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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영 Mar 08. 2022

암 환자 서포트 그룹 II

하진원 씨 이야기

    이 환자를 병상에서 처음 보았을 때 그는 중환자였다. 수술 후 며칠간 면도를 하지 못한 데다가 고통스러움이 얼굴뿐만 아니라 온몸에 그냥 드러나 보였다. 시술 의사가 닥터 이만드인 것을 보면 간이나 담낭 부분의 암일 것이며 그 예후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평판과 실력이 엄지손가락으로 정평이 난 의사를 만났으니 수술 자체에는 운이 좋은 환자이다. 닥터 이만드는 콜롬비아 대학병원의 간 이식 수술 전문의로 간 부위의 질환으로는 세계적이라는 정평이 난 의사이다. 

간 부위 수술 환자들은 일반적으로 수술 후 고통이 몹시 심해 줄곧 일정한 양의 모르핀이 주사되며 약의 효력이 떨어져서 고통을 호소하기 전까지는 자는 듯 대개 몽롱한 상태로 지낸다. 이 환자 옆에는 미국인 부인이 줄곧 지키고 있었는데 참 인상이 좋았다. 그리고 환자가 자기 남편이라고 스스로 소개했다. 나는 환자의 상태와 도움을 받고 싶은 일이 있는지 물었는데 환자가 두 눈을 감고 대답 없는 것은 이해가 돼도, 부인의 태도에서도 역시 무언가 거부감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병은 광고해야 한다는 옛말이 있지만, 남이 내 병을 아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병실을 나와 더 이상 그의 병실을 찾지 않았다. 

그 며칠 후 이 환자 담당 소셜 워커(사회복지사)가 나를 보고 이 환자를 만나 달라는 것이다. 환자가 건강 보험을 가지고 있지 않아 퇴원 수속을 하기 위해 부인에게 신상정보를 받으려고 하니 아무것도 모른다며 남편과 이야기하라고 한다는데 병상의 남편은 영어를 한마디도 못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한국말을 못하는 미국인 부인과 살면서 남편이 영어를 못하는 부부가 있을까…. 나는 의아했다. 무언가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병실을 찾으니 역시 환자는 잠이 들어있었고 부인은 옆에서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았지만, 조용히 해달라는 손짓을 한다. 나는 부인을 밖으로 나오라고 한 후 남편의 직업과 지난해 세금 납부 금액에 관해 물으니, 직업은 없고 작년에는 하던 일들이 실패해 수입 없이 친구들의 도움으로 살았다고 했다. 나는 저소득층이라면 일정한 양식의 서류를 구비해서 가져오면 주 정부의 혜택을 받는 '체리티 케어'를 신청할 수 있으니 그 신청 담당자를 만나라고 일렀다. 부인은 그것이 무언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저소득층에게 주 정부가 의료 혜택을 우리들이 내는 세금으로 충당해주는 프로그램입니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공짜 치료, 혹은 무료라고 생각하지만, 이 모든 프로그램은 세금을 내는 사람들의 몫인 것이다. 

나는 담당자에게 체리티 케어 신청을 하도록 알려주고 그리고 후에 그가 퇴원한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까…. 로비에서 누군가가 나를 찾는다고 하여 가보니 이 부부가 앉아 있었다. 수술 후 병상에서 괴로워하던 모습은 많이 회복되어 말끔하게 면도하고 환자복 대신 양복을 잘 차려입은 그를 처음에는 못 알아볼 뻔했다. 무언가 나를 경계하는 것 같았던 그 부인이 환히 웃는데 영어를 못하는 한국 남자가 미국인 아내를 둔 생각이 났다. 그러나 잘 회복된 모습을 대하니 반가웠다. 


  “그동안 잘 회복되신 것 같아요. 아주 건강해 보이시는데요.”  


나는 인사를 건네고 왜 나를 찾았는지 궁금하여 그의 옆에 앉았다. 그가 갑자기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말한다. 

 

  “제가 먼저 윤 선생님께 사과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뵙자고 했습니다.”  

  “제가 사과받을 일이 뭐가 있습니까?” 


나는 놀라서 물었다. 사연은 이랬다. 그가 투자했던 어느 사업체가 망하는 바람에 그는 재산을 거의 다 날리다시피 했다. 지난해에는 특히 펀드나 증권 계통으로 재산을 날린 사람이 많았고 그 여파로 침체한 경기가 여전히 밑바닥이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그때까지는 건강보험은 물론 가지고 있었고 정기검진도 게으르지 않게 받았다. 그러나 갑자기 닥친 사업의 실패로 적지 않은 건강보험료도 벅차 몇 달 전에 해약하고 말았다. 그러던 중 경제적으로 휘청거리면서 심적인 고통이 컸던지 한국에 사업차 다녀온 며칠 후 견딜 수 없는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받은 진단이 담도암. 간에서도 작은 크기의 암세포들이 발견되었다. 그 진단을 받는 순간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정신이 나갔던 것 같다고 했다. 마침 그때 사업 관계로 전부터 조금 알고 지내던 여자가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커다란 꽃바구니를 들고 찾아왔다. 그리고는 미국 병원이란 한번 들어와 수술하고 입원 며칠 하면 수십만 불이 청구되는데 건강보험이 없으면 쪽박을 찬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 병원의 한국부는 병원을 위해 일하는 부서이니만큼 어떻게 해서라도 환자에게서 돈을 챙기려고 하니 절대로 멀리해야 한다, 그 대신 자신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길이 있으니 4,000달러만 내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정신이 아득한 상태에서 그 말을 들으니 구원의 손길같이 느껴졌다. 부인이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4,000달러를 장만하여 갖다 바치고 병원비를 그 여자가 해결해 줄 것으로 믿고 마음 놓고 지냈다. 그러면서 내가 병실에 들르면 '멀리해야 한다'는 권유를 생각하고 자는 척, 아내는 한국말을 못 하는 척, 남편은 영어를 못하는 척, 따돌리기 작전을 했다. 그런데 소셜 워커와 내가 번갈아 체리티 케어니, 뭐니, 저소득층이 받는 혜택에 관해 설명해주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들이 뭘 모르고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퇴원 후 병원의 소셜 워커를 찾아가 저소득층의 혜택에 대해 설명을 들으니 자신이 그 해당 사항에 적합한 걸 알고 그를 통해 체리티 케어를 신청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 준 돈을 다시 내놓으라고 하니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피한다는 것이다.  


  “나는 절대로 이 여자에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알고 보니 나뿐만이 아니더라고요. 벼랑에 떨어지려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잡히는 것이 있으면 생각할 여유도 없이 그냥 잡게 되는 그 심리를 이용해서 불쌍한 사람들 등치는 인간들은 벌을 주어야 합니다.” 


나는 이따금 이런 케이스를 본다. 봉사센터라는 곳에서 조금씩 사례비를 기부금 형식으로 요구하는 곳이 있는 것도 안다. 금액이 2, 300달러 정도라면 그런 기관도 운영해야 하니까 이해도 하고 묵인한다. 그러나 몇천 달러라고 하면 사기다. 도와주는 사람은 절대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 부서에서는 정말 체리티 케어가 필요한 사람들은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카운티(county: 자치주)에서 요구하는 자격과 그 기준의 서류를 정확하게 구비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적당히 서류를 꾸며내어, 말할 때마다 말이 바뀌게 되면 의심해야 한다. 사실 도와준다며 다가서며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가짜로 서류를 만드는 일도 서슴지 않아, 이런 케이스는 우리 부서로 통고가 온다. 많은 사람들이 절박해서 오는 곳. 병원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의 사연을 품고 온다. 우리는 그들을 도와주는 일을 한다고 자부한다. 이따금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그때 정말 고마웠어요” 하고 손을 잡고 고마워할 때는 정말 뿌듯하고 보람을 느끼는 것이 우리들의 일이다. 

하준원 씨는 병상을 찾아온 내게 몰라서 너무 무례했었다고, 죄송하다고 다시 인사한다. 매일 수많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괜찮습니다. 적은 돈이 아니니 그 돈이나 꼭 돌려받으세요.” 


이분은 아주 멋쟁이고 그런 어수룩한 사기에 휘말릴 것 같지 않은 분이다…. 자신의 말대로 벼랑에 떨어지려는 느낌이 드니까 정신이 아득해져서 분별력이 무디어졌던가…. 

이분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주 재미있다. 그는 담도암 수술을 받기 한 달 전에 한국에 있었다. 평소에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다 보니까 주위에서 한의사에게 건강 검진을 받아볼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친구들의 소개로 끌려간 곳이 정말 유명하다는 어느 한의사 앞. 이 한의사가 몸을 한번 진단해보면 건강 상태는 족집게라고 했다. 여기의 누구도, 저기의 누구도, 또 다른 누구도, 이 한의사의 진료로 병을 진단받고 치료해서 생명을 건졌다던가…. 하진원 씨는 이 한의사에게 99점도 아닌 100점의 건강 판정을 받았다. 나이는 60세이지만 건강 상태는 40대입니다, 라는 딱지를 붙이고 인생은 지금부터다, 라고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펴고 돌아온 후에 한 달 만에 배가 아파 응급실에 실려 들어왔다. 그리고 담도에서 간까지 퍼진 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 유명하다는 한의사도 유명해지기까지는 무언가 갖추고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진단이 한 달 전이었고 전이되어있는 암을 가진 환자였다면  물론 내 소관은 아니지만, 진단비는 돌려주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하진원 씨는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석 달에 걸친 한 사이클의 치료가 끝난 후 CT 촬영 결과는, 간에서 발견되었던 열두 개의 암세포 중 일곱 개가 사라지고 다섯 개만 남았는데 그것도 크기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항암치료가 효력을 본 것이다.  


  “저는 건강진단에서 100점 맞은 지 한 달 만에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게 되었지만 크게 놀라지는 않았어요. 걱정도 물론 안 했고요. 죽는다는 것도 겁나지 않습니다. 현대 의학을 믿고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면서, 가게 되면 가고, 더 살라면 더 살고,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누구나 다 가는 길인데 겁낼 일이 뭐 있겠습니까….” 


나머지 다섯 개의 적을 섬멸하기 위해 그는 한 사이클의 항암치료를 계속한다. 항암치료를 받을 때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증상이 있다. 말하자면 부작용이다. 머리가 빠지는 케이스는 일반적으로 쓰는 약에 따라 다르다. 유방암의 경우는 환자 거의 전부 머리가 빠진다. 남자들이 받는 항암 약은 차이는 약간 있지만, 머리는 별로 안 빠진다. 입맛이 없어요…, 입맛 나는 약. 구토가 납니다…, 구토 멈추게 하는 약. 변비가 생겼어요…, 변비 없애는 약. 설사가 나요…, 설사 멈추게 하는 약. 피부가 건조해져요…, 피부가 촉촉해지는 약. 자꾸 우울해져요…, 명랑해지는 약……. 온갖 증상에 대비하는 약이 사열하는 군대처럼 준비돼있다.  


  “내가 치료받으면서 마음에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내 살에 바늘을 꽂는 간호사에게 될수록 칭찬을 많이 해주자. 그러면 내 살에 바늘을 꽂는 순간만이라도 덜 아프게 꽂으려고 할 것이다. 불편한 점은 내색도 하지 말자. 그래야 내가 편하다.” 


진리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상황에서라도 내가 편할 수 있는 길을 보는 것이 진리다. 항암 주사를 맞을 때마다 저녁에는 아내와 마주 앉아서 소박한 파티를 연다. 암세포라는 적이 섬멸되어가는 것을 자축하는 파티다. 암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암과 맞서서 즐기는 듯한 태도라면 정말 암이 신경질이 나서 도망가버리지 않을까…. 나는 그가 완치될 것을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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