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흔을 삼겹살로 알았다.
30대 중반에 엄마가 된 후, 나는 아이들의 나이로 살고 있었다. 막상 엄마가 되고 보니 딱히 내 나이를 말할 일도,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따라 12개월, 24개월, 36개월이었다가 네 살, 다섯 살이 되었다. 이 나이대로 계속 살았으면 지금 일곱 살이었을텐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은 내 나이를 찾아 갔다. 삼겹살 때문이다.
“돼지고기는 안 드시는 게 좋아요.”
한의원을 방문할 때마다 듣는 말이다. 몸이 차고, 위가 약해 소식을 해야 하는 나에게 찬 음식에 속하는 돼지고기는 안 좋은 음식이이라고 했다. 하지만 삼겹살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삼겹살은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그냥 먹어도 맛있고, 구운 김치랑 같이 먹어도 맛있다. 된장찌개랑 먹어도 맛있고, 냉면에 감싸 먹어도 맛있다. 상추 위에 쌈장 넣어 싸 먹어도 맛있고, 깻잎 위에 쌈장 넣어 싸 먹어도 맛있다. 이 맛있는 삼겹살을 나는 많이 먹었고, 자주 먹었으며, 평생 먹고 싶었다.
“저 돼지고기 먹어도 괜찮은데요. 잘 먹어요.”
“그게 아직 젊으니까 괜찮은 것 같은데, 나중에 힘들어요.”
됐다. ‘아직 젊으니까 괜찮’다는 말을 들었으니 앞으로도 한참은 삼겹살을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아직 젊었으니까, 아니 어렸으니까. 그 때 나는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다섯 살이었다. 다섯 살의 삼겹살은 행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몸이 이상했다. 손발은 퉁퉁 부어있고, 속은 가스가 찬 듯 더부룩했다. 특별히 몸을 쓰거나 피곤한 일이 없었는데도 몸이 무거워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었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 두 끼나 굶었는데 속은 편해지지 않았다. 왜 이러지, 뭘 잘못 먹었나, 하는 순간 전날 먹은 삼겹살이 눈앞을 지나갔다. 나는 ‘아직 젊으니까 괜찮’다는 말을 들었는데, 몸은 ‘힘들어요’가 되어있었다. 안녕? 난 마흔이라고 해. 마흔이었다. 다섯 살이던 나에게 마흔은 이토록 아프고 당혹스럽게 첫인사를 건넸고, 나는 마흔이 되었다. 마흔의 삼겹살은 불행이었다.
갑자기 마흔으로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때는 밥 한술에 고기 한 점을 바라보며 자린고비 흉내를 내기도 했고 어떤 때는 충동을 못이겨 예전처럼 먹다가 다음 날 어김없이 탈이 나기도 했다. 어른이 되기도 전에 마흔을 맞이한 나는 이리쿵 저리쿵하며 갈피를 잡지 못해 헤매고 있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다섯 살로 살던 나는 삼십 오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서둘러 어른이 될 채비를 해야 했다.
불혹(不惑). 삼겹살에 쉽게 미혹되지 않음. 드디어 나는 마흔답게, 어른답게 삼겹살 먹는 법을 터득했다. 먼저 잘 익고 먹음직스러운 삼겹살 열 조각을 내 몫으로 정해둔다. 부족한 고기를 대신해줄 버섯도 같이 굽는다. 밥은 평소보다 반 정도 적게 담는다. 그리고 상추 위에 밥과 삼겹살, 버섯, 파저리, 구운 마늘, 아삭한 고추를 올리고, 맛을 더해줄 쌈장을 살짝 얹는다. 나에게 허락된 열 번의 기회을 최대한 길게 누리기 위해 먹는 속도는 천천히, 느리게이다. 열번의 행복과 열번 밖에 안되는 불행의 평화롭고 전쟁같은 동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삼겹살은 나에게 행복이자 불행이 되었다. 적은 양의 삼겹살로도 풍성함을 느끼게 된 것은 행복이요, 그 맛있는 삼겹살을 적게 먹어야한다는 것은 불행이다. 절제와 제한을 배우게 된 것은 행복이요, 무절제가 주는 사소한 해방감을 박탈당한 것은 불행이다. 제한을 받아들였을 때의 성취감은 행복이요, 제한 받아야 하는 강제성은 불행이다. 내 나이에 맞는 어른다움을 찾은 것은 행복이요, 이제 건강을 생각할 나이가 된 것은 불행이다. 앞으로도 삼겹살을 계속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행복이요, 앞으로도 이만큼의 삼겹살만 먹어야한다는 것은 불행이다. 잘 익고 맛있어 보이는 삼겹살을 나를 위해 고르는 일은 행복이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그 인색함을 엿보는 일은 불행이다. 그래서 숫자 10은 행복이요, 불행이다.
흔히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 한다. 마흔의 삼겹살을 경험하면서 내 삶은 조금 수정되었다. 이제 나는 절대 행복도, 절대 불행도 없다는 것을 안다. 내 앞에 놓인 모든 것은 나의 선택에 따라 어떤 것은 행복으로, 어떤 것은 불행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반대말이 아니라 앞면과 뒷면이다. 무엇을 볼 것인가,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는 오롯이 나의 몫이다.
열 번의 삼겹살 위에는 항상 열 번의 쌈장이 있다. 나는 짜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쌈장만 추가한다. 그 적당량의 쌈장은 삼겹살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삼겹살 같은 행복 위에 쌈장만큼의 불행만 얹는다. 그 쌈장만큼의 불행은 언제나 나의 행복이 얼마나 맛있는지를 알게 해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나의 삶은 어른답게 삼겹살을 먹는 일이 될 것이다.
*<나의 첫 에세이 출판수업-두변째 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