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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영 Mar 10. 2022

장의사에서

    아직 눈발이 날리는 낌새는 없었지만, 정문 앞 도보의 길을 밝혀주는 두 개의 가로등은 확실하게 드문드문 옅은 눈발이 가느다란 실비 속에 자태를 나타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둘러 왔음인가, 아직 넓지 않은 주차장에는 몇 대의 차만이 눈에 띌 뿐이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차가운 실비가 땅을 촉촉이 적시면 밤이 깊어갈수록 길바닥은 얼음판으로 변한다. 나는 장의사 정문 바로 앞 빈자리를 찾아 차를 세웠다. 뷰잉 예배(viewing: 고인이 안치된 관을 예배당 가운데에 모신 채 드리는 예배)가 시작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겠지만 그래도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다. 미끄러운 밤길을 몇 발자국이라도 덜 걷는다는 것은 그 몇 발자국만큼 안전한 것이다. 차의 시동을 끄려는 순간 CD에서 흐르는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의 순례자의 합창이 내 맘을 붙잡았다. 나는 키를 돌리지 못하고 흐르듯 내 귀를 적시는 합창을 들으며 자꾸만 많아지는 하얀 조각들을 창 너머로 바라보았다. 장의사 현관의 육중한 정문 앞 조명등 아래 매달아 놓은 보라색과 흰색이 섞인,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 모를 조화 다발이 마치 커다란 크기의 수채화같이 걸려있는데, 그 속으로 눈발 섞인 차가운 비를 헤치며 순례자들의 행진이 이어지는 듯하다. 그들 순례자 가운데 강희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제 영원한 순례의 길을 떠난 강희. 오늘 이 저녁, 이 날씨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합창이 있을까.... 슬픔이라는 감정의 조각들이 가슴 안에 날카로운 조개껍질과 함께 쏟아지는 파도처럼 파고들어 마치 슬픈 영화를 볼 때 느끼는 듯한 감정의 늪 속에 나를 맡겨 버린다.


며칠 전 강희를 만났다. 일부러 만난 것은 아니고 동네 한국 식품점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다. 강희는 아마 그저 하루의 저녁거리로 쉽게 집어 먹을 수 있는 반찬거리나 사러 나왔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강희가 나를 보기 전에 내가 먼저 그를 보았다. 강희는 야채들이 진열된 곳에서 무언가를 들여다보며 고르고 있었다. 줄곧 이곳저곳에서 소문은 듣고 있었으나 거의 5년 이상을 서로 보지 못하고 살았었다. 여자도 나이가 들면 머리숱이 없어지기는 하지만 유난히 드러난 머리 가죽이 거의 반짝, 하며 내 시선을 끌었는데 숙였던 고개를 드는 순간 나는 그녀를 알아보았다. 우리 두 사람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았으면 그냥 못 본 척 서로 지나쳐도 무관했을 터였다.


  “어마나, 오랜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어?”


나는 그동안 들어서 알고 있는 소문을 애써 덮어버리듯 정도 이상으로 목청을 돋우며 먼저 아는 척을 했다.


  “네, 정말 오랜만이에요, 언니도 별일 없으시고요?”


서로 일단 반가운 내색을 하며 안부를 나누다 보니 수년간 못 보고 사는 동안 서로에게 찾아온 변화가 낯선 손님처럼 드러난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강희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으나 그 음성 속에 묻어 나오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는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옅어져서 성긴 머리칼과 함께 확실하게 새겨진 세월의 자국들이 짙게 드리워진 얼굴은 그동안의 소문들이 헛소문은 아닐 것이라는 낌새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우리는 다음 말을 잊지 못하고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언니도 많이 늙었군요.'

말하진 않았지만 강희의 그 눈빛은 저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시장 보러 왔어?”


수년 만에 시장에서 만난 사람에게 이보다 더 멍청한 질문이 또 있으려나....


  “네, 언니도요?”

  “으음. 저녁에 뭘 해 먹으면 좋을지 둘러보려고....” 

  “저도 그래요.”


그리고는 또 말이 끊겼다.


  “으음, 그럼 많이 사 가지고 가.”


그리고 우리는 서둘러 헤어졌다. 그것이 내가 강희와 이 세상에서 아주 오랜만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나 나눈 대화였다. 돌아서며 흘끗 카트 안을 살펴보니 얼려놓은 불고기감과 돼지고기 삼겹살이 눈에 띄었다. 혼자 먹으려고 저런 것들을 사지는 않을 텐데.... 소문은 어찌 된 것일까.... 짧은 순간 내 머릿속에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쓸데없는 생각이 바쁘게 오갔었다.



순례자의 합창은 끝났는데 빗속에 섞여 내리던 흰 조각들은 이제 제법 눈송이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하고 빗줄기들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였다. 어느 틈에 주차장에 가득한 차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둘, 셋씩 내려 우산을 받쳐 들고 조화가 달린 육중한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고 있었다. 나도 서둘러 차 문을 열고 나가 그들 틈에 끼어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 안의 비교적 넓은 홀 중앙에는 둥그런 탁자 위에 이름 모를 크고 작은 하얀 꽃들이 바구니에 가득 담겨서 놓여 있었는데 그 향기가 어쩐지 애절한 슬픔을 더하는 듯했다. 자주색 카펫이 깔린 좌우의 벽 쪽으로는 베이지색의 커버를 씌운 소파 몇 개가 작은 탁자들을 앞에 두고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왼쪽으로 통하는 복도에는 좁은 복도를 넓게 보이려는 의도가 분명한 커다란 거울이 벽 전체에 붙어 있었는데 그 거울이 끝나는 곳이 뷰잉장의 입구인 듯했다. 아는 얼굴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싶지도 않아 그런 장소에서 흔히 느끼는 불편함으로 쭈뼛거리며 뷰잉장 입구로 들어서다가 나는 막 복도로 들어오는 젊은 남자애를 보았다. 강희의 아들 세형이다. 대학교를 졸업했거나 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 애가 네 살 되던 해 죽은 제 아버지를 닮아서 건장한 어깨와 잘생긴 이마가 먼저 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이 아이는 부모를 다 잃고 혼자가 되었다. 그 생각이 미치자 안쓰럽고 불쌍한 마음이 가슴에 피어올랐다. 복도로 막 들어서던 세형이는 왼쪽 벽의 거울을 보는 순간 멈추어 서서 제 머리 위 아직 녹지 않은 눈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털어냈다. 애써 가다듬어놓은 머리 모양새가 흩어질까 봐 염려스러운 결혼식장의 신랑처럼.... 그리고 잠시 거울 속의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만족스러운 듯 다시 한번 머리를 손가락 끝으로 가다듬고 거울 앞을 떠나, 내가 서 있는 문 앞으로 다가왔다.


  “세형이구나.”


나는 눈인사를 까딱하고 안으로 들어가는 세형이를 불렀다.


  “네?”


누구시지요, 하는 듯 나를 바라본다. 세형이가 나를 못 알아보는 것은 당연하다.


  “네 엄마랑 잘 아는 사람이야.”

  “아, 네에.”


세형이는 눈을 떨구었다. 그 모습이 덩치에 비해 아직 채 어른이 안 된 풋풋한 청년의 모습이다.


  “갑자기 일을 당해서 얼마나 놀라고 슬프니?”

  “네에.”


고개 숙인 아이에게서 인제 그만 놔주기를 바라는 조급함이 피어났다.


  “그래, 들어가 봐.”


세형이는 끄덕하고는 들어가 버렸다. 아무리 건장한 청년이 되었지만, 엄마 없는 세상을 혼자 살아갈 그 외로움을 알기나 할까.... 그 뒷모습을 좇으려니 강희의 죽음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저며왔다.


나는 뒷자리의 빈 의자를 찾아 앉아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관 옆에 가득히 꽂아놓은 흰 백합의 짙은 향기와 틀어놓은 테이프에서 흐르는 찬송가가 장례식장의 움츠러드는 듯한 분위기에 곁들여져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워지게 했다. 예정 시간보다 15분이나 지나서야 앞에 서서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며 주위를 둘러보던 집례 목사가 예배의 시작을 알렸다.


  “이제부터 이강희 성도님의 환송 뷰잉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밖의 복도에 계신 분들은 안의 좌석이 많이 비어 있으니 다 들어오셔서 좌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 자신도 그랬지만 모두 멀찌감치 떨어져 있고 싶어서인지 뒤에서부터 꼭꼭 채워나간 자리 어딘가부터는 비어 있었고, 차라리 뒤에 그냥 서 있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있어도 그 빈자리들을 채우려는 사람은 없었다. 죽은 자와는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져 있고 싶은 마음인 것일까.... 집례를 맡은 목사는 잠깐 기다리더니 또다시 시계를 들여다본 후 서두르듯 말했다.


  “성경말씀 봉독해 드리겠습니다.”


  <......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불면 없어지나니, 그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우리들의 인생은 말씀과 같이 바람이 불고 때가 되면 없어지는 한 포기 풀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으면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강희 씨는 살아생전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 속에 살았으므로 이제 주님 안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어째서 없어지는 풀 한 포기가 하나님을 믿었더니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일까.... 영원히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인은 이제 이 세상을 떠나갔지만 그가 생전에 얼마나 많은 사랑을 이웃들에게 베풀었는지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목사는 구체적인 예를 나열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도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이강희 씨'에서 '고인'으로 호칭이 바뀌면서 이제 이 세상에서 이강희는 사라진 것이 분명해진 듯했다. 나는 재빨리 강희가 이웃을 위해 베푼 사랑이 어떤 것이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 자리에 앉아있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많은 사람의 기억에 사랑을 많이 베푼 사람으로서 남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장례식장에서는 고인이 생전에 크게 돈을 벌었다던가 명품만 입고 살았다던가 부동산을 많이 장만했다든지 비싼 차만 타고 다녔다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그 모든 외형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것은 역시 아직은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다. 죽으면 뒤로 사라져 흔적도 없는... 죽은 사람의 훌륭한 삶을 칭송하고 먼저 보내게 된 것을 슬프게 생각하고 앞으로 정말 보고 싶을 것이라고 추모하는 것이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몫이다. 자신도 언젠가는 저 자리에 눕게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죽은 자만의 몫인 것이다.


맑고 고운 목소리의 젊은 여자가 나와서 찬송가 <하늘 가는 밝은 길>을 3절까지 부르는데 자꾸만 반음 정도가 떨어지는 게 신경에 거슬리고 청승맞아 보였다. 나는 후에 내 장례식에서는 그런 독창은 부르지 말라고 유언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나와서 고인의 추모사를 읽었다.


  “세상에 그토록 사랑하던 아이들은 어찌 살라고 훌훌 그 길을 갈 수가 있느냐... 앞으로 엄마 없이 살아갈 아이들이 걸려 어찌 편히 눈을 감고 쉴 것인가...”


말을 못 맺고 흐느낀다. 그러나 아이들은 잘 이겨나갈 것이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엄마를 떠나보내는 마지막 뷰잉 예배에 참석하면서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살펴보던 그 여유만만한 모습으로 보면 강희가 영원의 나라에서 편히 쉬지 못할 이유가 없다. 여기저기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순서는 잠시 지체되었지만 사회 보는 목사는 경험이 많은 듯 재빨리 종료를 선언한다.


  “이제 이강희 성도님의 뷰잉 예배를 끝내겠습니다. 건너편에 있는 한국 식당 <만종>에서 저녁 식사를 아직 못하신 분들을 위하여 유가족 측에서 저녁 식사 대접이 있겠습니다. 한 분도 빠지지 말고 식사하고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뒷줄에서부터 차례대로, 떠나가는 이강희 성도님께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될수록 지체하지 마시고 간단히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뒷자리에서 누가 내 등을 꾹 찔러 돌아보니 강희의 동기 몇 명이 앉아서 아는 척을 한다.


  “언니. 같이 식사하고 가세요.”


나는 오기 전에 저녁을 먹은 터였다. 저녁 먹다가 받은 전화가 강희의 죽음과 뷰잉 예배 연락이었다. 놀랍고 황망했지만 먹던 수저를 놓지는 않았다. 그리고 접시에 퍼 놓은 밥을 깨끗이 끝내고 남은 반찬이 아까워 밥통에서 밥을 조금 더 덜어내어 먹은 터라, 시간이 조금 흐른 뒤였지만 내 위장은 아직 아무것도 받아들일 형편은 안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냥 집으로 가버리기에는 무언가 답답하고 아쉬웠다.


  “그러지.”


한 송이 카네이션을 강희의 관 위에 올려놓고 이제는 이승을 달리하고 누워있는 강희를 보니 불과 며칠 전 썰어서 얼려놓은 불고기와 돼지 삼겹살을 사 들고 나와 저녁거리 이야기를 나누던 얼굴과는 너무나 생소했다. 그때 산 언 고기들은 녹여서 다 먹고 세상을 갔을까...? 그럴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아직 언 채로 냉동실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한동안 먹을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엄숙한 죽음을 놓고 이렇게 얼려놓은 고기 생각에 빠져 있어도 되는 것일까... 누구에게 생각을 들키기라도 한 듯 부끄럽고 한심스러웠다. 


관 옆에 강희의 환하게 웃는 훨씬 젊을 때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죽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신나고 즐거운 모습이다. 정말 즐거워서 웃었을까 아니면 '치이즈하세요'하는 소리를 듣고 시늉으로 웃었을까...... 

웃는 눈 속에 즐거움이 서려 있다. 정말 즐거워서 웃었나 보다.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오랫동안 관 앞에 서 있으면 안 된다. 재빨리 움직여줘야 빨리 끝내고 피곤한 가족들은 집에 돌아가 내일 장례 치르는 데 무리가 없게 쉬어야 하고, 장의사 직원들도 조문객들이 빨리 돌아가야 뒷정리를 하고 불을 끄고 문을 잠근 뒤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다. 모두들 눈발 날리는 차가운 이 밤, 빨리 이곳을 떠나서 따뜻하고 아늑한, 가족들이 기다리는 거실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관 앞에서 나는 멈칫거렸다. 항상 그 앞에 서면 어떤 말로 인사를 해야 하는지 모른다. '잘 가세요' 해야 하는지, '편히 쉬세요' 해야 하는지....... 이제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 일부러 만나려고 하지도 않고, 만나지 못해도 잊히면 그만일 것 같은 사람. 그러다가 어디서 우연히 만나면 반갑던 사람이었다. 고국을 떠나 미국에 와서 살며 우연히 한동네에 살며 가까워졌다가 상관없어지면 잊히는 사람들. 그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에 어떤 이별의 말을 해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20년쯤 전, 강희는 대학 친구였던 남편을 저세상으로 보냈다. 그 부부는 결혼 전이나 후에나 그냥 친구처럼 붙어 다녔다. 어느 날 그 남편이 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정말이야? 상태가 어떻대?' 확인도 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통보를 받았었고, 장례식에서 어린 두 아이와 멍하니 서 있는 강희를 보았었다. 아이고, 저것들을 데리고 어떻게 창창한 날들을 살아갈 것이냐...... 간 사람은 말없이 떠나보내고 그 어린것들과 헤치며 사는 세월은 그래도 잘 흘러가 주었다. 사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강희의 소문이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왔다. 다섯 살이나 아래인 어떤 법적인 노총각과 연애에 빠졌단다. 그리고 조금 있더니 그 노총각과 같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본처인지 옛 애인인지가 나타나서 난리가 났었다는 것이었다. 그다음부터는 온갖 신파적인 이야깃거리가 소다 넣은 빵처럼 부풀려지고 뻥 튀겨져서 마치 주말 연속극처럼 이 사람 저 사람들의 입과 귀를 즐겁고 바쁘게 해 주었다. 나는 그 소문들의 어느 부분은 믿지 않았는데, 만나게 되면 사실을 확인해보아야겠다고 생각만 하다가 이제 그 기회를 영영 놓쳐 버렸다. 하기야,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또 어떠하랴. 천연하게 잠든 얼굴의 그녀는 '놀랬지' 하고 재미있어하는 듯했다. 나는 이제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안녕.”


나는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발길을 옮겨 추모객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이제 어른이 된 강희의 아이들을 보았다. 두 아이의 서 있는 모습은 전혀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았다. 신나는 모임에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듯 날렵하고 경쾌해 보였다.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 자신이 저세상으로 가는 길임을 알았다면 강희는 이 아이들 때문에 그 눈을 감지 못했으리라.



    오래전이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선교사로 일하던 어린 딸 셋을 둔 부인이 타고 있던 트럭이 뒤집혀 즉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마음이 아파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나를 내 딸이 옆에서 위로해주려 앉아 있었다. 그 부인은 사고가 나기 얼마 전, 내가 다니던 교회에 들렀을 때 잠깐 만났을 뿐인데도 아주 인상 깊게 내 기억에 남았던 사람이었다. 막내가 겨우 세 살, 그리고 일곱 살, 여덟 살이었던가...... 그리고 그 아프리카 오지의 불쌍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복음의 전파뿐이라는,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뜨겁던 사람... 그때 함께 점심을 먹었었는데 그는 그 시간 내내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었다. 그리고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고로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그 열정은 어찌하며, 또 그 아이들은 어떻게 살라고 그렇게 황망히 떠나버린 것일까...... 그 아이들을 생각하니 너무나 너무나 그 부인이 불쌍했다.


  “그 엄마가 너무 불쌍해. 이 어린 딸들을 놓고 죽는 순간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어떻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그때 말없이 앉아있던 내 딸이 말했다.


  “엄마. 죽는 사람이 그 순간 자식들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면 안 돼요. 아이들은 그래도 살아갈 수 있어요. 누구나 저 세상으로 가는 길은 평화롭게 가야 해요.”

  “그 어린 딸들 때문에 그 순간 눈을 못 감았을 거야. 나라도 그런 일을 당하면 눈이 감아지겠니?”


나는 계속 훌쩍거렸다. 딸은 입을 꼭 다물고 생각에 잠겨 있더니 결연히 말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약 그런 순간이 있다면 엄마는 절대로 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면 안 돼요. 나는 괜찮아요. 그런 일 때문에 마음에 고통을 느끼면 안 돼요, 저세상으로 가는 순간은 편히 가야 해요...”


나는 훌쩍거리는 일을 끝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사실 충격을 받았었다.


 '엄마에게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어요, 그건 말도 안 돼요...' 딸은 당연히 뭐 그렇게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때 나는 세대 차이나 전혀 다른 문화적 사고에 대한 거리감을 깊게 느꼈었다. 어쩐지 옅어지는 기억력에 모든 중요한 사건들이나 이야기들을 다 잊고 사는데 딸의 그 말은 잊히지가 않았다. 나는 떠나가는 사람은 평화롭게 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엄마를 떠나보내는 아이들을 보며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흩날리던 눈은 길거리만 살짝 흰 시트를 덮은 듯이 뽀얗게 깔아놓고 그쳐 있었다. 뷰잉 예배를 마치고 장의사를 떠나는 사람들 모두가 어깨를 움츠리고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길 건너의 식당으로 향해갔다. 간간히 웃음소리도 들리고 조심해서 가라는 인사말 소리도 들렸다. 마치 자신들은 영원히, 떠나보내는 사람일 뿐인 듯 자신만만해 보였다. 장의사 건너편 식당 <만종>에는 강희와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 몇 명이 모여 앉아 파전과 매운탕을 시켜놓고, 죽은 강희가 아니라 살아있는 강희의 이야기로 화제를 이어갔다. 강희가 아침 운동으로 가벼운 조깅에 나섰다가 뇌출혈로 쓰러져 아무 고통 없이 그냥 세상을 떠났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화제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다 자라서 학교로 직장으로 떠나가자 외로웠던지, 어느 남자를 만나 행복했다기보다는 더 많은 마음고생을 하며 살게 됐던 이야기며, 이제는 투욱툭, 떨쳐버린 생애....... 친구들은 아픈 마음을 파전과 함께 씹어버리고 서글픔은 매운탕 국물과 함께 후루룩 마셔버렸다. 살아있는 사람의 특권을 누리는 것은 오직 먹는 일이라는 것을 다짐하기라도 하듯....


그들과 헤어져 돌아 나오는 길, 눈발은 이제 더 이상 흩날리지 않고 있었지만, 거리는 좀 더 단단하게 얼어 있었다. 나는 장의사의 불 꺼진 안내 조명등을 바라보았다. 단지 음울하고 써늘한 기운만이 그 앞을 맴돌았고 정문에 걸려있던 커다란 보라색 조화도 어둠 속에 잠겨버린 듯 보이지 않았다. 불 꺼진 장의사 안에 혼자 남는 존재가 아니라는 이상한 안도감이 내 가슴에 차올랐다. 그것은 떠난 사람과 보낸 사람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깊은 골짜기를 확인하는 순간인지도 몰랐다. 왠지 이 밤에 살아있어서 움직이는 모든 대상이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함께 살아남아 있음의 특권을 맛보는 때문일까...... 그냥 따뜻한 불빛이 소중하게 창문을 밝히는 내 집으로 조심해서 운전해 가기만 하면 된다는 안도감이 조그만 기쁨이 되어 저녁 내내 나를 짓누르던 슬픔을 덮고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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