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거나 무게 있거나

피에트 몬드리안 <빨강, 노랑, 파랑, 검정의 구성>

by 아무
피에트 몬드리안 <빨강, 노랑, 파랑, 검정의 구성>

사각형이 멋진 작품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사각형으로 작품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만이 듭니다. 단순하고 반듯한 그림은 안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몬드리안의 세계는 질서 있고 정돈되어 보이죠. 모두 사각형이지만 같은 사각형은 아닙니다. 저마다 모양과 크기가 다르죠. 하지만 빈틈없이 잘 배열된 사각형은 통일성을 갖추고 있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됩니다. 적당한 곳에 등장하는 색을 가진 사각형은 그림을 지루하지 않게 하죠. 색이 주는 강렬함은 어느 작품보다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다른 모양의 사각형들과 색깔 덕분에 작품은 단조롭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단정하고 반듯하며 적당히 채워져 있고 적절히 비워져 있습니다. 그림의 색은 진하지만 과하지 않고 선은 많지만 어지럽지 않습니다. 비어있는 사각형은 가볍거나 공허해 보이지 않습니다. 질서 있고 차분한 구성에서 묵직한 힘이 느껴집니다.


몬드리안의 작품은 비워야 할 것들과 남겨야 할 것들에 대해 말하는 듯합니다. 그림을 가만히 지켜보며 내 안에 복잡하게 섞여있는 색깔들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필요 없는 것이 배제된 단순한 그림은 불필요한 감정들과 생각들을 들춰냅니다. 마음에 굳이 담아두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떨쳐질 때 나에게는 무엇이 남을까요? 그림을 보면서 내면을 단순화시키고자 하는 갈망이 일어났습니다.


나에게 걸려있는 많은 것들로 살수록 삶은 복잡해져 갑니다. 신경 써야 할 일들과 챙겨야 할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감당해야 할 책임들도 더해지죠. 시간을 쪼개어 일을 보고 사람들을 살피며 나는 점점 바빠지고 복잡해졌습니다. 마음에 적재된 삶의 면면들은 내면의 공간을 차지하며 나를 조금씩 짓누르기도 했습니다. 삶의 무게가 더해지는 거라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되었죠. 이건 삶의 무게가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삶이 무거워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무게 있는 삶과 무거운 삶은 전혀 다른 것이죠. 열심히 살지만 채워지는 것이 아닌 쌓여가고 있는 삶이 무게 있는 삶일 수는 없습니다.


얽힌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채 남겨질 때 삶은 한층 무거워집니다. 겉으로 보이는 일들은 진행되어 가고 있지만 나는 미세하게 사그라들고 있죠. 보이는 일들을 처리하는데 힘과 시간을 쏟느라 미처 관심을 두지 못했던 마음은 뭉친 실타래처럼 웅크리고 있습니다. 경계 없이 뭉개진 마음속에는 여러 색이 뒤엉킨 채로 마음을 숨 막히게 하고 있습니다.


경계도 없고 규모도 없는 마음에는 일에 대한 순서도 없었습니다. 우선순위 없이 보이는 것을 처리하는 하루들이 쌓여 갔습니다. 두서없는 인생에 의미는 깊어지지 않았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마음을 구분 짓고 색을 분리하는 중요한 작업을 미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삶에는 반드시는 멈추어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그곳에서 나는 다른 것들을 잊어버리고 오롯이 나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마음속에 어수선하게 쌓여있는 감정들을 털어내고, 필요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다잡고 내가 가야 할 정확한 목표를 확인하며 끈기 있게 걸어갈 각오도 다져야 하죠. 나에게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비워야 합니다.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음에게 허락해야 하는 것이죠. 내 마음에는 추진력 있는 열정의 빨강과 냉정함을 유지하는 파랑, 사랑스러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노랑과 고상하고 품격 있는 검정이 필요합니다. 나머지는 여백으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색의 경계와 조화를 고려하여 적당하고 적절하게 상황에 대처하는 여유를 배우고 싶습니다. 나다움은 유지하고 새로운 것에 열려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몬드리안의 단순하고 깊은 작품을 보면서 잠시 쉬었습니다. 밖의 것들과 타인들을 향해 있던 시선을 잠시 거두고, 어질러진 마음을 정리하며 오랜만에 나에게 천천히 정성을 쏟아봅니다. 몬드리안의 구성은 마치 멋진 풍경을 비추는 창 같습니다. 그 풍경을 들여다보며 오랜만에 마음에게 바람을 쐬어준 것 같습니다. 삶은 여전히 바쁘고 살수록 많은 것이 더해지겠죠. 그래서 종종 몬드리안을 찾아갈 것 같습니다. 마음의 창을 마주하는 느낌으로 단순하고 정갈한 사각형을 바라보며 지나간 것들을 정리하고 비워낼 겁니다. 비워내지 못한 삶은 무겁습니다. 하지만 버려야 할 것들을 비워낸 삶은 무게 있습니다. 단순한 마음에 분명한 색을 지닌 사람으로 걸어보겠습니다. 생의 끝에 나의 마지막 발자국도 묵직하게 깊은 한 걸음을 도장처럼 남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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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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