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아 레비 뒤르메 <바람의 격정>
나는 지나가고 있었고, 당신은 멈춰 서 있었습니다.
스치며 마주친 그 틈은 사실 길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아직 안녕이라는 말을 하기에는 이르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거 아세요? 우리는 첫인사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인사 없이 지나가는 인연인 것이지요.
나는 멈추지 못했고 그대는 지나가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눈이 마주쳤습니다.
한 번의 눈 맞춤으로 당신은 나로 물들었고 당신은 나를 끌어안았습니다.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면 차라리 나았을 것입니다.
의지를 사용할 수 있었다면 고개를 돌렸을 겁니다.
생각대로 살아졌다면 모른 척했을 겁니다.
하지만 소용돌이처럼 강렬한 당신은 모든 것을 마비시켜 버렸습니다.
그 찰나, 그 한 번의 눈 맞춤이 그대를 그렇게 아프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대 곁에 머물겠다고 약속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남겨진 그대를 보는 건 나에게도 편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정말 가야 하는 거냐고, 스치는 나를 보며 애달프게 내뱉은 당신의 말은 나를 찔렀습니다.
비수로 가슴에 꽂힌 마지막 목소리를 붙들고 나는 지나갑니다.
나는 처음부터 지나가는 바람이었습니다.
색을 지닌 향기였고, 향을 남기는 색이었습니다.
그것이 다였습니다.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일들에 의미를 두지 마세요.
당신은 흩어지며 사라지는 향기를 보며 서 있을 겁니다.
나는 압니다. 쓸쓸함은 간혹 사람의 마음을 사무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하지만 바람이 지나가고 난 자리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겁니다. 겨울은 나의 눈동자를, 그대의 애달픔을 덮어버릴 겁니다.
당신은 괜찮아질 겁니다. 나도 천천히 괜찮아지겠습니다.
멈춰 선 당신은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제자리를 지킨 당신 덕에 나의 아름다움은 피어났고, 한 때 나는 찬란했습니다.
지나가며 하는 말은 깊지 않고 단순합니다.
이걸로 충분합니다. 나는 이대로 충분했습니다.
머무르지 못한 나는 서성이다 어딘가에서 흩어져버리겠지만, 당신 곁에서 나의 순간은 아름다웠습니다.
내가 머물렀다면 나는 당신께 아름답게 남지 않았을 겁니다. 초라하게 사그라져 버렸겠죠.
그래서 다행인 겁니다. 이 찰나의 인연이.
나는 지나가야 했고 당신은 멈춰있어야 했습니다.
그 관계가 우리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니 나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말아 주세요.
나는 그저, 지나가며 아름다운 가을이었습니다.
나는 멈춰 서 있었고, 당신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스치며 마주친 그 틈은 영원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아직 안녕이라는 말을 하기에는 이르다고 했습니다. 그거 아세요? 우리는 첫인사도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 시작조차 해보지 못한 것입니다.
시작도 없었는데 어떻게 끝인사를 할 수 있나요?
나는 지나가지 못했고 그대는 멈추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눈이 마주쳤습니다.
한 번의 눈 맞춤으로 당신은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당신을 끌어안았습니다.
시간 너머에서 당신은 불어왔습니다.
의지를 꺾어버릴 만큼 당신은 강렬했습니다.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이, 당신이었습니다.
그 찰나, 그 한 번의 눈 맞춤이 나를 이토록 미치게 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당신과 함께 가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당신을 위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흘러가는 그대를 바라만 보는 건 내게도 고통이었습니다.
정말 거기 있어야 하는 거냐고, 멈춰 선 나를 보며 속삭이듯 내뱉은 당신의 말은 나를 찔렀습니다.
비수로 가슴에 꽂힌 당신을 안고 나는 차마 붙잡지도 못합니다.
나는 처음부터 남겨지는 흔적이었습니다.
가슴에 남는 자국이었고, 자국을 품은 가슴이었습니다.
그것은 전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살면서 마주치는 어떤 일들은 문신처럼 아프게 새겨집니다.
당신은 나에게 새겨지며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대도 아나요? 쓸쓸함은 간혹 사람의 마음을 사무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하지만 바람이 지나가도 사라지지 않을 쓸쓸함은 마음에 자리를 만듭니다. 겨울은 나의 목소리를, 그대의 애절함을 치우지 못할 겁니다.
당신은 서서히 그리움이 될 겁니다. 나는 그리워하며 사는 일에 익숙해지겠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 말고는 당신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지나가는 당신은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오월의 바람처럼 나의 얼굴을 스쳤던 당신은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멈춰 선 이의 말은 무겁지 않고 조용합니다.
이걸로 행복했습니다. 나는 이대로 행복했습니다.
자리를 옮기지 못한 나는 당신을 가슴 깊은 곳에 뿌리처럼 내리고 살아가겠지만, 휘몰아치는 당신 곁에서 나의 가슴은 벅차올랐습니다.
당신을 따라 흘러갔다면 나는 당신의 아름다움에 누가 되었을 겁니다. 남루하게 남겨져버렸겠지요.
그래서 다행인 겁니다. 이 찰나의 인연이.
나는 멈춰 서 있었고 당신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관계가 우리 사이에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니 그대는 나에게 그저 지나가는 계절이 아니었습니다.
그대는 지나가며 아름다운 나의 사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