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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영 Dec 03. 2021

세 사람

    그들이 식당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무도 우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설사 우산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 정도의 비로 우산을 펴들 사람도 없었다. 세 사람 모두 적당히 배가 불렀고 기분 좋을만큼 취해 있었고 그래서 행복하기도 하였다. 식당 입구는 좁은 편이어서 세 사람이 서 있을 자리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또 충분하였다 하더라도 비가 오는 것을 의식하고 비를 피해 그 안에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후텁지근한 식당 안에서 맵고 뜨거운 곱창전골에 아쉽지 않을 만큼 술을 마신 참이라 세 사람 모두 뱃속이 넉넉 한만큼 마음도 넉넉하였다. 송 씨가 차를 가지고 오겠다며 두 사람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말한 후 점점 심해지는 빗살 속으로 길을 건너 사라졌다.


세 사람의 모임이 주선된 것은 그날 오후였다. 강 씨의 전화를 받은 김 씨가 송 씨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세 사람들 사이에 지연이나 학연 같은 배경은 없었지만 서로 사는 동네가 멀지 않으면서, 동네 골프장에서 만나 비슷한 실력으로 내기 골프를 치면서 이 사람, 저 사람 건너 알고 지내는지 수년이 넘었다. 한참 이민 붐이 일어 남대문 시장에 이민 가방이라는 새로운 아이템이 출연하여 주목을 받고 불티나게 팔리던 80년 초에 미국 땅에 떨어진 시기도 비슷했고, 아이들 키우며 열심히 살아 어느 정도 기반을 잡고 살게 된 것도 비슷했다. 그리고 특별히 세 사람이 서로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술 마시는 자리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갈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술을 좋아하는 세 사람이 술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술친구가 필요했는데, 세 사람은 기분이 딱 맞아 출출해서 한잔하고 싶은 날은 누구라고 먼저 할 것도 없이 연락이 되어 얼큰한 국물로 한잔을 걸치지 않으면 사는 재미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이 세 사람의 모임의 특징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 모임이 주선된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기 위하여 모이는 그런 모임인 것이다. 누가 더 많이 마시고 덜 마시는가는 상관이 없었다. 먹고 마시면서 핏대를 세워가며 열변을 토하기도 하지만, 문을 나설 때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술친구로서의 세 사람은 부족한 것이 없었다. 서로 사는 형편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술자리에서 만큼은 서로 기분이 통하는 '기분 짱'인 것이다. 계산서가 나왔을 때 그동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거의 깨질 뻔할 만큼 서로 자신이 돈을 내야 한다고 언성을 높이면서 몸싸움까지 하였는데, 역시 계산은 세 사람이 모일 때마다 도맡아서 카드를 긋는 송 씨에게로 돌아갔다. 계산서는 먼저 오른쪽 자리의 강 씨 앞에 놓였는데, 그것을 그 앞에 있던 김 씨가 거나하게 술에 취한 사람답지 않게 재빠르게 가져다가 자신의 국그릇 옆에 놓았다. 그것을 본 송 씨가 맵고 뜨거운 전골과 술기운으로 벌게진 얼굴을 더욱 붉히며 눈을 부라렸다.


  “이거 왜 이래? 나를 뭐로 보고 그러는 거야... 이리 내놔......”

  “자넨 가만히 있어... 오늘은 내가 낼 거야......”


확고한 결심이라도 한 듯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김 씨를 보며 강 씨가 항의하듯 말했다.


  “여보게들, 오늘은 내가 내도록 해주게.” 


그러나 그 말과는 달리 계산서를 집어가려고 내미는 손은 기운이 없었고 그 목소리도 자신이 없어 보였다. 그때 다시 우렁차게 송 씨가 언성을 높였다.


  “내가 딴 것은 못 해도 평생 자네들 술은 살 수 있어. 이리 내.” 


하면서 실제로 몸을 틀어 옆자리의 김 씨 국그릇 옆에 부끄러운 듯 놓여있는 계산서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김 씨가 그 계산서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몸을 일으켜 팔을 휘둘렀는데 취한 탓이었던지 균형을 잡지 못해 그냥 다시 주저앉으면서 앞에 놓인 국그릇을 뒤집어엎은 것이다. 다행히 딴 사람에게는 아무 피해를 주지 않았으나 옆에 앉은 송 씨의 셔츠 자락과 자신의 배를 덮은 셔츠 앞자락과 그 아래쪽 바지 부분은 흠뻑 벌건 국물을 뒤집어쓴 것이다. 조그만 소동은 있었으나 종업원이 재빨리 가져온 젖은 타월로 대강 닦아 내면 더 이상 신경 쓸 사람은 없었다.


  “이러지 말라구, 지난번에도 자네가 계산하지 않았나...”


김 씨는 중얼중얼했으나 그 목소리는 이미 힘을 잃고 있었다.


  “어, 내가 먼저 만나자고 했는데...”


송 씨의 카드가 그의 지갑에서 나와 계산서 위에 놓이는 것을 확인한 강 씨가 멋쩍은 듯 혼잣말처럼 거들었다.


  “됐어, 됐어......”


그렇게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난 세 사람은 송 씨를 앞세우고 그 뒤를 따라 문밖으로 나온 것이다. 세 사람 중 송 씨만이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다. 강 씨는 아내가 술을 좋아하는 남편이라 후에 전화를 하면 오겠다고 한 뒤, 데려다주고 가버려 차가 없었고 인근에 사는 김 씨는 송 씨가 지나면서 픽업해서 왔던 것이다.


  “나는 걸어가도 되는데.”

  “무슨 말이야, 비가 오는데. 내가 데려다줄게.”


집에 전화해서 아내에게 오라고 하겠다는 강 씨를 만류하고 송 씨가 두 사람을 바래다주기로 하고 길 건너 모퉁이에 서 있는 차를 가지러 갔다. 그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서 있는데 갑자기 강 씨가 김 씨에게 몸을 기대 왔다. 그 무게에 중심을 잡지 못한 김 씨가 거의 넘어질뻔하자 강 씨는 식당 문 옆에 조성해 놓은 작은 꽃밭에 장식용으로 놓아둔 넓적한 바위 옆에 비틀거리며 가더니 쪼그리고 앉으며 중얼거렸다.


  “속이 안 좋은데 너무 마셨나......”

  “거기 앉으면 옷 젖어.”


김 씨는 그런 강 씨를 보며 말했으나 강 씨가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것을 보고 구토가 나나보다, 하고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그때 송 씨가 차를 가지고 앞에 와서 섰다. 김 씨는 강 씨를 부축해 일으켜서 차의 뒷문을 열고 강 씨를 자리에 앉도록 도와준 뒤, 강 씨가 그대로 뒷좌석에 길게 누워 버리는 것을 보며 운전사 옆의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았다. 갑자기 비가 거센 바람과 함께 쏟아지듯 퍼붓듯이 오기 시작했다.


“어이구 웬 비가 이렇게 오지?”


중얼거리며 송 씨는 핸들을 잡았다. 차의 유리창을 두드리듯 퍼붓는 빗속을 헤치며 1~2분쯤 멈칫거리며 직진을 하는가 하는데 아차, 하는 순간 자동차가 옆으로 미끄러지는 듯하면서 옆의 가로수를 들이받으며 급정거를 하였다.


차 속의 사람들은 잠시(아마도 5초나 10초쯤)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았다. 운전사 옆 좌석의 김 씨는 안전벨트를 방금 착용한 터라 큰 충격 없이 정신을 차려보니 채 벨트를 하지 않았던 송 씨는 핸들에 엎어져 있었고 뒷좌석의 강 씨는 좌석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정신을 잃었는지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지 미동이 없었다. 그러자 곧 핸들에 머리를 박고 있던 송 씨가 끙, 하는 신음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린 듯 상체를 바로 하고 좌석으로 몸을 기대며 옆 사람들의 안부를 챙겼다.


  “모두 괜찮은가?” 


김 씨는 그 말을 하는 송 씨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우린 괜찮은데 자네가 다친 것 같군. 병원에 가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머리에서 피가 나는데......”

  “괜찮아. 어디 좀 부딪힌 것 같은데 집에 가서 약 바르면 돼. 아이구, 큰일 날 뻔했네. 다행히 모두들 별일 없는 것 같아, 다행이네.”


그리고 아무 말이 없는 뒷좌석의 강 씨를 돌아다보았다. 차에 탈 때 뒷좌석에 그냥 누워 버리는 것을 보았는데,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는지 바닥으로 굴러 떨어져서도 차 바닥에 그냥 누워 있었다.


  “강형. 괜찮아?” 


소리쳐 묻는 말에 대답이 없자 김 씨가 말했다.


  “술이 과했던 것 같다고 하던데, 많이 취한 것 같아. 속이 좀 안 좋다고 하던데 빨리 집에 데려다주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럴까?”


다행히 차를 뒤로 빼니 별일 없이 움직여주었다. 차 자체가 크고 비싼 차라 그런지 역시 큰 손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때 사이렌을 울리며 경찰차가 나타났다. 비는 여전히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경찰이 차에서 내려, 그들 차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자 앞 좌석의 두 사람은 긴장했다. 


  “경찰이 어떻게 알고 이렇게 빨리 왔지? 반갑지 않게...”


음주운전이 들통나면 큰일이다. 다가온 경찰은 차 안을 들여다보며 외쳤다.


  “다친 사람은 없는가? 구급차를 부르지 않아도 되겠는가?”

  “괜찮다. 우리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두 블록만 가면 집이니까 그냥 가겠다.”


그때 경찰이 뒷좌석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이 사람도 괜찮은지 체크해봐야 하지 않겠나?”

  “아니다. 괜찮다. 저녁 먹을 때 한잔한 것뿐이다.”


송 씨는 계속 자신의 음주 측정을 요구할까 봐 겁이 나서 빨리 보내주기만을 애타게 바라며 집에 가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런데 경찰이 뒷사람이 괜찮은지 확인해봐야 한다며 뒷문을 열며 물었다.


  “이 사람 이름이 무언가?”

  “미스터 강이다.”


경찰은 미스터 강을 몇 번 부르다 대답이 없자 손전등을 켜서 살펴보았다. 앞 좌석의 두 사람은 술 냄새를 감추느라 정신이 집중되어 뒷좌석의 강 씨의 상태가 좀 이상한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때였다. 강 씨를 손전등으로 비춰보던 경찰이 소리를 질렀다.


  “두 사람 다 밖으로 나와!”


두 사람은 돌변한 경찰의 모습에 술 마시고 운전한 것이 탄로가 났구나, 하고 주섬주섬 일어나 아직도 비가 오는 거리로 내려섰다. 경찰은 무전기에 대고 무언가 소리소리 지르는데 그들로서는 얼핏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송 씨는 음주운전에 걸리면 보통 골치 아픈 게 아닌지를 안다. 전에도 한번 음주 운전에 걸려서 티켓을 받았는데 이번에 또 걸리면 운전 면허증을 뺏길지도 모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갑자기 큰 죄인 대하듯 비 오는 길에 끌어내고 무전기에 대형 사고가 난 듯 소리쳐대는 경찰이 한심해 보였다. 이어서 순식간에 경찰차들 서너 대가 불빛을 번쩍거리며 들이닥치며 두 사람을 에워싸는데 너무 긴장이 되어 몸까지 떨려올 지경이었다. 음주운전에 걸리면 악몽의 시작이라는 기사도 생각났다. 그러더니 잠시 후, 앵앵거리며 구급차까지 달려와 이들 앞에 서더니, 가운 입은 구급요원들이 뛰어내려 차 속으로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어안이 벙벙했다. 뒷좌석의 강 씨가 술에 취해 잠이 들었기로서니 왜 저 난리들인가...... 그런데 강 씨가 그냥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것 치고는 너무 요란스러운 것 같았다. 두 사람의 구급요원이 뒷좌석의 강 씨를 들여다보며 한참이나 시간을 끌더니 준비된 구급차의 구급 침대로 강 씨를 옮겼다. 그제야 그들도 강 씨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것을 알았다. 그동안 술 냄새에 신경이 쓰여 경찰에게서 될수록 멀리 떨어져 입을 다물고 있었으나 그런 상황이 아닌 것 같은 눈치에 송 씨가 경찰에게 물었다.


  “그가 많이 다쳤는가?”


묻는 그의 얼굴을 흘깃 본 경찰은 송 씨의 팔을 끌어, 때마침 달려온 또 다른 구급차로 끌고 갔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되겠다.”

  “나는 괜찮다. 정말 괜찮다. 맥주 한 병 정도 마셨는데 아무것도 아니다.”

  “머리에서 피가 나고 있는데....?”

  “어? 피가 꽤 많이 나네......!”


기가 죽어 옆에 말없이 서 있던 김 씨가 송 씨의 얼굴을 보고 놀라서 소리쳤다. 그리고 경찰은 김 씨에게 괜찮다면 조사해야 할 것이 있으니 함께 서로 가자고 이끌었다. 송 씨와 강 씨는 각각 구급차에 실려, 인근 패스캑 벨리 병원으로 가고, 멀쩡한 김 씨는 경찰차에 실려 타운의 경찰서로, 그렇게 각자 헤어지게 되었다.


그 자리를 떠나기 바로 전 두 사람이 아연실색, 기절초풍한 것은 경찰들과 구급차를 타고 온 구급요원에 의해 알게 된 소식으로, 강 씨의 심장이 이미 멎었고 맥박도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심장마비일 것이라고 했는데 더 이상은 모른다, 였다. 이상은 후에 당사자와 그들을 아는 몇 사람에게서 들어서 알게 된 사건의 대강 전말이다.


내가 집에서 저녁을 먹고 티브이를 보고 있을 때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병원에 와 주어야겠어. 환자야 우리가 알아서 처리하지만, 그 가족은 네가 맡아 주어야겠어.”


창밖을 내다보니 조금 그친 것 같던 비는 또다시 억수같이 퍼붓기 시작했다. 병원이 멀지는 않아도 이런 밤에 빗속을 뚫고 차를 운전해 가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절박하면 이 밤에 내게 전화를 하랴...... 나는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구급차에 실려 방금 들어온 두 사람의 한국인 중 강 씨는 구석 자리에 조용히 시트에 덮여 응급실 의료진의 관심을 이미 벗어나 있었고, 송 씨는 방금 머리 CT 촬영이 끝난 채 결과를 기다리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옷에도 피가 묻어 크게 다친 듯해 보였지만, 충돌하는 순간 앞 유리창에 머리를 부딛힐 때 유리가 깨어지지 않은 상태라 찰과상 정도인 것으로, 몇 바늘 꿰매면 될 것이라고 했다. 경찰이 송 씨의 가족에게는 연락이 돼서 그 부인이 지금 오는 중인데 강 씨 가족에게는 아직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강 씨는 이미 사망하여 응급실에 들어왔기 때문에 정확한 사인을 알기 위해서는 사체 부검소로 보내야 한다고 했다. 심장마비라고는 하는데 심장마비가 자동차가 급정거하는 사고로 인해서 온 것인지 뒷좌석에 누운 그 사고 바로 전에 온 것인지, 그것도 검사를 해봐야 알 것이라고 했다. 송 씨의 아내가 급히 도착하여 남편의 피 묻은 얼굴을 보고 놀라다가, 흰 시트를 덮은 강 씨의 시신을 보고 기절할 듯 놀라는 듯했지만, 시트 아래 누운 사람이 남편이 아니고 피투성이 얼굴이 남편인 것을 알고, 안심해야 하는지 어리둥절한 것 같았다...

잠시 후 연락이 닿은 강 씨의 아내가 경찰의 안내로 응급실로 들어서자, 응급실 담당 의사가 함께 옆방으로 가자고 한다. 남편의 사망 소식은 조용한 방에서 엄숙하게 가족에게 전달되어야만 한다. 부인은 불안해하며 나를 보더니,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느냐고 묻는다. 갑자기 집으로 두 명의 경찰이 와서 문을 두드리더니 전후 사정은 설명도 없이 '남편에게 사고가 났으니 함께 가자'라고 하여 온 것이라고 했다.


  “우리 남편은 지금 어디 있어요? 친구들과 저녁 먹는다고 해서 내가 식당에 데려다줬는데... 아무래도 술을 마실 것 같아서요, 언제 데리러 오라는 전화가 오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리둥절한 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음인지 두서없이 말을 하면서 얼굴이 창백해진다. 이럴 때 나는 사망 선고는 의사가 가족에게 전해야 하는 병원의 규칙이 있음에 다행스럽다. 나는 부인의 손을 꼭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응급실 담당 의사가 정중하게 남편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였음을 전하며 계속 유감이라고 한다. 졸지에 미망인이 된 부인은 놀라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의사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린다.


  “그럼 지금 남편은 어디 있어요? 나한테 전화한다고 했는데...”

  “저와 함께 가시지요.”


의사가 일어서서 앞장선다. 시트를 걷으니 강 씨의 얼굴은 평온하게 잠든 듯하다. 어디 부딪히거나 긁힌 상처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차 뒷좌석에 누울 때 이미 심장마비가 온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면 식당 문 옆의 꽃밭 넓적한 바위 옆에 쪼그리고 앉으며 답답하다고 했을 때, 그의 심장은 이미 요동을 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훨씬 전부터 심장을 드나드는 혈관이 헉헉거리는데, 뜨겁고 매운 곱창전골이 술과 함께 심장을 더욱더 힘들게 하다가, 찬비가 쏟아지는 바깥공기가 갑자기 들어오니 심장 부근의 혈관들이 힘에 부쳐 그냥 터져버린 것이 아닐까.....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경찰이 부인에게 이것저것 경찰이 물어야 할 사항들을 물었고, 의사는 의사가 물어야 할 고인의 평소 건강에 대해, 별문제는 없었는지를 간단히 물었다. 고인은 수년 전 아들을 사고로 잃은 후부터 술을 자주 마셨지만 건강했다. 부인이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할 만한 지병 같은 것은 없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사고로 아들을 잃었으니 그 괴로움에 심장이 견디다 견디다 못해 터졌구나...... 나는 부인의 옆에 있어 주는 일 이외에는 아무런 할 일이 없었다.


  “다른 자녀들은 가까운 데 사나요?”


여기 아이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부모와 함께 사는 일은 없다. 멀리서, 혹은 가깝더라도 독립해서 산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연락해야지요.”


아내는 아직도 남편에게서 데리러 오라는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감정의 표현도, 넋두리도, 통곡도 잊은 채 넋이 나간 것 같이 중얼거렸다. 직원이 나를 손짓해 부르더니 병원에서 부인이 할 일이 없으니 그만 집에 가서 쉬라고 하란다. 잠시 후면 시신은 아래층 영안실로 옮겨질 테고, 스케줄에 따라 내일에는 검시소로 보내지든지, 장의사로 보내지든지 하게 될 것이다.


  “경찰차를 타고 와서 차가 없는데요.”


내가 집에 가서 쉬시라고 하니 부인은 길 잃은 어린아이 같이 불안해한다. 집이 어디냐고 물으니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내 차로 집까지 바래다 드리기로 하고 밖으로 나서니 퍼붓는 비에 바람까지 몰아쳐 우산도 펴지지를 않는다. 정말 폭풍우다. 이 밤. 이 부인이 어떻게 집에서 혼자 지샐 것인가...... 나는 옆에 부인을 태우고 운전해 가면서 그것이 두려웠다.


  “밤에 누가 곁에 있어 줄 가까운 사람이 있어요?”

  “아니요, 없어요.”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어디 연락해줄 곳이라도 없을까요?”

  “괜찮아요.”


나는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내가 그녀에게 해줄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이제 주인을 잃어버린 강 씨의 벤이, 부인의 도요타와 나란히 서 있는 주차장을 멈칫거리며, 빗속을 지나, 서너 개의 작은 층계를 올라가, 불빛 없는 집 안으로 들어가는 부인을 눈으로 바래며 나는 쉽게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집안의 불빛이 켜진 후에도 한참 동안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남편의 전화를 기다리다가 사망 소식을 들은 아내. 이 비바람 속의 밤을 어떻게 텅 빈 집에서 혼자 보낼 것인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송 씨는 찢어진 이마의 상처를 여덟 바늘인가 꿔매고 다음 날 퇴원하였다. 충격이 대단하였던 듯 굳은 얼굴과 충혈된 눈은 하룻밤 사이에 중병환자같이 변해버렸다. 그리고 나는 이 사건의 주인공들과 더 이상 만나지 못하였다. 한참 후에 강 씨의 부인이 나가는 교회의 어느 교인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2주나 걸린 부검으로도 심장마비가 온 정확한 시간, 즉 자동차 사고에 의한 심장마비인가 아니면 그 바로 전에 심장마비가 이미 왔던 것인가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심장마비가 1분 전에 왔는지 1분 후에 왔는지는 그 어떤 검사로도 밝혀낼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우정 관계를 떠나서 냉정한 입장으로 사건을 보지면 송 씨 측으로는 강 씨가 사고 전에 심장마비가 왔었을 것으로 믿고 싶을 것이고 강 씨 측으로는 사고 충격으로 심장마비가 왔을 것으로 믿고 싶을 것이다. 차 사고로 인한 심장마비라면 보험회사에서 지급되는 보상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현장 목격자인 김 씨의 증언이 오히려 부검 결과보다 무게가 실렸다. 송 씨가 차를 가지러 간 사이에 김 씨가 본 강 씨의 상태. 술에 취했다고는 하지만 갑자기 몸을 기대 오더니 몸의 상태가 좋지 않다면서 비가 오는 데 주저앉아 구토가 나는지 가슴을 쓸었다는 것. 그런 증상은 심장마비가 오는 증세라는 것이다. 그러나 부축을 받기는 했지만 일어나 걸어서 차를 탈 수 있었다는 것. 모든 상황이 마치 추리소설의 한 장 같았다. 아마도 결국, 교통사고사보다는 사고 직전에 온 심장마비에 의한 사망으로 결말이 난 듯싶었다. 살아남은 두 사람은 한동안 경찰에 조사받으러 다니다가, 송 씨는 정신적인 충격이 워낙 커서 변호사를 선임하여서 일 처리를 맡겼다. 김 씨는 중요한 목격자로 끝나는 일이지만 송 씨는 음주운전에서부터, 잘못하면 자신의 운전 부주의로 사람을 죽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그 혐의를 벗어야 하는 일과, 그에 의한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한동안 전문의의 치료를 받아야 했었다. 누군가 전해준 사람의 말로는 강 씨 부인이 송 씨에 대한 원망이 깊은 듯했다. 간 사람은 그렇게 갔지만 송 씨는 장례식에도 안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만 성의를 보여 주었어도 덜 섭섭했을 것이라고 한다는데..... 나는 그 성의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자신의 변호사에게 일임했으니 변호사의 지시대로 했을 뿐이라던 송 씨에 대해 안 된 마음도 크다. 얼마 안 된다고는 하지만 술친구의 저녁값도 자신이 계산하고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나서서 그 비 오는 밤,  차를 모는 사람이라면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다. 그렇게 남을 섭섭하게 할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보험 문제도 걸리고 법적인 문제도 걸리게 되는 입장이 되니 변호사의 지시대로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받았을 숱한 곤욕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에게 동정이 갔다. 그들 술친구 세 사람은 그렇게 헤어지고 다시는 만날 일이 없어졌다. 이 사건 이후 송 씨는 완전히 술을 끊고 교회에 열심히 나가면서 많은 봉사활동을 한다고 했다. 후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강 씨 부인이 말했다고 한다.


  “결국 제 남편이 한 사람을 구원하고 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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