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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영 Mar 03. 2022

102일의 행복

    생명이 떠난 아기의 얼굴은 밀랍 인형 같았다. 아기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잠든 것 같았는데, 곧 눈을 뜨고 방긋 웃을 것도 같았다. 아버지는 한순간이라도 아기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면 큰일이라는 듯 그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옆에 앉아있는 엄마는 넋이 나간 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다섯 시 반에 젖을 먹였는데….” 


병실 앞 복도 벽에 걸려있는 시계는 지금 시간이 10시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난 몇 시간 동안 아기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따금 연민의 눈으로 방안을 슬쩍 둘러보고 가는 응급실 의료원 이외에는, 복도를 오가는 의사나 간호사들은 생명이 사라진 아기를 안고 앉아있는 부모가 있는 이 병실에 더 이상 신경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더 이상 그들이 할 일이 없는 것이다. 


나는 다시 아기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감긴 눈 위에 그린 듯 예쁜 눈썹, 그리고 조그맣고 오뚝한 콧날과 선명하게 꼬옥 다문 입은 젊은 부부의 첫인상에서 보았던 잘생기고 편안한 외모의, 좋은 점만 빼어 닮은 듯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듯 큼직한 두 귀는 하얀 조개껍질처럼 예쁘고 귀여웠다. 사람의 개성과 품성을 나타낸다는 이마는 넓고 반듯하여 기품 있어 보였는데 마치 닫힌 문을 열어보려고도 하는 듯 젊은 아버지는 그 이마를 자꾸만 어루만지고 있었다. 너무나 잘생긴 아기였다. 


병원의 담당 직원이 손짓해 나를 불렀다.  


  “카운티에서 조사관이 나왔어요. 아기 부모들에게 힘든 일이지만 이미 죽어서 병원에 들어온 환자의 가족은 일단 조사를 받아야 하니 부부 한 사람씩 콘퍼런스룸으로 안내해주고 통역을 부탁해요.” 


나는 전에도 그런 경험이 있어 알고는 있었다지만, 몇 시간 전에도 살아서 엄마의 젖을 힘차게 빨고 잠든 아기가 단지 두 시간 만에 죽어버린 상태로 발견되어 억장이 무너지고 넋이 나가버린 젊은 부부가 또다시 당시 상황을 마치 취조받는 범인처럼 낱낱이 고해야 하는 고통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나는 아기 아빠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타운 조사관이 와서 인터뷰를 해야 합니다. 법적 서류 절차상 거쳐야 하는 일이니까 잠깐 자리를 옮기셔야겠어요.” 


아기 아빠는 말없이 옆의 아내에게 아기를 건네주고 일어나 방을 나섰다. 응급실 옆의 여느 집 아담한 거실 같은 자그마한 콘퍼런스룸에는 카운티 조사국에서 나온 검사관 두 명과 한 명의 타운 경찰이, 들어서는 우리를 맞아 정중하게 위로의 인사를 건네고 자신의 신분과 해야 할 일을 설명했다.  


  “미스터 김은 영어에 문제가 없는 분인데 제가 꼭 함께 있어야 되나요?” 


인터뷰가 시작되어 모두가 수첩을 꺼내 들어 메모를 시작하자 내가 물었다. 아기 아빠의 인적 사항에 ‘한국의 대기업 뉴욕 지사 부서 팀장’인 것을 읽은 터라 그런 사람의 영어 수준은 통역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

문이다.  


  “물론이지요. 우리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정확한 것을 확인해주고, 이 조사에 함께 있었다는 증인으로서 서명을 해주어야 합니다.” 


나는 이 아픈 자리를 피할 구실을 찾지 못하고 갇혀버렸다. 조사관이 평소 아기의 건강 상태와 지난 며칠간의 아기의 상태에 관해 묻기 시작했다.  


  “아기는 건강하게 정상분만으로 이 병원에서 출생했습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예방주사를 맞았고 소아과 의사의 체크를 받아왔습니다. 세 살 터울의 큰아이보다 훨씬 건강하고 활동적이어서 거의 6개월 이상이 된 아기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흘 전 주일날이 아기의 백일이었어요. 그래서 직장 친구들을 초대해 백일 잔치를 했습니다.” 


아기 아빠는 백일 잔칫날의 즐거움이 새삼 떠오르는 듯 거의 활기차게 말을 시작했으나 거기서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그 즐거운 순간, 단지 이틀 후에 닥쳐올 이 큰 비극을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그 백일잔치의 허망함이 가슴을 덮친 듯했다. 그리고 급히 옆에 놓인 휴지통의 휴지를 잡아 빼고 어깨를 흔들며 오열을 시작했다. 방 안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의 가슴에도 그의 슬픔이 마치 아침 안개처럼 내려앉아, 적막이라는 캔버스 위에 오열의 파도가 마침내 터져 버린 풍선처럼 조각조각 떨어져 내리는 듯했다. 한동안 정지된 시간처럼 방안은 적막한 슬픔만이 떠다녔다. 이윽고 역시 잠긴 목소리로 조사관이 물었다.  


  “그리고 어제는 아기에게 다른 특별한 이상이 없었나요?”  

  “저는 아침 일찍 회사에 나가기 때문에 모르지만, 아내 말에 의하면 매일 와서 살림을 도와주는 가정부와 큰아이와 함께 집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여덟 시쯤 귀가하여 목욕시키는 것을 도와주고 침대에 뉘어 아기가 잠드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가정부의 인적 사항을 상세히 설명해주십시오.” 


조사관은 즉시 가정부를 잡고 늘어졌다.  


  “연세가 오십 조금 넘으신 분인데 저희 아파트 가깝게 살고 계십니다. 큰 애가 아직 어리고 아내가 임신한 상태에 입덧이 심해서 둘째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고용했던 분입니다.”  

  “가정부의 가족들은?”  

  “아저씨가 계시고 자녀들은 다 성장하여 다른 곳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용돈도 벌고 소일도 하실 겸 오셔서 가까운 인척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사관들이 혹시 가정부를 의심하면 큰일이라는 듯 덧붙였다.  


  “아주 좋으신 분이며 제 아이들을 친 손주처럼 사랑하고 돌봐주시는 분입니다.” 


조사관은 수첩에 부지런히 무언가를 써넣으며 가정부의 집 전화번호를 물었다. 


  “제 아내가 알고 있으며 저는 모릅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난밤 목욕 후에 침대에 누인 후부터 오늘 아침까지의 상황에 대해 말해주십시오.” 

  “사실 저는 평소의 잠 습관이, 한번 잠들면 아침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깊은 잠을 자기 때문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아내 말에 의하면 새벽 세 시쯤 아기가 깨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나서 아기방에 가 보았더니 곧 다시 잠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젖 먹일 시간이 되어 다섯 시 반에 다시 일어나 아기에게 젖을 먹였다고 합니다. 평소와 같이 한 이십 분쯤 모유를 잘 먹은 아기가 편히 잠든 것을 보고 와서 잤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침 여덟 시에 깨어서 아기방에 갔더니…….” 


그는 거기서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죽었다, 라는 표현을 입에 담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시간 죽은 아기를 발견하고 경악한 엄마의 모습이 모두의 가슴을 친 듯 잠시 방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아내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소리에 제가 일어나 달려가 보니 한눈에 죽어있는 것을 알 수 있게 피부색이 석고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기를 눕히고 인공호흡을 시도했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큰아이는 어디에서 잡니까?”  

  “저희와 같이 침대에서 잡니다. 그때까지 큰아들 인영이는 자고 있었기 때문에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불렀더니 오 분쯤 후에 구급차가 와서 거의 아홉 시쯤 이 병원에 왔습니다.” 


구급차도 급히 서두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사망한 것을 확인했을 터이니….


  “알겠습니다. 이런 비극을 당한 부모의 고통에 무어라 위로의 말을 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사는 어떤 범죄를 예측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런 조사를 통해 미연에 방지할 어떤 가능성을 찾아보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기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됐습니다. 이제는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남편이 떠난 자리에 부인이 와서 앉았다. 조사관은 역시 위로의 말을 전한 뒤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관은 남편과 같은 질문에 대한 같은 대답을 들은 뒤, 발견 당시의 아기의 상태에 대해 꼼꼼히 물었다. 아기를 발견했던 

순간 아기는 똑바로 누워 있었던가, 엎드려 있었던가, 무언가 토한 흔적은 없었는가, 머리 근처에 베개나 장난

감 등이 있어서 아기를 질식시킬 만한 물건은 없었나…. 의심될 만한 아무런 흔적은 없었다. 막 시작한 책이 느닷없이 102페이지에서 영문도 모르는 채 마침표가 찍히고 그대로 끝나버린 것 같았다.  


  “아침에 깨어보면 죽은 채 발견되는 아기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연구하지만, 아직도 정확한 사인에 대한 원인을 못 내리고 있습니다. 우유를 먹을 때 함께 들어간 공기에 기도가 막혀서 질식사할 수도 있다는 보고가 있지만 그건 대개 생후 한 달 이내의 우유를 먹는 아기에게서 일어난다고 보는데 진영이 같이 삼 개월이 넘고 모유를 먹는 아기에게서는 그 가능성을 생각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옆에 말없이 앉아있던 카운티 보건국 직원이 설명했다.  


  “더 많은 시간을 빼앗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댁에 함께 가서 아기가 자던 방과 침대 등을 보아야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아기는 저희가 데리고 가도 되나요?”  

  “아직은 결정할 수 없지만, 별일 없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장의사에 연락하도록 하십시오. 지금은 우선 저희와 함께 댁에 가도록 하지요?”  

  “아기는 그냥 놔두고요?” 


엄마는 아기를 놓고 가는 것이 기가 막힌다는 듯 한숨과 함께 물었다. 조사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에서는 일단 환자가 숨 쉬는 것을 멈추면 아래층의 시체 보관소로 보내 장의사가 오기 전까지 보관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생명이 있을 때 병원에 들어와 기본적인 진단을 의사에게 받은 바가 있고, 그에 대한 적절한 치료 

기록이 있는 상태에서 사망했을 때의 경우이고, 이미 사망해서 병원에 들어온 경우에는 시체 검시소로 보내야 한다. 이 아기의 경우에는 의사의 확실한 서명이 있으면 그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기가 왜 죽었는지 그 확실한 이유를 의사가 어찌 알 것인가…. 벙글벙글 웃으며 씩씩하게 자라다가 갑자기 숨을 멈춰버린 아기를, 그래서 죽은 아기가 확실하게 사망했음을 증명하는 일만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부부는 아기를 남겨놓고 조사관들과 함께 집으로 떠나야 했다. 아무리 외면하고 눈을 부릅떠도 눈물을 참기 힘든 순간이다. 부부는 오래오래 아기를 들여다보았다.  


  “아기를 한국으로 데리고 가서 선산에 묻어주자고 아내와 이야기했어요. 우리가 귀국하고 나면 혼자 남게 될 텐데 너무 가엾잖아요.” 


그리고 다시 한번 죽은 아기를 꼬옥 끌어안고 부부는 아기에게 작별을 고했다.  


  “준영아. 네가 우리에게 온 지난 102일 동안 아빠 엄마는 너로 인해 참 행복했다. 너무나 너무나 네가 보고 싶어지면 그 행복했던 날들을 생각하면서 살 거야. 잘 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뒤돌아보며 조사관들과 병원문을 나서는 그들을 배웅하고 나는 돌아와 커튼 속에 

이제는 혼자 누워있는 아기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림 속에서 본 천사의 모습이 이랬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한 줄이 떠올랐다. 그 무엇에도 오염되지 않은 순전한 모습 그대로 102일 동안 세상에 행복을 뿌려 주

고 이제는 천사가 되어 떠나가 버린 예쁜 아기….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다. 하나님이 이 아기에게 꼭 102일간의 생애만을 허락하시지는 않으셨을 것인데…. 이 사랑스러운 아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조사관들의 메모지에 가득한 의문점을 뿌리고 그 해답을 어딘가에 남겨놓은 채 숨을 거두어버린 아기. ‘잠들었다가 그냥 숨이 멈추었을까…. 아니면 죽음의 고통을 느끼고 뒤척이다가 갔을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채, 총총히 저세상으로 가버린 아기. 나는 커튼을 닫으며 아기에게 작별을 고했다.  


  “아가야, 잘 가…. 저 아름다운 하늘나라의 천사가 되어 마음껏 뛰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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