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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사랑해요

한국어 선생님으로 살아가기

by 순짱

줄리아는 화려한 꽃이 커다랗게 그려진 얇은 포장지를 조심조심 뜯었다. 내가 막 뜯어도 된다고 하자, 고개를 저으며 스카치테이프를 하나하나 떼었다. 줄리아는, 포장지도 간직할 거예요, 하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한국에서 가져와 이곳의 내 집에서 포장한 선물이었다. 한국 간식이나 BTS캐릭터 용품 같은 자잘한 선물들 가운데 10*10 크기의 작은 카드도 있었다. 이 카드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줄리아의 엄마에게 이메일을 보내 줄리아가 제일 좋아하는 bts멤버가 누구냐고 물은 뒤, 그 멤버가 그렸다는 캐릭터로 만들어진 디자인으로 고른 카드였다. 한국에서 잘 지낸다는 짤막한 메시지와 함께 보고 싶다는 말을 적고 우체국에 갔는데 코로나 이후로 뉴칼레도니아로 가는 우편 업무가 중단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벼운 서프라이즈를 포기하고 하는 수 없이 나는 카드를 선물과 함께 직접 전한 참이었다. 선물들을 하나하나 보고 카드를 읽은 줄리아는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한국말로 말했다.

"울 거 같아요. 한번 안아도 돼요?"
나는 기꺼이 일어나서 줄리아의 마른 몸을 꼭 끌어안았다.
줄리아도 긴 팔로 나를 감싸 안고 또 한국말로 말했다.
"정말 정말 사랑해요."

최근 몇 년간 육성으로, 그리고 한국말로 처음 들은 사랑 한단 말이었다. 한국에 갔을 때 엄마 아빠에게서도 듣지 못한 말이었다. 영어로 대화하는 남편에게도 듣지 못한 말이었다.

줄리아가 그 말을 할 적에 내 이메일의 답장에 줄리아 엄마가 쓴 말이 생각났다.
- 줄리아는 bts도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널 제일 좋아해.

살아가며 기대치도 않은 사랑을 받을 때가 있다. 어쩐지 조금 기대한 사랑, 가령 가족이나 친구들, 연인으로부터의 사랑이 아닌, 예상치 못한 누군가에게서 피구공처럼, 파도처럼 쿵! 철썩 들어오는 사랑은 정말 달콤한 기운이 되어 몇 날 며칠을 두둥실 날아가듯 살게 해 준다.
이런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순수해서 귀엽다. 아무 조건 없이 남을 좋아해 줄 마음의 여유가 가득한 사람들이다. 나와 몇 년 간 한국어를 배우며 이제는 한국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을 꿈꾸고 한국어로 시도 쓰는 줄리아. 선생으로서 이런 학생을 만나는 건 무척이나 고무적이고 귀한 일이라 내가 고마워야 마땅하건만 줄리아는 자주자주 사소한 것에도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퍼부었다. 표현에 서툰 나는 그럴 때마다 그저 쿡쿡 웃고 손사래를 칠 뿐이었다.

서로 꼭 끌어안고 나니, 눈이 빨개진 줄리아가 귀여워서, 그리고 줄리아의 말에 감동을 받아서 울 것 같았다.
나는 목을 가다듬으며 자자, 우리 그럼 이제 공부해요,라고 진지하게 말했고 그러고도 몇 분 내내 둘이 수다를 떠느라 바빴다. 수업이 끝나고 줄리아의 집에서 나와 차로 걸어가는데, 줄리아가 엄마와 테라스에 나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주고도 실컷 받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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