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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영 Mar 25. 2022

단골손님


    “28번 베드의 한국인 환자가 아우성치는데 와서 좀 도와줘.”


응급실의 캐서린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응급실 환자 내용을 보니 이광우 씨다. 

음식점도 단골손님이 한동안 찾아오지 않으면 궁금해진다. 이사 갔나, 아니면 우리 집 음식에 입맛이 떨어졌나...?

병원에 자주 드나들던 사람이 한동안 안 보이면 혹, 그동안 죽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왜 단골손님 이광우 씨가 응급실에서 아우성을 치나?

나를 '아주마'하고 부르는 50 초반의 이 남자는 내 기억에 수년 전부터 서너 달에 한 번씩 여기저기 아프다고 응급실에 들어온다. 미국에 살면서 딴 사람에게 '아주마'하고 불리는 것이 재미있어서 그를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조상에 서양 쪽 피가 섞였는지 유난히 말간 얼굴에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처음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외국인인 줄 알았다. 그리고 어려운 형편이라 의치를 해 넣지 못하고 산다는 그의, 말할 때 텅 빈 입속을 보면 너무나 가여워 싼 가격으로 의치를 해 주는 치과의사는 없을까, 하고 수소문해보기도 했다.


불쌍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항상 마음에 짚인다. 이광우 씨는 감기만 들어도, 기침만 해도 응급실에 들어온다. 어찌 됐든지 응급실에서는 들어오는 환자는 일단 진찰하고 치료 과정을 밟는다. 병원 응급실에도 처음 들어오는 사람이나 긴장하지, 이광우 씨처럼 뒷집 드나들 듯하면 병원이 건넌방 같은 모양이다. 피검사를 끝내면 응급실 모퉁이에 있는 간이 주방에서 즉시 커피를 한잔 뽑아다 마시고 곁들여 쿠키도 입맛대로 꺼내서 먹는다. 나를 보면 항상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데, 그게 잘 봐달라는 뜻인지 내가 최고라는 뜻인지 잘은 모르겠는데, 뻔뻔스러운 면도 있지만 불쌍해서 기억에 남는 환자다.


응급실에 가보니 이광우 씨는 환자복을 입은 채 침대 모서리에 엉거주춤 앉아 있었는데, 나를 보자 즉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반색을 한다.


  “무슨 일이 있어요?”

  “아이구 아주마, 내가 여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나가야 하는데 이렇게 잡아놓고 있으면 어쩌라는 거예요? 어젯밤에 들어왔는데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온종일 먹지도 못하게 하면서 붙잡고 있으니, 제발 나가게 해 주세요.”

  “병원에서 괜히 아픈 데 없는 사람 붙잡고 싶어서 잡아 놓겠어요? 상태가 안 좋은 사람 내보냈다가 큰일 날까 봐 붙잡아 두지요. 이번에는 왜 들어왔어요?”


자신의 소개에 의하면 그는 일류 주방장이다. 25년 전에 미국에 와서 한때 큰 식당을 세 개나 경영했던, 잘 나가던 사람이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문을 닫았지만, 지금이라도 어디 식당에 취직하면 연봉이 대단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몸이 아파 어디에서고 일을 계속할 수 없어서 정부에서 주는 생활 보조금으로 근근이 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내와는 10년 전에 이혼했고 그 후 홧김에 술을 많이 마셔 간을 버렸다고 했다. 그는 7년 전에 간 이식을 했다.

그는 비극적인 얼굴로 그렇게 간 이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유를 털어놨다. 이혼하고 화가 나서 술을 마셔서 간을 버리고, 운이 좋아 간 이식 수술을 받고 잘 지내고 있다. 아니, 잘 지내고 있지 못하고, 그의 표현대로 하면 죽지 못해 산다. 게다가 아들은 학업을 계속하지 못해 제대로 된 직장을 못 얻은 데다, 안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속을 썩인다고 했다. 평소에 말 상대가 없는 듯 내가 병상을 찾으면 누에고치가 실을 뽑아내듯 끊임없이 이야기를 계속한다.


  “왜 이혼을 했어요?”

  “라스베이거스에 발을 붙였지 뭐예요. 식당 하나 날려 보내는 게 순식간이더라고요.”

  “에이구, 그걸 자랑이라고 해요? 남편이 그러고 다니면 어느 여자가 붙어살아요?”


내가 아무리 통박을 줘도 끄떡도 없다.


  “그랬으면 좋은 여자 만나 재혼하고 잘 살지 왜 간을 버리며 술은 마셔요?”

  “내가 잘못했죠, 눈에 뭐가 씌었었나 봐요.”

  “요즘도 술 마셔요?”

  “아이구 그러면 오죽 좋겠어요?”


술 생각이 나는데 못 마셔서 슬픈 것인지, 술을 마실 수 있는 건강 상태가 못 돼서 슬픈 것인지 한숨을 내쉬는 끝머리에 서글픔이 묻어나곤 했다. 그렇게 자주 병원에 드나들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로 그의 살아온 전 생애를 환히 들여다보듯 알게 되었는데 그래서 내가 느낀 것은 그의 진짜 인생은 어딘가에 숨겨두고 여기 병원을 드나드는 본인은 스페어쯤으로 여기는 듯 자신의 몸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툭하면 응급실에 걸어 들어온다.


  “그런데 응급실에는 이유가 있어서 들어왔을 터인데 왜 빨리 나가겠다고 그러세요?”

  “아주마... 오늘이 주말이잖아요. 금요일, 토요일 저녁이 제일 바빠요. 일하러 못 가면 주인이 나를 더 이상 안 부를 거예요. 그러면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어떻게 먹고살아요?”


혈압이 200을 오르내리는데 일을 나가야 한다며 떼를 쓴다. 간호사를 불러 다시 한번 혈압을 재어보자고 부탁해 본다. 혈압약을 먹었다는 데도 180이다. 200보다는 낮아졌지만, 퇴원 가능한 숫자는 아니다. 간호사에게 오늘 일을 하러 못 가면 직장에서 잘리니 어떻게 의사를 설득해보라고 하지만, 어느 의사가 오케이 할 것인가... 결국, 환자가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퇴원을 강행한다는 서류에 서명하는 조건으로 퇴원을 결정지으니 내게 고맙다고 한다. 그러나 고맙단 소리를 들을 일이 아니다. 만약에 일하다 쓰러져 치명적인 신체의 손상을 입으면 어쩔 것인가... 자꾸만 이런저런 걱정이 몰려오는 내게 재빨리 옷을 갈아입은 그가 손을 흔들며 경쾌하게 응급실 복도를 벗어나며 한마디 한다.


  “병원에 누워있다 직장을 잘리면 먹고살 걱정이 더 커요. 그러느니 차라리 일하다 탁, 죽어 버리면 먹고살 걱정 없어서 편하지요.”


먹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면 응급실에는 왜 들어왔어요?”


나는 기어코 모질게 한마디 한다.


  “주말 지내고 월요일에 다시 들어올게요.”


복도 끝으로 사라지며 소리치는 그에게 나도 외친다.


  “그래요. 제발 주말 잘 지내도록 해요.”


엄지손가락을 쳐들며 복도 끝으로 사라지는 그를 향해 나도 엄지손가락을 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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