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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영 Mar 02. 2022

암 환자 서포트 그룹

1. 박기문 씨 이야기

    박기문 씨는 자신의 표현대로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다. 그룹 모임에 나오는 것이 6년째. 위암 수술을 받고 5년을 넘겨서 모임에서 박수를 받았다. 위암 수술을 받기 2년 전에는 심장마비로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소생했다.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었고, 암으로 죽을 수도 있었는데 두 번 다 죽음이 비껴갔다. 이 정도면 무슨 병이 닥쳐도 끄떡없지 않겠느냐고 허허, 웃는다. 그는 이 모임에 열심히 나오는 이유가 자신 같은 사람을 보고 용기를 얻으라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위를 4분의 3이나 잘라냈는데 지금은 없어서 못 먹고 안 줘서 못 먹는다고 엄살이다. 처음 2, 3년간은 아주 조금씩 자주 먹는 식사를 했으나 지금은 보통 식사량에 하루 세끼로 너끈하다고 한다. 위가 잘 늘어난 것 같은데 터지면 안 되니까 식사량을 더 늘리지는 않겠다고 한다. 


6년 전 박기문 씨는 그 당시 내가 근무하던 패스캑 벨리 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수술 후 의사가 항암치료를 권유하자 단번에 거절해버렸다. 수술로 위를 잘라 버렸으면 그만이지 왜 항암치료를 하라고 하느냐고 머리를 저었던 것이다. 그때 그는 이 모임에서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던 이동우 씨와 만나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이도 같은 데다 위암이 발생한 시기나, 위를 4분의 3이나 잘라낸 것이나 서로 흡사했다. 이동우 씨는 내가 만난 환자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용감한 분 중 하나다. 건물 건축 현장에서 일하는 직업을 가진 분인데 위암 수술 후 아침 일찍 방사선 치료를 받고, 이어서 항암 주사를 -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적으로는 한 시간 혹은 두세 시간씩 맞고 오후에는 일터로 출근하는 일을 8주간 계속한 사람이다.  


  “아무렇지도 않아요!”  


내가 몸이 피곤하지 않으냐고 물을 때마다 씩씩하게 한 대답이다. 박기문 씨가 항암치료를 안 받겠다고 했을 때 이동우 씨는 그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무서워요.”  

  “별것 아니에요. 나도 처음에는 겁이 났었지만, 막상 시작하니까 견딜만해요. 그리고 어떤 사람은 항암 치료를 받고 싶어도 보험이 없고 아무 혜택을 받을 형편이 안 돼서 못 받는 사람도 많은데 나라에서 해주는 치료를 왜 안 받아요? 나중에 가서 ‘그때 항암치료를 받을 걸 그랬다’고 땅을 치고 후회해도 이미 늦을 수도 있으니 당장 의사한테 연락해서 치료받으세요.” 


그 누구의 말도 들은 척도 하지 않던 박기문 씨는 이동우 씨의 일갈에 곧장 달려가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 예약을 잡았다. 그렇게 항암치료를 서너 번인가 받았을 때 지독한 폐렴에 걸려 병원에 실려 온 박기문 씨가 내게 푸념했다.  


  “내가 이동우 씨한테 속았어요. 아무렇지도 않다더니 괜히 시작했어요. 너무 힘들어 죽겠어요.”  


다음 모임에 만났을 때 이동우 씨가 말했다.  


  “워낙 힘든 적과 싸울 때는 준비 단단히 해야 합니다. 마음가짐이 중요해요. 까짓것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두고 보자, 하는 마음으로 부딪히면 힘들 것 하나도 없어요.” 


이동우 씨는 정말 대단한 분이다. 후에 슬쩍 물었다.  


  “항암 치료가 아주 힘들다고 들었는데 꽤 수월하게 끝내신 것 같아요.”  

  “왜 안 힘들었겠어요. 어떤 때는 다섯 개 올라가는 층계도 기어서 올라가곤 했어요. 나 대신 직장에서 일하는 아내가 더 힘들 텐데 내 약한 꼴을 보이기 싫었어요.” 


항상 주사를 맞는 옆에서 조용히 기도하며 헌신적이던 그 아내가 인상적이었는데, 정말 멋진 남편이다. 


그 부부는 항암치료를 끝낸 후, 딸이 사는 노스캐롤라이나로 이사를 갔다. 2년쯤 전인가 그 부인의 전화를 받았다.  


  “저 기억하세요? 그때 패스캑 병원에서 위암 수술했던 이동우 씨 처입니다. 오늘이 제 남편 수술한 지 

만 5년 되는 날이에요. 정말 고마웠던 것, 인사 한번 제대로 못 드리고... 항상 마음속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5년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인사하고 싶어 전화드렸어요.” 


나는 그 전화를 받고 정말 기뻤다. 그는 5년 생존자에 속해야 하며 완치되어야 마땅한 사람이다. 


박기문 씨도 세월이 흐르며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힘겹게 끝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것이다.  


  “그때 이동우 씨가 권하지 않았으면 정말 항암치료를 받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속았다, 어쨌다 한 것은 괜히 하는 말이었고 실은 정말 고맙게 생각해요. 어디에 계시든지 항상 건강하시길 마음속으로 빕니다.” 


그건 그의 진심일 것이다. 그가 모임에서 강조하는 말이 있다. 의사를 믿으라는 것이다. 자신은 처음에 항암치료를 안 받으려고 이리저리 빼 보았지만 역시 의사의 지시는 따르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의사들은 그래도 그 분야에 5년, 10년 이상 공부한 사람들이니 그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어느 

분야는 3개월만 하면 자격증을 따기도 하는데 그 세월이 보통 세월이겠냐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가 처음 위암 진단을 받았을 때 주위에서 온갖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다고 한다. 이걸 먹어라, 뭐는 안 된다, 이 의사 찾아가라, 저 의사 찾아가라, 수술하면 금방 퍼져서 죽으니까 하면 안 된다, 기도원에 들어가라……. 막상 이 일이 자신에게 닥치니까 이런 모든 정보에 귀가 솔깃해지더라는 것이다. 세상의 온갖 쓴 것들을 다 모아서 끓여놓고 먹으라고 하는데 코를 부여잡고도 안 넘어가는 걸 죽기 살기로 마시니까 되더라는 것이다. 또 누군가는 수술보다 더 힘든 것이 항암치료라고 했단다. 정말 싫고 무서웠단다. 좋은 경험자를 만나 그분의 격려를 받았고, -툴툴거리기는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후회하고 가슴 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느냐고 했다. 의사가 하라는 것을 다 했는데도 안 된다면 그것은 운명이다. 다만 일단 최선은 다해야 한다. 

그는 자신은 이제 암 환자가 아닌 부류에 속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경험을 누구에게든지 전하고 싶어 암 환자 모임에 참석한다고 했다. 나는 언젠가 그분이 식사하는 것을 눈여겨보았는데 그분은 정말 김밥 한 팩을 깨끗이 비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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