는 내용을 보며
내가 겪은 젊은 날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현재, 나는 나르치스보다는 골드문트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안정성은 없지만, 자유롭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끼며, 고통과 고난이 존재하지만, 삶의 굴곡이 있는
재미있고, 생기 있는 삶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